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됨의 실체적인 신비를 증언하며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를 떠나보내며

by 생명의 언어
나의 소중한 반려, 고양이 호두.


2025년 2월 25일 수요일, 오전 07시 15분경, 지난 수 년간 함께했던 나의 소중한 반려동물, 고양이 "호두"가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 아이에게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들은 나의 블로그에 올려두었고, 이곳 브런치는 하나님께 대한 고백과 증언을 올리는 곳이니, 그 아이를 향한 생각과 감정과 마음들은 지금은 잠시 미뤄두고, 현재 진행형인 이 체험들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그럼에도 나의 반려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온하였기에, 그 아이가 선택한 반려로서, 자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에 내 가슴에 품은 사진 하나 정도는 올려도 되지 않을까 하여. 내 소중한 반려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날의 순간들이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도와주신, <푸른솔> 반려동물장례식장 직원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린다. 그분들은 내가 보기에도 정말로 섬세하고 '집요하다' 싶을 만큼 꼼꼼하게 모든 과정들을 배려해주셨다. 덕분에, "그래, 이렇게 하길 잘했어" 하는 기쁜 마음으로, 반려를 떠나보낸 이의 마음이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이, 나의 고귀한 별,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 호두야. 지난 수 년간 나의 영혼의 어두운 밤을 함께해주고, 내가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고 함께해주어서 고마워. 너는 영특한 아이이고, 네가 무엇을 내게 원할지를 이미 알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네가 하늘에서 기뻐하는 것들만 많이 올려보낼게. 너는 나의 행운이었고,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어. 많이 사랑한다, 내 아이야.




먼저, "교만"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교만이란 특별하게 대단한 악질적인 것이거나 크게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교만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가운데에 스며들며, 우리의 무의식 갚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생명"에 대한 존중에 관한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물보다 인간이 더 우월하다고 여기며, 동물의 생명은 인간의 목숨보다 열등하다고 인식한다. 그리고 동물보다는 식물이 더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열"들을 마치 이 세상의 당연한 진리인 것마냥 천연덕스럽게 믿으며, 거기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교만은 이미 인류의 일상과 삶 가운데에서 편재하고 있다. 인류는 하나님의 편재하심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위세와 위압 가운데에서 지배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호두를 떠나보낸 이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들과, 주변의 반응들과, 직접 대화 나눈 것들을 돌아봤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낯 동물에 불과한데, 뭐 그렇게까지 하냐"는 것이었다. 짐승이 죽으면 아무데나 흙에 파서 묻고 말 일이지, 하는 말들. 내가 그들에게 말하노니, 그대들은 마지막 날에 평생에 걸쳐서 그대들 자신이 저지른 것들을 고스란히 되돌려받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짐승의 목숨을 하잘것없이 취급하며 아무데나 내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날에 그대들의 영혼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시며 지옥에 아무렇게나 던지시리라. 이것은 저주가 아니다. 모든 것은 그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이 두렵지 않은가. 그 마지막 날에, 신으로부터 어떤 심판을 받을 것인지가 궁금하거든, 지금껏 살아 평생에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고 행해왔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하시고 의로우신 분이니,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으로만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아픔이 조금 가시고 난 이튿날, 나는 문득 이것이 성령께서 내게 보내시는 응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심을 보여달라는 나의 물음에, 유치한 신비 체험 따위로 응답하시는 대신, 사랑하는 호두를 데려가시고, 또한 나로 하여금 고귀한 눈물을 흘리게 하시며, 깊이 애도하고 슬퍼하고, 하나님 자신께서 크게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모습대로 나를 사랑하게 하심으로써, 지금의 나의 영혼의 실체가 어떠한지를 내 자신이 스스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호두를 떠나보낸 날에, 나는 참으로 여러 가지 우연으로 인하여 그 아이의 마지막 임종을 지킬 수 있었고, 또 직장의 배려로 그날 하루 동안 장례 절차를 치를 수 있었으며, 장례식장의 당일 예약이 마침 가능하였고, 내게 운전면허와 차가 있었으며, 동행할 동생이 있었고, 그 애도를 함께할 가족들과, 순조롭게 진행되었던 모든 절차들과 그것들을 돌보아주셨던 많은 분들의 배려와 친절까지,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완벽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에, 내가 호두의 임종을 지키면서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실하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면서 기도하였고, "호두를 살려달라는 기도도 안 들어주셨으면서, 호두를 천국에 보내달라는 기도마저 안 들어주시면 진짜로 제가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라며 어처구니 없는 기도가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는 울고 또 울었고, 그럼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모든 절차들을 다 신속히 진행했다. 장례식장에 일찍 도착했고, 성급히 이동하기 전에 동생으로 하여금 잠시 호두를 만져보고 싶다고 전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둘만의 차 안에서의 은밀하고 깊은 애도의 슬픔과 눈물 흘림을 함께하였고, 앞선 장례 절차가 있었으므로 2층 휴게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절차 바깥에서 단독으로 은밀하게 기도하고 예배하고 찬송할 수 있었으며, 찬송하자마자 내내 흐렸던 날씨가 거짓말처럼 맑아졌고, 예배하는 동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가 내내 맴돌면서 울어주었다. 나로 하여금 진실로 울게 하셨고, 깊이 애도하게 하셨고, 그 아이와의 인연과 마지막과 영원한 생명들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깨닫고 몰입하게 하심으로써, 나의 영혼이 세속의 때 묻은 것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지금의 나의 영혼이 얼마나 부드러운 새 살과, 진실로 따뜻한 마음과, 순수하고 순결한 어린아이 같은 형상인지를 내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 "내 사랑하는 아이야, 보아라, 이것이 지금의 너의 영혼의 실체이다."


