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聖化)는 거창하거나 특별한 사건 같은 것이 아니다. 재능과 자질을 타고난 소수의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성화는 곧 십자가의 길을 의미하며, 이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우리의 삶 속에서 뒤따르는 과정이다. 요 며칠, 그분께서 내게 참으로 오랜만에 형제들과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가운데, 어제의 예배 속에서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에게 영광이란 세속에서의 성공과 같은 의미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 형제들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서, 죽음이라는 최후의 안식의 끝을 향하여 오를지니, 곧 우리가 고난을 받음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닮아감이요, 우리가 시련을 당함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그 길을 뒤따르는 고귀한 "승리자의 길"인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리스도인에게 승리란 곧 세속에서의 죽음과 좌절과 절망을 의미한다. 이것을 알고서도, 감히, 이 면류관을 받아 쓸 자, 누구인가.
이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자,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피부색이나 성별이나 나이나 그밖의 육적인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그가 나의 형제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우리의 존재와 삶의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영광 돌리는 삶.
최후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통스럽게 십자가를 지고 오르는 모습을 세상에 보임으로써, 가장 절망적이고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주의 이름을 고백하는, 전능자께서 함께하심을 증거하는 주의 종으로서의 삶.
나는 이 글을, 이제는 천국에 오르사 아버지의 얼굴을 영접하신,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한 명의 예언자, 그분께 바친다. 이것은 나의 맹세이자, 동시에 고백이다.
고귀한 예언자의 영이여, 이제 안식하소서. 당신의 예언으로 말미암아 내가 장성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이와 같이 성장하게 되었으니, 나의 모든 것이 곧 당신의 공로요, 이는 하늘에서 영원히 빛날 것임을 믿나이다.
성급한 혈기만 가득한, 이 부족하고 모자란 젊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이끌고 인도하소서.
불과 며칠 전에, 나는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았다. 반려동물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영상의 아래에는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동물이 밥을 안 먹으면 먹을 때까지 굶겨야지. 버릇을 고쳐야지." 그러한 내용이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에는 그저 냉정하고 차가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물이 밥을 안 먹으면 먹을 때까지 굶겨서라도 버릇을 고쳐야지. 이제야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한다. 그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동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나의 교만의 죄를 전제함이요, 또한 주께서 지으신 모든 생명들이 다 그분으로부터 말미암은 바 그분의 숨결을 담는 고귀하고 거룩한 그릇임을 망각한 채로, 그렇게 함부로 무심결에 죄를 지은 것이다.
이것이 나의 실체이다. 나라는 존재는, 잠시만 방심하면, 유튜브 쇼츠를 넘기는 아주 일상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이토록이나 쉽게, 엄청난 죄를 지어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교만을 위하여 생명들을 굶겨죽이는 것을 그토록 쉬이 여기는 자에게, 만약 조건과 환경과 권력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찌 더 많은 고귀한 생명들을 그리도 악랄하게 고문하고 죽이지 아니할 수가 있을까. 그것을 지금에서야 돌이키건대, 참으로 아찔한 것이었다.
