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광야를 지나고 있다. 수 년째.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지나온 모든 과정들이 이제는 이전 생의 흔적들처럼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스쳐가고, 그 가운데에서 때로 웃었고 때로 울었으며, 때로 억울했고 때로 창피했던 기억들과, 힘들었으면서도 고귀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한때 뜨겁게 불타올랐던 나의 열망은 이제 점점 사그라들어가고 있고, 나의 사랑은 그만큼 성숙해졌으나 또한 저물어가는 영광 속에서 슬픔은 더욱 외롭고 쓸쓸해져만 간다. 사람들은 수면 위의 내 모습만을 보고 있으되, 나의 영은 심해 깊은 곳에서 홀로 유영하며, 바다를 사랑하는 이 생의 숙명을 따른다. 아무도 나의 영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리고 영이 수면 위로 상승하여 햇빛을 부수어뜨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광야에서의 시간은 거리 개념이 없다. 불과 하루가 영원 같고, 일주일이 수 개월처럼 느껴지며, 수 개월이 수십 년처럼 까마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정작 수 년은 며칠처럼 가깝기만 하다. 또한,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은 영원히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다. 이대로, 광야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물과 만나가 우연히 보급되지 않는 날에, 나는 허망하게 숨을 거둘 것처럼, 그렇게 느껴진다.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광야에서, 별은 아름답지만, 홀로 별을 헤아리는 시간은 비할 데 없이 쓸쓸하고 아프다.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전부 다 나의 죄다. 이 생에서 갚아야 할, 그리고 풀어내고 감내하고 성장해 나아가야만 할, 나의 남은 숙제들이다. 막막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나를 풀면, 더 큰 별이 빛을 내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제나 나는 압도적으로 패배한다. 너무 아파서 울지도 못하게 된지 꽤 오래되었다. 고작 별빛 하나가, 깊은 어두움 가운데에서도 가슴에 시릴 만큼 아프다.
사람들은 헛된 것이나마 희망으로 산다고들 말한다. 내일은 뭔가 다르겠지, 다음주는 다르겠지, 몇 년만 지나면 나아지겠지. 좋겠다. 참으로 부럽다.
광야에서, 그것은 역전된다. 오히려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된다. 나는 앞으로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로부터 언제 어떻게 얼마나 보급이 내려올지는 결코 미리 통보되지 않는다. 나는 그분께서 나를 굶기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의 문제들 앞에서 심각하게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만 하며, 그 끝에서, 결국 내가 기대했던 모든 것들은 다 무너지고, 절망의 끝을 바라보아야만 겨우, 조금씩 지나올 수 있는 다음 단계의 문들이 열린다. 그 과정들을 오랫동안 거쳐왔지만, 전혀 적응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욱 힘겨워진다.
광야에서, 생존은 보장되나, 모든 희망은 거두어진다. 그분은 내게 필요할 때마다 빵과 물은 주실 것이나, 내가 살아날 희망은 결코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게 희망은 없다. 그렇다고 희망 없음이 곧 절망이라는 뜻은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서의 절망, 이 아니다. 다만 나의 눈에 그 어떤 가능성도 가망도 전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눈을 감아도 떠도 여전히 캄캄하기만 한, 그러한 무언가가 이어진다. 세속에서, 희망 없음은 곧 절망을 의미하지만, 광야에서, 희망은 없어도 때때로 평온하고, 때때로 기쁘기까지 하다. 희망 없는 평온과 기쁨.
성화의 길은 고통스럽다. 이 길을 걷기로 선택한 이상, 무를 수 없다. 취소할 수 없다. 이제 남은 생 전체를, 결국 어찌되든 간에 나는 이리 걸어가야만 한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사들을 보면서 한때 내가 저와 같이 될 수 없음에 스스로를 자책하였지만, 생각해보니까, 오히려 그곳은 자유와 해방과 평화가 있는 낙원이었다. 세속의 삶이, 지금 여기가, 곧 지독한 감옥 안의 수도원이었다. 세상이 온통 넓지만, 갚아야 할 빚은 쌓여 있고, 들어올 월급은 이미 받기도 전에 나갈 곳이 정해져 있으며, 집과 직장과 가끔 산책 정도만이 허락된, 나의 감옥 생활. 몇 평짜리 나의 독방. 그곳에서, 글을 쓰며 잠시 기뻤다가, 또 한참 막막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슬픈, 삶이라는 이름의 순례길......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밖에 없다. 살고자 하면 더욱 죽을 것이다. 내가 살고자 발버둥칠수록, 이 시험의 깊이와 길이와 질량은 그에 비례하여 커져만 갈 것이다. 이 길을 한 시라도 빨리 걷는 유일한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는 희망을 내려놓는 길뿐이다.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나가면, 거기에 해방은 있는가. 지금의 환경을 탈출하고 나면, 그곳에는 낙원이 있나. 아니다. 감옥의 구조와 수도 생활의 패턴만 조금 바뀔 뿐이다. 결국, 그게 삶이다.
내 이름으로는 이 영원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을 진즉 알았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내가 살아날 길, 내가 이 돌고 도는 운명으로부터 참으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내 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더 정교하고 단단했기에,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것도, 이미 알았다. 알기에, 내게는 남들처럼 신을 향한 소망의 기도가 없다. 나의 영은 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요구해봤자, 거기에 살 길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 먹은 대로 된다", "긍정적인 생각이 곧 현실을 만든다"...... 그런 초심자용 주문과 마법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속으로, 부럽다, 참으로 부럽다, 정말 좋겠다, 그리 생각한다. 그 길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높은 영이다. 그러므로,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나이에,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치르고, 절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진 채로,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 속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때만 겨우, 숨죽여 울어야만 한다.
신을 사랑하는 것, 신성을 열망하는 것, 오직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이것은 내 취미 생활이 아니다. 낭만이 아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길 하나밖에 없다. 언제 어디로 가든, 이어져야 할.
광야에 홀로 선 자는, 온전히 신 앞에 홀로 선 자의 영을 알아본다. 그 눈빛으로, 그 눈동자 너머의 영을 본다. 그 음성으로, 그 너머의 영혼의 울림을 느낀다. 그 슬픔으로...... 그 쓸쓸하고 고귀한 여정을 들여다본다.
광야의 시간, 내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나는 여전히 광야에 서 있다.
그리고, 광야의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