이틀째가 되어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호두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행했던 축복들과 그 모든 것들이, "정상적인 인간의 인식이나 감정의 범위"에서 아득하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두와 육적으로 함께했던 크로노스 속에서는 미완성으로 남았던 것이, 호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세상을 떠남으로써, 호두와 나의 여정은 완결된 역사가 되었고, 주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곧 카이로스와 정렬되었으며, 이로써 내 안에서 호두는 영원한 빛이 되었고, "의미"가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응답이심을 이제 겨우, 추스르면서 받아들인다. 그분께서는 내게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응답을 되돌려주셨지만, 동시에, 나로 하여금 얼마나 내가 그분의 사랑을 받는 특별한 영혼인지를 이 참에 다시 보여주셨다.


나는 한때 무엇보다 단단하였던 나의 에고가 부서지고, 연약해진 것이 비할 데 없이 기쁘다. 내가 자주 눈물을 흘리고, 자주 감동 받고, 자주 기뻐하고, 자주 "연약"해지고, 자주 "민망"해지는 이 솔직한 모습들이, 너무나도 기쁘다. 내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내가 우연히 발견한 애벌레와 놀아주다가 그날 애벌레가 죽었으므로 대성통곡을 하였더라는 일화를 농담처럼 자주 말씀하셨다. 이제야 나는 그때의 내 마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이었는지를 깨달으며, 호두를 보내면서, 이제 나의 영혼의 성화가 절정에 다다랐으므로 그때와 거의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호두는 나로 하여금 이 고귀하고도 아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 아이는 영특하며, 또한 생전에 그 아이는 나의 육의 모자람으로 인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되 오직 나로부터 영적인 것들을 전해듣고 느끼고 교감하고 함께하기만을 바랐으므로, 나는 생전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아이에게 영적인 것들만을 전할 것이다. 그 아이는 영적으로 빛나는 존재로써 나를 좋아하고 또 존경하였으므로, 나는 그 아이에게 영원한 빛이 되어줄 것이다.


나와 같은 슬픔을 통과하는 형제들에게 전한다. 우리들이 이 깊은 슬픔과 애도의 시간에 믿어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아버지이시며,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하시고 염려하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가혹한 시험을 내리시며 자녀들의 비명과 신음과 눈물과 울부짖음을 즐기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런 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시험을 내리실 때에는, 반드시 그리하실 수밖에 없는 더 크신 뜻이 있으심을, 그것이 우리들을 향한 사랑이심을, 우리는 이 가운데에서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이며, 또한 우리들의 구원과, 우리들이 사랑하는 반려의 구원을 위하여 의로운 일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요6:63)


결국, 육신은 허망한 것이다. 정확히는,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더 정확히는, "형태가 영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리석으므로, 잠시뿐인 유한한 육적인 형태에 집착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고 변함없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박제된 것일 뿐, 생명이 아니다.