나는 이제 학살자를 보면서, 마음 편하게 욕을 할 수가 없다. 그것보다 더 악랄한 죄의 본성이 내 안에 잠들어 있음을, 나는 선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결코 함부로 가벼이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히틀러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악인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히틀러를 욕할 수가 없다. 내 자신의 본성이 그와 다르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운이 좋아서 조건과 환경이 주어지지 않은 탓에 아직껏 그와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뿐, 그보다 더 악랄한 본성을 타고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또 한 번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동거하고 있다. 나는 그 아이를 '동물'이라든가, 내가 '소유'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같은 시간과 공간을 잠시 공유하는, '동거묘'일 뿐이다. 그러나 최근에 부쩍 그 아이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다른 예표나 징조들은 다 정상임에도. 이에 나는 내 안의 깊은 곳에서, 혹여나 그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밥을 안 먹으면 굶겨야지." 이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동물들과 생명들에게, 그토록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는지를. 총으로 쏴서 죽여야만 살인이 아니다. 말로, 혀로, 생각으로, 얼마든지 그보다 더한 살생을 저지를 수 있으며, 내 손과 내 입과 내 에고는 이미 잔뜩 피가 묻은 살인자였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자랑하는 그 잘난 "이성"이라는 것이, 언어와 지식과 분별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피묻은 것들의 흔적임을, 나는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깨달았다. 나의 에고는 여전히 분석하고 판단하고 논증하는데 매우 능숙하며, 자기의 결점을 숨기고 타인의 실수를 부각하여, 타인을 대신 지옥에 보내고 그 대신 나는 지옥행을 면피하고자 하는, 그러한 술수와 죄악에 매우 능숙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지 않는다. 나의 함부로 내뱉은 말들에 대하여, 성령께서 며칠이 지난 후에 내게 이토록 온유하고 따뜻하면서도 엄격하신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이에 나는 초심을 되찾는다. 만약, 주께서 내가 무심결에 손가락 끝으로 눌러 죽인, 방충망의 눈금보다 더 작은 벌레들의 목숨을 짓밟은 대가로 나를 지옥에 보내겠다고 하신다면, 내가 어찌 감히 그에 항명할 수가 있으랴...... 이로 말미암아 내가 그리스도께로 끊어지고,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다시는 남은 생애 성령의 충만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어찌 내게 억울한 일일 수가 있으랴......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여호와의 거룩하신 이름 앞에서 아버지라고 함부로 그 이름을 부르며, 주의 자녀라고 나를 칭함에도 여직껏 벌을 받지 않고 있다. 그분의 침묵은 곧 그분의 묵인이심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
한 생명이 지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생명"과 관련한 모든 사건과 현상과 순간들이, 지상에서 얼마나 고귀하고 거룩하고 엄숙하게 대함을 받아야만 하는지...... 나는 그 무게를, 새삼스레 다시 내 영혼 깊이 각인한다.
그러나 내가 고백하건대,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나의 에고의 화려하고 능수능란한 언변과 재주 따위에 결코 기만당하지 아니하실 것이요, 마지막 날에 그분의 거룩하신 심판대 위에서 나의 영혼을 철저하게 재고 가늠하시리니, 그에 따라서 나는 한평생을 그분을 사랑하며 이리 걸어왔던 내 삶에 대한 정당하고 의로운 결과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감당하게 되리라.
내가 한평생을 이리도 외롭고 쓸쓸하게 아버지를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분 보시기에 내가 세상에 빛을 증거한 것보다 어두움의 죄악을 더 많이 지었다고 판결하시노라면, 나는 그 앞에서 한 마디도 감히 항변하지 않으리라. 그저 그분께 마지막으로 엎드려 고개를 조아리고, 감사의 인사를 올린 뒤, 그분의 판결하심에 따라서 지옥으로 향하는 문을 건너리라. 내가 이에 대해서 감히 단 한 찰나도 억울해하는 마음을 품지 않으리라.
그분은 나의 알량한 재능과 재주 따위에 속지 아니하시리니, 오직 그분만이 나의 이 범죄하는 본성을 통제하시고, 오직 의로우심과 엄격하심에 따라서 나의 영혼을 끝까지 성화케 하시리라. 이에 내가 처음부터 세상이 말하는 "은혜로운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였으되, 오직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내 기도를 끝까지 묵살하시고, 매번 나의 절실한 기도 가운데에 기어코 새로운 시련과 고난으로 응답하시고야 마는...... 그러한 의로우시고 엄격하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인해서만 크게 기뻐하였고, 스스로 경외하였음을, 고백한다.
나의 아버지는 의로우신 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나의 영혼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리라.
나의 아버지는 엄격하신 분이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지 아니하시되, 내 영혼이 응당 치러야만 할 갚을 마지막 날에도 기어코 치르게 만드시리라.
