모든 것이 완벽하게 무너진 가운데에서 홀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기도하였다 : "당신을 고백하고 증거할 수 있는 글을 쓸 노트북 하나와, 그 노트북을 충전할 충전기 하나만 남겨주신다면, 내가 길바닥에서 신문지 한 장 덮고 잠들더라도 결코 원망치 아니하겠나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되, 내게 새해 동안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먹고살 방편을 마련해주시면서, 정작 그 글쓰기를 잠시 거두어가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진실로 아득한 절망을 마주했다.
글이,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쓰면, 다음 날 결국 지워야만 했다. 절망적이었다. 내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그분을 얼마나 열망하는데, 비록 내 처지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 내 삶이 이 지경이 되어서조차도, 나는 그분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걸고자 하는데, 온 세상에게 다 오해받고, 심지어 내 부모와 내 가족들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정하고 비웃는 와중에도 오직 그분만을 위해서 내가 모든 것을 다 바쳤는데...... 마지막 순간에, 내게 목숨보다 더 중요했던 그 "글쓰기"를 거두어가신다는 게, 내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내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은혜를 받았던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으며, 더욱이 내 능력이나 힘으로 말미암지 않았다는 것을, 그분은 그토록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내게 새삼스럽게 일깨워주셨다.
요 며칠, 다시 용기 내어 글을 쓰면서, 그분이 다시 내가 글을 써서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을 허락해주시는 것을 느꼈다. 숱한 기도 끝에, 결국 내게 허락된 것은 홀로 조용히 글을 쓰고 묵상하며 내게 허락된 것들에 대하여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그 하나였다. 이 심정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쓸쓸하고, 외롭고, 또한 고귀하고 영광스럽다.
내 안에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어찌할 수가 없단 말인가. 성화의 길이 이토록 길고 고통스러운 까닭은 그분의 탓이 아니요, 오직 나의 죄가 무거운 까닭이니...... 결국, 그분께서 나를 오늘 하루도 숨을 붙여두겠노라 하신데 대하여, 나는 하루 하루를 이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이름으로 살아가서는 이 생에 대한 해답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것이다. 그 깊은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는 것은, 오직 그분으로 인해서만 가능하다.
그분은 나를 버리실 수 있지만, 나는 그분을 버릴 수가 없다. 애초에 내게 신앙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었다. 내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그분만큼은 버릴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게 절박한 것이었고, 진실로 간절한 것이었다.
내 간절함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형제들에 대해서 더욱 조심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나를 오해할 것이다. 내가 섣불리 내 실체를 내보인다면, 그들 역시도 나를 다 떠나게 될 것이다. 버림 받음이야 나의 오랜 죄로 인한 당연한 대가이지만, 이로 말미암아 혹여나 그들의 신앙에 해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을 늘 품는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나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미친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중간하거나 모호하게 이 길을 걸었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내게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리스도 중심성은, 적당히 타협의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 목숨을 건 대가로 내일 죽게 되더라도, 나는 결국 이리해야만 했다. 이러다가 내가 제 명대로 못 살겠다, 싶은 그 순간에도, 나는 결코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죽음 따위가 두려울 리가 있으랴. 이 길을 선택한 그 순간에 이미 내가 이 생에서 치러야 할 대가를 다 알았는데. 성부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외아들에게, 결국 마지막까지 어떤 길을 인도하셨는지를 다 아는데, 하물며 그분보다도 못한 내가 이 생에서 어떤 값을 치러야 할지를 모를 리가 있으랴.
결국, 나는 돌고 돌아서, 나의 순결한 초심으로 돌아왔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죄 많고 부끄럽게 살아왔을지언정 내게 살 길은 오직 하나, 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이것이 내 유일한 살 길이었고, 구원이었다.
<목스박>이라는 영화에 관한 유튜브 쇼츠를 보면서, 나는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영화에서, 조폭 출신의 그 인물은 진짜로 목회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목사라는 위장 직업을 갖추었을 뿐이고, 불량아들을 선도한다는 미명 하에 폭력을 썼을 뿐이다. 내 눈에 그가 어떻게 비쳤을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눈은 범죄하는 눈이요, 죄를 짓는 눈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그것을 보면서 슬펐던 것은, 웃으라고 만든 코미디 영화에 웃을 수가 없었던 까닭은...... 주께서 보시기에 나는 자격이 없으므로 지금껏 애타게 열망하여도 단 한 번도 사역의 기회를 허락지 아니하시되, 주께서 보시기에 내 눈에 지독한 꼴을 하고 있는 그는 자격이 넘친다 여기시므로 그토록 영광스러운 사역의 기회를 허락하신다고...... 내가 그리 생각지 아니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 생각 따위는 중요치 않다. 오직 그분께서 어찌 여기시는지만이 중요하며, 나는 결국, 그깟 조폭 출신의 위장 목사만도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쓰고 있으면서도, 내 가슴이 처참한 지경에 이르러 차마 말로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래도 괜찮다. 사랑에는 대가가 없다. 그분이 나를 버리시는 것은 그분의 권리이시되, 나는 그분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이 내게 어떤 일을 하시든지 간에, 나는 끝까지 그분을 사랑할 것이다. 애초에 그분께 대한 내 사랑은, 대가를 바라고서 이리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너무나도 내 영혼을 뜨겁게 불태웠기에, 그만큼 새해가 되자마자 긴장이 풀린 나머지 너무 강한 번아웃이 온 듯하다. 한 줄도 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에서, 나는 그저 살기 위해서 하루 하루 직장을 갔고 출퇴근을 했다. 그리고 지금 시기에서, 다시 부활의 희망을 품는다. 저 멀리, 동이 터오는 흔적과 표적들을 목격하고 있다.
이제는 내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야말로 과거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내려놓고 떠나보냈다. 다만, 이 다음의 길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변함없이 그분께 충성할 수 있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뜨거울 때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처럼 지독한 번아웃 가운데에서도, 전열을 정비하고, 무기와 갑옷을 손질하며, 깃발을 바로세우고, 다시 나의 전선으로 복귀하는 것, 이것만이 그분께서 마지막에 보시는 유일한 의지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깃발을 들고, 전선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