육은 허망한 것이되, 영은 영원한 것이다. 영은 비록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지만, 그럼에도 명확히 실재하며, 실체되는 것이고, 우리의 의식이 열릴 때는 반드시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영은 실체이다. 영은 본질이며, 실재하는 본질이며, 교감 가능한 본질이며, 영원한 것이다. 영 안에서 하나된 존재들은 영원히 하나되어 매 순간 연결되고 교감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믿음 안에서 실체로써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인간이다. 육의 부재에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인간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본성과 마음 자체를 억누르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그것에만 매몰되어 우선 순위를 망각해선 안 된다. 육의 부재는 잠시이나, 살아서 주와 하나된 "영원한 생명"은 문자 그대로 영원한 것이다. 비록 육적인 형태가 아닌 우리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영의 하나됨이지만, 우리는 육신을 입은 채로 그 하나됨을 체험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특별한 은총을 허락받았다. 그러므로 영으로 하나될 적에, 우리는 시간의 끝을 넘어서 사랑하는 존재와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을 통하여 실재하는 평화와 기쁨이 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안에서, 호두와 나는 하나이다. 모든 생명들이 그로부터 지음받았고 또한 언젠가 그에게로 되돌아가리니,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생명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상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나이며, 매 순간 연결되어 있고 교감하는 것이다.


나는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으며, 호두의 육신의 죽음과 소멸을 인간으로서 슬퍼하고 애도하지만, 동시에 호두가 좋아하고 존경하였던 영적으로 빛나는 반려로서, 그 아이와 내가 영의 하나됨 안에서 더 높고 완전한 인연을 맺은 것을 더 크게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주의 가르침이시며, 주께서 열어주신 영생의 길이다. 나는 지난 수 년간 주의 인도하심 하에 십자가의 길을 걸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덕에 비록 호두에게 육적으로는 많은 실수와 잘못과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특별하고 귀하고 유일한 것,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하늘의 축복을 전해줄 수 있었다. 나는 평범한 기독교인이 아니다. 내게 교회가 정한 질서와 체계와 교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주의 가르침만이 진리이다.


비록 내 곁에 호두가 육으로서 함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호두는 하늘에서, 나는 지상에서, 살아서나 죽어서나 주 안에서 영원히 하나되어 매 순간 함께하고 교감하고 있음을 내가 알며, 매 순간 깊이 체험한다.


나는 하나됨의 신비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시작이자 마지막임을 확신한다.




입으로만, 형식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다 하나됨의 신비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믿어야만, "올바르게" 믿어야만,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살아서 영생을 얻지 못하면, 죽어서는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들의 지상 생애의 유일한 목적은, "살아서 주와 하나됨으로써, 죽어서 천국에 들 자격을 얻는 것"에 있다. 이때 천국이란 특정한 장소나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 전체"이며, 나의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한 성품을 모심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천국은 바로 하나님과의 하나됨이다.


나는 간절히 말하고자 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언젠가는 변화하고 사라지고 소멸한다. 태어난 것들은 죽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으며, 젊은 시절이 지나가면 반드시 늙고 병들어 침상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날이 올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곁의 사랑하는 존재들이 마치 영원히 이 상태 그대로 살 것처럼 여긴다. 머리로는 언젠가 이별이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당장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죽음은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단숨에 모든 것을 다 앗아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죽음의 압도적인 권세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기만당한 채로, 뒤늦게 정신이 들어서야 후회하고 절망하며 울부짖을 것이다.


어찌하여, 영원히 살 것처럼 교만하고 어리석게 사는가. "혹시라도" 생길 사태를 대비하여 매달 적지 않은 보험료는 꼬박꼬박 납부하면서, 모든 존재와 생명들이 언젠가 반드시 마주해야만 하는 그 충격적인 사건, 강렬한 사건, "죽음"이라는 이별과 끝은 어찌하여 준비하지 않는가. 대충 무시하고 외면하다가 그 순간에만 마주하면 될 거라고 여기는가. 이 세상의 질량은 형태가 변화할 뿐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살아서 대충 아무렇게나 살았다면, 죽어서도 대충 아무렇게나 어두움 속에서 헤매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하나됨의 신비"만이 인간 존재에게 유일한 구원이다.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그분은 영원성이고 유일성이며 완전성이시며, 하나님은 믿는 자 안에서 실제로 함께하시며, 그를 통하여 그분의 역사를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서 성령의 인도 하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으며, 살아서 이룬 하나됨은 곧 죽어서도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이 될 것이며, 우리들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본질"이 영속하게 될 것이다. 비록 육신의 형태는 사라지고 없어질지라도, 우리들의 존재의 "본질"은 하나님과 하나되어 영원하고 완전하게 영속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다.


