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쁨 #4. 선(善)을 이루시는 분

by 생명의 언어


[메이저 17번 : 침묵]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구름 4번 : 연기]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하시느니라 하시니라." (수1:9)


[무지개 10번 : 우리는 하나]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13)




<침묵>은 마음의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안으로 들어가서 숨는 것이 아닙니다. 내면은 "안(內)"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일상 속의 시간과 공간 전체, 모든 존재와 사건과 현상들, 청명한 하늘과 유려하게 흘러가는 구름과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들과 갈대들이 어지러이 춤을 추는 모습과 강물의 아름다운 윤슬들과 그것들의 현존(現存)에 깊이 몰입하여 하나되는 그 전체가 곧 내면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침묵이란, 오히려 안에만 갇혀 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서, 온 세상의 자연과 생명 가운데에 임재해계시는 그분에게로 가까이 다가서는 과정, 곧 "밖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들에 깊이 침잠할 때, 내 안에서는 늘 소란스러웠던 마음(mind)의 결과는 전혀 다른, 고요함과 평온함과 몰입과 하나됨의 영(Spirit)의 층위가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때에, 천지만물을 통하여 내게 언제나 임재하시는 하나님, 내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 공간 전체의 아름다운 생명과 현상들을 통하여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영으로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분의 현존에 깊이 몰입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침묵입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오쇼젠 타로의 메이저 17번의 적절한 이름은, "임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쇼젠 타로카드 메이저 17번 침묵 카드는 본래 모던 타로에서는 별(Star) 카드입니다. 침묵이든 별이든, 두 카드 모두 다 "내 안에서 전혀 차원이 다른 생명, 빛, 에너지가 각성되고 깨어나는 순간"과, 이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도약"을 의미하는 카드입니다.


이 자체가 한순간에 깨어나고 각성되고 활성화되는 영(Spirit)의 에너지, 그 존재감과 아우라를 묘사하죠.


이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입니다. 우리 안에서 육적인 감각(오감) 뿐 아니라, 영적인 감각 또한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영(spirit)과 혼(soul)이며, 영과 혼이 깨어날 때, 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영적 실재들을 보게 되며, 혼을 통해서만 교감할 수 있는 고유한 생명들과 공명하게 됩니다.


그저 물질세상만이 전부라고 여겼던 때와 비교하여, 전혀 차원이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설명은 해줄 수 없고, 네가 직접 맛을 보아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전과 완벽하게 똑같이 평범한 일상일 뿐인데, 정작 그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정신과 의식과 내면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


그때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하나님은 영이시니 너희는 오직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리니"(요4:24)...... 의 말씀들이 비로소 "들리기" 시작합니다.


애초에 영으로 계신 분을 육으로 만나겠다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것입니다. 육적인 감각 경험, 즉 오감을 통해서는 영으로 계신 주를 영접할 수가 없습니다. 유일한 길은, 내 안의 영이 깨어나는 바로 그 순간, 곧 <침묵>으로 인해서만 비로소 성령의 영감에 붙들릴 수 있으며, 그때에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하나님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영으로 계신 분은 영으로만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어떠한 길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때에, 그는 마침내 영으로 계신 분의 음성을 듣기 시작합니다. 이제 더 이상 "말씀"은 죽은 글자와 문자로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그분의 음성들을 매 순간 듣고, 느끼고, 교감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영을 통하여, 내 안에서 영으로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을 듣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이지만, 바로 이것이 저 스스로 "참된 말씀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그것만이 해당되며, 다른 선지자, 예언자, 사도들의 말은 똑같이 귀중하나 말씀이 아닌 증언이라"고 믿는 이유입니다.


말씀은 내 안에서 실제로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지 지적 유희나 개념적 이해로만 가르치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 문장 자체가, 내 안에서 나의 영을 살게 하며, 내 안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실재하는 신성 그 자체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명확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나의 상상이나 주관적인 느낌을 넘어섭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착각에 불과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자아(ego)의 욕심이나 욕망이 이끄는 방향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에서, 때때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자아를 무너뜨리고, 좌절케 하고, 욕심을 낮추고, 욕망을 꺾으시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때에, 그것은 우리에게 물론 잠시 간의 슬픔과 아픔이 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하여 "그분께서 내 안에 살아 계신다"는 명확한 증거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 없는 신을 위하여 자기의 간절한 소망과 바람과 이상마저도 다 꺾고 모든 것을 버린 채로 그저 담대히 길을 떠날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내 안의 신성에 의지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지점이 정확히 몇날 몇시 몇분, 이라고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세속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서 이루어지거든요. 하늘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과 다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분께서 내 안에서 "부활"하셨을 때,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나는 내 안의 그분을 느낄 수 있고, 또한 그분 안에 있는 나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께서도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사랑 하나로, 나와 그분의 사랑이 하나가 되며, 그 하나된 사랑을 통하여 그분과 내가 하나가 됩니다. 이러한 기묘한 것들이 내 안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실재(實在)"가 되며, 놀랍게도 이제 생물학적인 목숨이 나를 연명케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실재가, 곧 "내 안에서 실재하시는 그분"께서 내 삶을 이어나가는 영원한 생명 그 자체가 됩니다.


