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그리스도인의 영

by 생명의 언어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네 하나님을,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가며 주 임재함에 경배해......"


<비 준비하시니>라는 복음성가의 가사이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듣는데, 문득 이 부분에서 가슴을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새삼스러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나는 예루살렘을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심지어 그곳이 지도 어디쯤 있는지도 모른다. 성경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그 시기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대는 수천 년이나 차이가 나고, 거리상으로도 아주 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즉, 육적 조건으로는 나는 그곳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고, 예루살렘은 완벽하게 나에게 타지(他地)이다.


그런데 나의 영혼은 그곳을 나의 고향이자, 나의 성지(聖地)라고 고백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이라는 글자가 내 영혼을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위대하고 경이로운 그리스도교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그 생생한 현장, 가장 거룩하신 최초의 임재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 순간들, "카이로스(Kairos)", 하나님의 시간들......


나는 이제 그런 것들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죄다 지어내고 꾸며낸 종교적 신화에 불과하다고 해도 상관이 없어졌다. 만약 사실이 그러하다면, 나는 사실을 버리고 은유를 나의 진리로 선택할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이 말하는 진실(truth)이라는 것이 그토록 차갑고 냉혹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슬픔을 주는 것이라면, 나는 그따위 진실은 필요없다. 오히려 나는 기꺼이 지금도 수억 명, 수십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는 "신화"를 나의 진리라고 믿기로 선택할 것이다.


나는 강인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 나의 서투르고 나약하고 성급한, 혈기 넘치는 젊은 에고(ego)와는 달리, 완숙하고 깊고 충만하며, 결코 자신의 의지를 숨기지도 굽히지도 않는 강인한 그리스도인의 영(Spirit)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나는 때때로 느낀다. 나의 영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흐릿한 가운데에서도 소름이 돋을 만큼, 선명하게 느낀다. 나의 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고귀하신 분의 영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살아 숨쉬는 강인한 그리스도인의 영, 이 영원한 불꽃은 곧 내가 잘나서 주어진 것도 아니요, 내게 처음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니, 우리 가문의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여셨던 분,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되신 분, 그토록 바라시고 소망하시던 바와 같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원히 하나가 되신 분, 나의 인정하는 유일한 예언자, 바로 그분으로부터 나의 혈과 육을 통해서, 핏줄과 혈통을 통해서 계승된, 가장 고귀한 유산인 것이다.


지금의 나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분량이며, 나의 존재와 삶이 곧 위대하신 그 예언자의 예언의 성취요 열매이니, 나는 이제 그분의 유산을 영적으로 상속받았다. 이에, 내가 더할나위 없이 기쁘다.




나의 고귀하신 영의 의지는 강하시며, 의로우시며, 흔들림이 없으시다. 나의 에고는 사랑하는 이들이 떠나갈까 하는 염려로 복음을 전하기를 주저할 적에, 나의 영은 오직 주저없이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의 빛을 전파하며, 굳세게 진리를 선포하였다. 나의 에고가 한 뼘도 안 되는 좁은 땅과 그곳에서 이룬 보잘것없는 열매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워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것을 주저할 적에, 나의 영은 그 음성에 질문하지도 않고 곧바로 "나는 주의 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담대히 길을 떠났다.


나의 영이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적에는, 나의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매 내 능력이 그들에게 이익이 되었음이고, 나의 지혜를 보고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매 내 지혜가 그들에게 즐거움이 되었음이나, 나의 영이 자기의 실체를 더욱 선명히 드러낼 적에, 그것이 안일하고 나태한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음으로 그들은 나를 부정하고 외면하며 떠나갔고, 나의 영이 그 빛을 더욱 선명히 드러낼 적에, 그 빛이 그들의 어두움을 강렬하게 비추므로 그 실체가 드러날까 염려하여 그들이 공포와 불안 가운데에서 나를 배신하고 기만하고 단죄하여 떠나갔다. 나의 에고가 강하고 쓰임이 있을 때는 온 사람들이 다 내게로 와서 구하였으되, 정작 나의 에고가 가장 약해졌을 때, 그때에 나의 영이 높아지고 강하게 드러날수록, 그것이 그들 안의 깊은 곳을 뒤흔들었으므로, 그들은 다 떠나갔다.