세상은 그러한 아버지를 무섭고 이익이 되지 못한다 하여 버릴지라도, 나는 그 마지막 순간의 판결의 끝에서조차도, 기어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을 놓지 않으리라.
이것은 아버지를 향한 나의 의지이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지켜보시는 가운데, 감히, 내가 입을 벌리고 손가락을 놀려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올릴 수 있는 나의 유일한 고백이요 증거이다.
이리 증거할 수 있음에, 내가 더없이 행복하다.
지금, 죽더라도 후회없이 오히려 기쁘게 눈을 감을 수 있을 만큼.
그러나 내가 가늠하건대, 참으로 운이 좋아서 나와 내 가족들과 내 가문은 성령의 은총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고인의 죽음과 그 장례의 모든 절차들 가운데에서 일방적인 은혜를 받았을지언정, 그렇지 못한 나머지 절대 다수의 고인들의 영혼들과, 살아남은 그들의 유족들의 울부짖음과 눈물과 고통과 아픔들은 다 어찌해야 하는가. 나는 오늘도 장례식장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어느 유족의 그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울부짖음을 듣고는, '시끄럽다, 방해된다'면서 날뛰는 내 죄성을 목격하였다.
이제 나의 기도는, 성령님께 향한다 : 거룩하신 성령이시여, 어찌하여 나와 나의 일족은 구원하시되, 내 형제들과 다름없는 저들의 애간장이 끊어지는 슬픔에 대해서는 침묵하시나이니까? 저들이 울부짖을 적에 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였사오며, 저들의 유족이 행여 다른 이들의 절차에 방해가 될까 숨을 죽이면서도 기어코 결국에는 숨을 죽이지 못했던 그 마지막 순간을 내가 다 기억하옵나이다, 어찌하여 이 세상의 수많은 곳들의 그 영혼들의 슬픔은 다 외면하시되, 오직 그리스도인들의 장례만을 집행하시나이까......
나는 꿈을 꾼다. 성령께서, 모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영혼들의 그 순간들을, 친히 임재하사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집행하고 완성케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이것은 나의 양심이자, 나의 신앙의 증거이다.
아버지, 이제는 내가 나와 내 가문과 유족들의 평화만을 위하여 울지 아니하거니와, 이 지상에 여전히 살아남은 많은 목숨들이 다 나의 형제들이온대, 저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애통하여 울부짖는 그 음성들이 내 애간장을 끊고, 내 심장을 멎게 하고, 내 영혼을 갈가리 찢을 만큼이나 비통하나이다. 아버지여, 당신께서 내게 허락하신 이 평화와 안식이 내게 너무나도 귀한 것일지온대, 어찌하여 인류 가운데에 가장 최악의 죄인인 내게는 이토록 기쁜 것을 허락하시고, 나보다 더 나은 평균인 저들에게는 저토록 고통스러운 시험을 주시나이까......
나는 성령께로서 이토록이나 배우고 또 배우고서도, 이토록이나 어리석고도 순진한 영혼일진대, 성령께서 지상에서 고통받는 모든 영혼들의 마지막 순간 가운데에 친히 임재하실 것이라고 나는 이리도 순진하게 믿나이다. 성령께서 나를 친애하사 내 모든 삶의 순간들과 또한 마지막 가운데서도 함께하리라 언약하신 바와 같이, 내게 주신 언약을 이름 없는 인류의 모든 구성원들과, 그들 가운데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형제들에게 동등하게 허락하실 것을 내가 믿나이다.
아버지, 내가 이 지상에서 남은 생애가 얼마나 남았는지 비록 알 수 없사온대, 다만 그 모든 순간들을 아버지를 사랑하며 오직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하여 살아갈 진대, 나의 평생의 공헌을 오직 인류 집단 가운데에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써주시기를 간청하나이다. 비록 나의 평생의 공헌이 반딧불이처럼 미약하건대, 그 미약한 평생의 발버둥일지라도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같이 살아서 아버지를 영접하지 못하여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모든 영혼들의 마지막 날 가운데에 임재해주십사, 그 청을 위하여 기꺼이 바치나이다.