그분의 의지는 나의 뜻과 나의 이해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분의 의지는 성부 하나님, 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의지와 완전히 하나되어 계십니다. 그분의 의지가 곧 아버지의 의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적이고 세속적인 욕망대로 우리 안의 어두움에 기만당한 채로 거짓된 것들과 악한 것들을 기도할 때, 때로 그분께서는 그 소원을 들어주시는 대신 오히려 삶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과 상황들을 겪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자아(ego)의 교만을 깨뜨리시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의 영혼(Soul)을 정화하시며 나아가 우리의 영(Spirit)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 중요한 것은 "우리를 죽이시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욕망대로 이루어진다면 표면적으로는 쾌락과 즐거움이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썩어가고 마침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아의 교만을 잠시 깨뜨리실 때 우리는 비록 잠시 아프고 슬플지 모르나, 그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은 성화(聖化)될 것이며,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게 될 것이며,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의지는 우리의 뜻과 다릅니다.


우리의 뜻은 쉽게 교만과 욕망과 공포에 현혹당하고 어두움에 휘둘리지만, 그분의 의지는 오직 아버지의 의지와 완전하게 하나되어 계시기에,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시고 죽음을 호령하여 부활케 하시는, 진정한 생명을 향해 계실 뿐입니다. 그 기준대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고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만 합니다 : 우리의 선(善, 좋은 것)은 곧 "내 욕망을 채우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 "내가 이익을 얻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영혼이 썩어가게 하는 죽음과 사망의 길입니다. 당장 죽진 않더라도 결국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것을 반복하면 언젠가 반드시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 기준은 옳지도 정당하지도 의롭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선(善)은 오직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온전하고, 기쁘신 뜻과 형상대로 이루는데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분은 우리를 늘 "좋은 것들"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삶에서 어떠한 사건과 상황이 일어나든, 어떤 일들이 벌어지든 간에, 그것을 우리의 기준으로 본다면 실패일 수 있고 좌절일 수 있고 몰락일 수 있고 퇴보이자 퇴행일 수 있겠으나, 그분의 기준으로 본다면 내 삶의 모든 일들을 통하여 내 영혼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선(善)을 이루어가게 되는, "승리의 역사"가 됩니다.


다만, 우리의 "좋음"과 그분의 "좋음"의 기준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요한 침묵 가운데에서,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때로 내가 자아나 마음에 지나치게 휘둘릴 때, 그분께서 외려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케 하시고, 골방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며, 어두움 가운데에서 홀로 깊어지는 시간을 갖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음성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아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나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아는 자기가 어리석은줄도 모르고 자기 뜻이 옳다고 여기며 무작정 자기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길은 절벽이고 낭떠러지이며 떨어지는 순간 무조건 죽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 절벽이 안 보입니다. 우리는 평면세계에 사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위"에 계시며 또한 "위"로부터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그분께는 낭떠러지뿐 아니라 그 너머의 모든 시작과 끝이 온전히 다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시각이 아닌 그분의 시각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맨 눈으로 보는 사람과 망원경을 가지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망원경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을 믿고 그 방향으로 따르겠지요. 같은 이치입니다.


그때에, 사람은 개입하는 것을 망설일 것입니다. "본인이 좋으면 그걸로 된 거지 뭐." 스스로를 합리화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의 안에서 영혼이 죽든 말든, 그저 표면적으로만 욕망을 충족시켜 주면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사랑해주는 자신"이라는 욕망과 환상을 충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망설이지 않으십니다. 그 순간 즉시 개입하시며, 곧바로 단절케 하고, 차단케 하고, 확실하게 거두어가시며, 중단시키시고, 모든 것을 다 일거에 정리해버리십니다. 그 과정들은 마치 번개처럼 한순간에 이루어지며, 그저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에서 눈 뜨고 보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그저 골방 가운데에서 홀로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전 같았으면 끝까지 원망하고 절망하고 울부짖었을 것이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쳤을 것이고, 도망쳐 숨었을 것이며, 자기를 죽음과 사망으로 질질 끌고가면서 그리 삶을 낭비하면서 썩어들어갔을 것인데, 그 일들이 단지 불행이나 불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오히려 삶의 가장 밑바닥 가운데에서도 경외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두움 가운데에서, 기도하고 묵상하게 됩니다. 찬양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외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진실로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시며, 내가 그분의 아들이 됨으로써, 내 뜻대로 살고자 함이 아니라 (아들로써)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 살고자 결심하게 됩니다.