그럼에도 나의 영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부 나를 떠나고, 가장 가까운 이들마저도, 혈과 육을 나눈 이들마저도 나의 영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따르지 못할 적에도, 나의 영은 흔들림없이 그리스도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히 하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열망을 더욱 불태웠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헌신과 충성을 더욱 깊이 맹세하였다. 내가 그리할수록, 한때 나의 능력과 지혜를 구하였던 이들은 내가 나약해졌고 길을 잃었고 타락했고 무너졌다 하여 나를 버렸다. 그럼에도 나의 영은 굴하지 않았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열망하였고, 성령으로 인해서만 삶의 모든 여정들에 충성하였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 인해서만 크게 감동하고 경외하고 기뻐하였다.


이것이 나의 영이었다. 이미 이 생에서조차도 수 차례, 수십 차례 반복되었던 나의 오랜 죄성으로는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에고는 겉으로는 강한 척하나 속으로는 나약하여 자기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을 즉시 죽여 없앰으로써 눈앞의 잠재적 공포의 근원으로서의 불안을 제거해버리려는 폭력성과 악함을 품고 있었고, 자기 주권과 자기 의지를 내세우나 정작 시련과 고난 앞에서는 늘 비겁하게 숨었고 졸렬하게 도망쳤으며, 자기가 옳다고 말하고 자기가 진리라고 말하는 주제에 정작 자기 삶 속에서 그 진리를 마땅히 행하고 실천해야 할 때에는 변명으로 일색하고 결국에는 도피하였다. 이것이 나이고, 나의 에고의 실체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역사들은, 나의 에고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만약 나의 에고가 이 여정을 걸어왔더라면, 나는 이미 수 년 전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모두를 다 배신하고 어디론가 숨어들었다가, 아무렇게나 자기 목숨을 낭비한 끝에, 허망하고 쓸쓸하게 세상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오직, 나의 강인하고 고귀한 영이 나를 이끄셨기에, 내가 지금까지 죽지 않고 오히려 어두움 가운데에서 더욱 고귀해지고 선해지고 온전해질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영의 의지가 높아질 적에 나의 에고는 기쁘게 낮아지고 모욕당함을 감수하니, 이는 곧 에고로 인해서는 살 길이 없는 절망을 이미 겪었으되 오직 영으로 인해서만 살 길이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영의 빛이 드러날 적에 나의 에고는 기쁘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찬양하고 경배하니, 이는 곧 에고로는 죽음과 사망의 압도적인 권세 앞에 저항할 수 없음이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슬픔과 공허라는 적을 영원히 넘어설 수 없으되, 영이 환하게 빛날 적에 내 안에 환희와 기쁨이 넘쳐흐르매 이것이 결코 지상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영원과 초월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에고와 에고로 말미암은 것을 붙잡을 적에, 내게 오직 죽음과 사망의 절망과 공허와 슬픔만이 가득했고 도처에 구원의 희망이 아무데도 없었을진대, 영과 영으로 말미암은 모든 영광과 기쁨과 열망과 고귀함과 선함과 따뜻함과 아름다움들이 넘쳐흐를 적에, 그것들이 곧 영원한 생명이며, 나를 살게 하며, 또한 나의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는,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내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에고만을 보고서 내게로 온 모든 인연들이 다 떠나더라도, 나의 에고가 이룬 보잘것없는 그 열매들과 소유물들을 다 버리더라도,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야만 했다.