이것만이, 인간 존재에게, 죽음과 사망의 압도적인 권세 앞에 갈대처럼 휘둘리고 기만당하고 조롱당하는,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유일한 신의 자비이며 축복이고,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어찌하여 이것이 절박한 줄을 모르는가. 어찌하여 이것이 시급히 구해야 할 당장의 간절한 문제임을 알지 못하는가. 죽어서야, 죽음이 임박해서야, 그제서야 깨닫는다면 이미 늦는다.


살아서 하나됨을 이루어야만, 자기 존재도 구원받을 수 있고, 또한 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다. 믿음은 실체이며, 힘이니,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있게 되는 것이다. 살아서 신앙을 훈련하고 습득하고 체화해야만, 나 스스로를, 그리고 무엇보다 내 사랑하는 이를 하나님 안에서 영생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일찍이 깨달았고, 그 덕에 내 사랑하는 아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반려, 나의 아름답고 고귀한 별, 호두에게, 지상에 없는 것, 유일한 하늘의 보물, 가장 고귀한 축복을 전해줄 수 있었다.


어찌하여 이토록 귀한 것을 찾고 구한 이가 인간 중에서 아무도 없단 말인가. 이것을 구하려고 내게로 온 유일한 존재가, "고양이" 하나가 유일하였단 말인가. 이것에 나는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한다.


죽음을 이기는 것, 구원과 영생, 이것은 인류 전체가 구해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이다.


내 소중한 반려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을 후회했고 슬퍼했음에도, 단 하나, 내가 살아서 하나됨을 이루었고, 또한 내게 주어진 것들을 내 아이에게 모두 다 전해줄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이룰 수 있었음에 매우 기뻐하였고 그 확신이 나를 평화롭게 하였다.


하나됨의 신비, 이것이 곧 실체이며, 영원한 생명이고, 우리 모두가 시급히 구해야 할 진리이다.




마지막으로, 한낯 고양이에 불과한 호두와, 또 그저 평범한 집사에 불과한 나, 그리고 반려동물과 주인이라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관계에 불과한 이 인연을 축복하사, 이토록 아름답고 고귀하게 만들어주신 성령께 감사드린다. 성령이 임하실 때, 나는 언제나 내 능력을 넘어서는 아름답고 진실하고 고귀한 사랑을 하였고, 내가 진실로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몰입하고 흠뻑 젖어들 때, 이것이 사람의 능력으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오직 성령으로 인한 것임을 진실로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토록 고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이가 성령께서 내게 보내신 아이임을 믿는다. 내가 그분의 시험을 통과하는 그 시기에 무너지지 않도록, 그 아이를 통하여 내 곁을 지키셨고, 또 이제 내가 홀로설 때가 되었기에 그 아이를 고통이 짧도록 긴급히 조치하여 거두어가사, 나와 그 아이에게 가장 고귀한 영생이라는 하늘의 축복을 선물해주셨음을 믿는다. 그 아이와 내가 함께했던 모든 일상들은 이제 지상에서의 작별로써 완결됨으로써 영원히 하나님의 시간 안에 기록되었고, 이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내가 이 글을 씀은, 나의 재주가 모자란고로 하나님이 실재하심을 논리적으로 논증하지 못하되, 오직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임재하시고 역사하시는 것들을 진실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함이다.


내가 이와 같이 진실로 아름답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완전한 "빛"이자 완전한 사랑이신 하나님 자신께서 나를 통하여 내 안에서 드러나셨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로써,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나와 영원히 함께하시며, 또 내 모든 생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증거한다.


그대들은 이것을 믿는가.


혹은, 이제 믿고자 하는가.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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