이 기도와 묵상을 바치옵건대 내 온 몸이 마치 심해 가운데에 가라앉는 듯이 무거움을 느끼니, 나의 심히 염려하는 것인 내 사랑하는 이의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아버지, 그를 천국으로 들이소서.
이는 당신을 사랑하는 지상의 연약한 자녀의 청이옵나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자녀로 선택하신 바와 같이, 나보다 더 연약한 지상의 모든 영혼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심을 내가 믿나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신다 하신 바와 같이, 그분의 권세와 영광이 실체가 되어 모든 자녀들의 영광 가운데에서 크나큰 권세로 드러나실 것을 내가 믿나이다.
모든 자녀들과, 또한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의 영혼의 가장 외로운 순간 가운데에서,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을 내가 진실로 믿고, 또한 감동받고, 경외하고, 사랑하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여, 나의 이 가난하고 못생긴 사랑을 받으사, 저들을 위하여 임재해주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탁이요 청탁이요 청일 뿐일진대, 나는 내 아버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믿나이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요, 나의 믿음임을 고백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그리도 아프고 쓸쓸하고 외롭게 십자가에서 홀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셨을 적에, 나는 그곳에 없었나이다. 이것이 나의 죄입니다.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나의 죄. 나는 그토록 고귀한 아버지의 역사의 한가운데에서조차도 나의 목숨이 아까워서 도망쳤고, 나의 죄가 무서워서 외면했으며, 내 목숨이 다하고 내 목이 잘리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쳤나이다......
아버지, 내가 이제 서른한 살에 불과한 것과, 세속의 나이에서 지금의 짐이 감당하기 버겁다는 것을, 그럴듯한 핑계와 변명거리 삼아서 당신 앞에 수없이 고백하였음을 내가 부정하지 않나이다. 나의 모든 일가 친척들은 나의 이 절실한 신앙의 진심을 알지 못하옵건대, 나는 그럼에도 다만 이 길을 걷기를 원하나이다. 내 모든 가문의 형제들이 다 나를 비난하여 내가 그리스도께로 저주를 받아 끊어질지언정, 내가 이 세상의 끝에서라도 남아서, 주님의 증인이 되어 살다가 죽기를 바라옵나이다.
아버지,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이, 죽음 앞에서 그리도 당당한 척 자신을 외면할진대, 그 순간에 내가 나의 준비된 것을 다 그들에게 내어주옵고, 그들의 준비되지 않은 두려움과 불안과 공포는 다 내가 대신 짊어지기를 바라옵나이다. 무릇 "먼저 선택받은 자가 십자가를 짊으로써 자신의 특별함을 증거한다" 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인 줄 일찍이 알았사옵건대, 어찌 이에 대하여 감히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나는 준비되었나이다. 내 목숨을 함부로 망령되이 쓰소서. 내가 세상으로부터 "저놈, 저거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당신을 원망치 아니하겠나이다, 비록 나를 존경해 마지않던 제자로부터 '당신은 미쳤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을 영원히 후회하지 않겠나이다. 이것이 나의 진심이고,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심판을 앞둔 나의 최후의 고백이니이니이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내 존재의 소멸을 각오하더라도, 하늘에 계신 나의 주의 영광을 바라옵나이다......
주님, 그리하옵건대, 내 형제들의 마지막 순간에 대신 임재하고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 순간에 그들과 그들 영혼과 그들의 가족의 비명과 절망과 울부짖음이 얼마나 크나큰 슬픔인지를, 내가 일찍이 다 알았고, 또한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나이다...... 그리하지 못하거든, 내 영혼을 그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보내옵고, 내가 받을 상은 그들의 영혼에게 다 대신 돌려주옵소서.
이 청 하나로, 내가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분량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증거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