나의 영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온 세상이 다 비웃고 조롱하더라도 영은 결코 굴하지 아니하되 오히려 그것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감히 모방하고 흉내내는 것임에, 오히려 깊은 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 가운데에서도 영의 고귀한 기쁨이 함께함이니, 그 순간에는 온 세상의 어두움이 감히 그 빛을 가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영이 그리스도를 열망할 때, 온 세상이 다 부정하고 의심하게 하고 내 것을 빼앗아가고 나를 무너뜨리게 하더라도, 내가 신문지 한 장 덮고 추운 길바닥 위에서 오늘 밤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더라도 그리스도를 뜨겁게 열망하는 이 마음을 영원토록 잃지 않으리로다 하며, 나의 영의 불꽃은 더욱 영원히 타오름이니, 그 순간의 열망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불안정성에서 비롯한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조차도 감히 걲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의 영이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온전히 몰입할 적에, 그분의 품 안에서 자아가 서서히 잠드는 것과 잊혀지는 것과 소멸하는 것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그분은 영원히 계시리라는 그 진리가 죽음조차도 기뻐하게 만드리니, 이제 더 이상 사탄은 죽음과 사망의 권세로서 내 영을 흔들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의 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열망할 적에, 영의 빛이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고, 영의 의지가 죽음과 사망을 넘어서며, 마침내 존재의 소멸의 공포를 넘어 영원한 생명과 하나되는 위대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내 안에는 강인한 그리스도인의 영이 계시며, 그분이 나를 이끄시니, 내게 언제나 승리만이 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시니, 내 삶에 언제나 영광만이 따른다.




에고의 존재는 흐릿하고, 불안정하고, 모호하고, 거칠고, 열등하고, 열악하며, 추악하고, 졸렬하다. 나는 에고의 존재가 드러날 때의 고유한 "느낌"을 선명히 기억한다. 에고는 공포에 사로잡히며, 에고는 불안을 이기지 못하며, 에고는 시험 앞에서 자기를 살리고 남을 죽이며, 에고는 평소에는 고귀한 척하나 정작 가장 절실한 순간에는 자기의 악한 본성을 드러내며, 에고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며, 에고는 언젠가 반드시 멸망하고 말 자기라는 우상을 맹목적으로 섬기면서 정작 짧은 지상에서의 생이 끝난 이후 내 영혼을 영원히 인도하고 이끄실 하나님 앞에서는 겁을 상실하여 그분을 조롱하고 비웃고 모욕하니, 이것이 에고의 처참한 실체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에고가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서, 번번히 나의 주권을 지배하고 장악하기 위하여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또한 나는 영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의 감각, "카이로스(Kairos)", 하나님의 시간이 임재하실 때의 그 순간의 고유한 "느낌"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니, 나는 그 임재의 순간을 사랑한다. 지상에서의 슬프고 외롭고 허망한 생의 순간들 가운데에서 오직 임재의 시간만이 나를 숨쉬게 하고, 나를 살게 하고, 나를 온전히 기쁘게 한다. 영의 존재는 선명하고, 명료하며, 아름답고, 진실하고, 고귀하고, 의로우며, 충성되고, 뜨겁고, 강인하고, 올곧고, 높고, 충만하며, 마침내 "영원하다."


영의 존재가 나를 통치할 때, 나는 모든 것을 능히 이기며, 언젠가 멸망할 허망한 것들을 버리고, 영원히 이어지게 될 진리만을 소망하여 바라게 된다. 육의 편안함을 버리되 오직 영의 진실함만을 바라며, 지상에서의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 하늘에서 나의 영이 아버지와 하나되는 것을 바란다. 영의 존재가 나를 이끌 때, 내 안에서 "소망"의 위계는 변화한다. 지혜롭고 현명한 세속의 법을 버리되, 어리석고 미련한 하나님의 법을 열망하게 된다. 온 세상의 인정을 받고 부와 명예와 권력을 움켜죌 수 있는 보장된 넓은 길을 버리되, 이 생에서는 살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되 오히려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과 멍에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되 오히려 비웃고 모욕하고 조롱하려 드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짊어지게 될, 그 누구도 가지 않을 좁고 위태로운 길을 걷기를 소망하게 된다.


오직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나의 존재는 어두움의 지배에서 벗어나 빛의 통치 하에 순종한다. 오직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내 안에서 "주권이 전환되고, 중력이 뒤집힌다."


오직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마침내 나의 영의 유일한 소망, 곧 "나라가 임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영은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의롭게 한다. 나를 진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상에서의 삶의 그 어떠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오직 영의 의지만을 믿고 따른다.