어두움 가운데에서도 담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는데,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그것은 곧 "그분께서 보시기에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게 되는 순간, 드디어 "자아"가 통치하는 폭압적인 독재정권이 끝나고, "정당하신 왕 중의 왕"께서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때에, 몰락한 자아, 이제 왕을 섬기는 신하이자 시종이 된 자아의 눈에는, 왕의 통치가 때때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럽고, 따르기가 힘겹습니다. 그러나 자아는 이제 반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권을 쥐고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 결과, 얼마나 처참한 지경까지 갔는지를 다 알기 때문이며, 자기 뜻대로 해봤자 거기에 살 길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ego)에게는 그 어떤 희망조차도 없습니다. 살 길이 없습니다. 내 안에서, 그리고 저 바깥에서 도사리고 있는 숱한 어두움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군세(軍勢)를 능히 제압할 신묘한 전략과 전술과 능력과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왕의 의지를 섬기는 것이 자아에게 고통스럽고 힘겹기는 하거니와, 오히려 순종하여 따르는데 주저함이 없고, 진정한 믿음과 충성이 형성되게 됩니다.


자아는 그저 전선을 지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왕께서 다 생각이 있으실 것이다. 그분은 하늘의 열두 군단의 천사들을 보내어 호령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때가 오면, 그분의 뜻이 드러날 것이며, 그때에는 번개처럼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게 되리라." 자아는 그 믿음 하나로, 끝까지 성벽 위에 남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이건 무모한 전쟁이다" 하며 도망치고 없는데, 그분께서는 나 하나면 병사(兵士)로 충분히 족하다고 하시고서는, 나 하나를 부리시는 장군이자 왕이 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그분께서 이루신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했다면 아무리 좋은 일들이어도 결국 죽음과 사망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나, 그분께서 이루신 일이기에, 잠시 간에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프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사는 길, 내가 거듭나는 일, 내가 성장하고 완성되는 길, 영적으로 승리하는 길로 인도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좋음대로"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보시기에 좋으신 뜻"대로 이끄신다는 것, 내 삶의 모든 순간들마다 다 그리하신다는 것, 이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이제 자아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습니다. 회피하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내 힘으로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업(業)의 수레바퀴가 주기적으로 회전하여 돌고 돌아서 나를 찾아올 때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도망쳤고, 모든 소중한 인연들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외적인 삶은 갈수록 좌절되고 무너지더라도 그 가운데에서 반드시 성장이 있었고, 변화가 있었고, 거듭남과 도약과 승리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뒤로 미루지" 않습니다.


내 뒤에 계시는 왕의 의지를 믿고, 담대히, 지금의 내 삶에서 주어진 뜻을 마주합니다. 인도하시고 이끄시는 길을 마주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치러야 할 내 몫의 시험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리할 때, 여전히 자아로서 내 눈에는 그분의 통치와 다스림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다만 믿고, (그분과 그분의 뜻과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소망하고, 그분과 함께하는 모든 삶을 사랑할 뿐입니다.


그때에 나는 놀랍게도 미루어진 숙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드디어 상황이 진척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내 힘으로는 갈수록 무너지고 좌절하기만 했을 터인 바, 그분의 통치대로 전선(戰線)에 임하니, 기약 없이 막막하기만 했던 전황(戰況)이 놀랍게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저 이기적으로 내 삶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선(善)을 행하게 되고,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는데 작고 서투른 수준이나마 기여하게 되는, "생존"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까지도 조금씩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도 역사하사,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하시고, 모든 것들로 인하여 기뻐하게 하시고, 순종하고 믿게 하시고, 아름답고 선하고 온전하신 뜻대로 나의 성품과 본성과 마음을 모두 다스리시니, 날이 갈수록 내 자신도 살아나고, 내 주변의 사람들도 살아나며, 세상도 살아나게 되는, 그야말로 "나라가 임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분의 의지대로 따를 때, 자아와 타자와 세계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의 "새 생명"을 얻습니다.


그저 무의미한 생존이 반복되는 헛되고 허망한 인생이 아니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 고귀한 영혼과 순결한 영으로 거듭나게 하는 삶, 그러한 "승리"들이 따르는 삶이 이루어집니다.


육적인 욕망이라는 아주 작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내맡기는 대가로, 이 모든 영적인 선물들을 풍요롭고 넘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결국, 내 이름으로 살 때, 삶이라는 너무나도 무겁고 압도적인 굴레와 짐을 내가 져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승리할 수가 없는, 가망 없는 전투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그분의 의지를 따를 때, 그분의 음성과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 때, 나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패배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내가 주권을 쥐고 살아갈 때, 삶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에게 삶을 감당할 능력도 힘도 의지도 없기 때문입니다. 능력 없는 자가 과분한 짐을 지니 당연히 괴롭지요.


그러나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의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삶은 너무나도 쉽고 단순합니다.


나는 그저 매 순간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나를 통하여 그분께서 "알아서" 모든 것들을 다 "선하신 뜻대로" 이끄시고 완성케 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쉽고 평안하고 자유로운 삶입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두움을 비추는 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