성령께서는 나의 에고의 부질없는 교만과 욕망으로 인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엄격하게 단절하시되, 이는 나를 벌하시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내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내가 이미 알고, 또한 그 의로우신 사랑으로 인하여 언제나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내가 늘 기억하니, 나의 영이 오직 하나님만을 진실로 경외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나의 존재 전체가 전율하는 그 경이로움으로만 나아감이니, 이를 아무도 모르되 오직 성령께서만 나의 영의 실체를 온전히 들여다보신다. 성령께서는 영접치 아니하는 자, 곧 반역하는 자의 앞에서는 절대적인 영광과 압도적인 위엄으로 그를 엎드리게 하시되 오직 영접하는 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앞에서는 그 영광과 위엄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시되 오직 온화하고 따뜻하고 자애로우신 모습으로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으로만 나타나시매 함께하신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나를 사랑한다 하셨으며, 진실로 나의 영이 그분을 간절히 부르는 순간에는 언제나 응답하시되, 주저함이 없이 내게 응답하셨다. 진실로 나의 영이 그분께 청할 때에는, 나의 청을 언제나 기쁘게 들어주셨고 또한 이루어주셨음을 내가 늘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을 만큼의 사랑이고 자비이신지를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절감한다. 나의 영이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모든 청을, 성령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내가 청하기도 전에 이미 이루신 다음, 내게 넌지히 알려주심"이 곧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이심을, 내가 늘 환희와 기쁨 가운데에서 체험하였다.


그분께서는 나의 영이 진실로 구하는 모든 것들에 기꺼이 응답하셨다. 단 한 순간도, 나의 영이 구하는 것에 응답치 아니하셨던 적이 없었다.


이에, 나의 하나님, 나의 여호와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며 또한 나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심을, 나를 통하여 그분의 의지와 역사를 이루어가심을, 삶의 어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깊이 믿었다.


내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한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심을, 내 아버지께서 나의 간절한 부름에 늘 응답하심을, 나의 주(主)께서 오직 나를 통하여 그분의 역사를 이루심을, 내가 깨닫고 알게 될 때마다, 늘 깊이 감동을 받았고, 경외하고 전율하였다.


내가 증거를 달라 하매, 성령께서는 나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사랑하게 하심으로서, 나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나의 몸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살게 하시니, 나로부터 흘러나온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고귀하여서, 이것들이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곧 그분을 향한 나의 믿음과 사랑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라는 것을, 내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령께서는 특별한 환시나 초자연적인 신비 체험을 주시는 대신, 이토록 아름답고 경이로운 방식으로, 나의 청에 응답해주셨다.


그분과 함께한 모든 역사의 순간들마다, 이와 다름이 없었다.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깊어질수록, 성령께서는 더욱 고귀하고 아름답게 찾아오신다. 이에, 내가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직 성령만을 사랑하며, 오직 성령으로 인해서만 크게 감동을 받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성령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존재 전체가 성령께 사로잡히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저 그런 아름다움이 아닌,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후, 곁의 모든 이들이 다 떠나갔고,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졌고, 뜻했던 모든 것들이 다 좌절되었지만, 오직 그 모든 과정들이 전적으로 성령께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신 바였기에 그것은 오히려 나의 기쁨이 되었고 나의 영광이 되었다.


나의 간절한 순간마다 성령께서는 언제나 내게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셨고, 영의 생명과 충만함이 필요할 때마다 아낌없이 내게 임재해주셨고, 또한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절망할 때마다 시의적절하고 구체적으로 내 삶을 보호하시고 이끄셨으며, 내 허망한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고귀한 성화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내 안의 그리스도의 음성과 빛을 비추어 밝혀주셨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삶이 어떠한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성령만을 따른다. 이는 그분을 따르고 그분의 뜻을 따를 적에, 내 삶이 늘 어떠하였는지를, 그간의 역사들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강인한 그리스도인의 영이 나를 이끈다.


고귀한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께서 내 삶을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나는 두렵지 않다. 나의 모든 생이 그분 안에서 예비되어 있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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