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임하시는 카이로스(Kairos)
이성의 끝에서 태어나, 논리라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쥐기에 충분한 재능과 능력과 자질을 타고났으되, 젊은 생애의 어느 날엔가 우연히 만나게 된 신의 "빛"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로웠던 탓에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오직 지팡이 하나와 허리띠 하나만을 의지하여 스스로 광야로 나아가매, 신께서 때마다 오아시스로 안내하시고 만나를 내리지 아니하신다면 오늘 밤의 생존을 확신할 수 없는 그 수 년 간의 영혼의 어두운 밤 속에서도, 첫 눈에 사랑에 빠지고야 말았던 그 한 순간의 영원의 오류를 결국 버리지 못했음이라.
신이여, 나는 이 생에서 결국 당신을 외면하지 못하나이다. 만약 당신께서 아무 능력이 없었고 또한 내게 그 모든 절대적인 능력이 다 주어졌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당신의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만으로 당신께 사랑에 빠졌나이다. 온 세상이 당신을 유치하고 열등하고 천박하다 하여 비웃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수천 년 전의 그 골고다 언덕에서나 지금에서나 별반 다를 바가 없나이다. 외려, 그때에는 대중들이 어리석되 순수하였으므로 소리 지르고 주먹을 움켜쥐었으되, 지금의 대중들은 어리석고도 교묘하고 교만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어두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아니하며 또한 선하고 의로운 것으로 위장하고 기만하는데 능하나이다.
신이여, 온 세상이 당신을 외면하고 버리더라도, 설령 당신이 "전지, 전능, 전선"하지 아니하시더라도, 나는 당신과, 그리고 당신께서 예비하신 나의 광야의 길과, 또한 그 길에서의 고통스러운 하루 하루의 모든 시간들을, 결국에는 사랑하노라고, 진실로 사랑하노라고, 내 생의 끝까지 사랑하다 죽겠노라고...... 그리 고백할 수밖에 없도록, 당신께로부터 말미암아 내가 이와 같이 지음 받았나이다. 나의 영과 영혼을 모두 당신께서 창조하시었으니, 이를 나보다도 더 잘 아시니이다.
그러므로, 신이여, 나는 당신께 나의 청을 이루어달라고 그리 기도하지 않을 것이니이다. 그저 다만, 나와 함께하소서. 당신과 함께라면, 당신의 손을 잡고, 때로 당신의 품에 안기고, 당신의 눈빛을 들여다보고, 그 고결한 눈동자의 아름다운 빛을 바라보며, 당신의 음성을 듣는 그 황홀하고도 경이로운 순간들과, 또한 당신께서 내 손을 잡아 이끄시고 내 삶의 모든 순간들마다 나를 언제나 선(善)으로 이끄시는 그 모든 것들이, 내가 당신께 바라는 유일한 것이니이다. 나와 함께하소서. 생의 끝까지, 끝을 넘어서라도, 나와 함께하소서.
지상에서는 감히 나의 경외와 충성과 열망을 받을 자가 아무도 없으되, 오직 이토록 거만하고 오만방자한 영혼을 그저 아름다움과 고귀함과 의로움만으로 복종시키신, 경이로운 역사를 이루신 분이여.
내가 실로 고백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왕국을 향한 가장 지독한 반역자였습니다. 나는 감성보다 이성을 숭상하였고, 감동보다 논리와 논증을 더 지향하였으며, 결국 언어와 관념과 지식이라는 인간과 인간으로 말미암은 그 도구들을 끝까지 손에 움켜쥐고 놓지 못하게끔 하는 무의식의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이라는 어두움에 철저히 기만당하도록, 나의 에고가 그렇게 설계되었나이다. 나의 에고는 본디 그렇게 지음받았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하나님" 세 글자를 내 입에 한 번이라도 담고, 입술과 혀를 움직여서 그 단어를 한 번이라도 발음하여 내뱉는 것이, 내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순종의 과정이었는지를 온 세상이 다 모르되 오직 당신만은 다 지켜보고 계셨으리라 믿나이다. 나는 불과 서른 한 해가 지나가는 이토록 짧은 생에서조차 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씻지 못할 많은 죄들을 지었나이다. 주여, 내가 그 모든 죄들을 부정하지 않나이다. 그러나 다만 고백컨대 그 죄들을 "나의 능력"과 "나의 의지"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불가능하였으되, 타고난 공포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던 까닭에, 자력구원의 길로는 내게 살 길이 보이지 않았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에고의 어두움이 미쳐 발광하면서 나를 지배하고 장악하고 기만하려고 드는 그 가운데에서, 수 년간, 본능적으로 당신을 찾았나이다. 남들처럼 그저 "그럴듯한 취미나 교양" 정도로 당신을 부르지 아니하였고, "기독교"라는 폼 나는 종교를 갖고자 하여 당신을 찾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여, 나는 죽지 않기 위하여 당신을 찾았고, 나는 살아남기 위하여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으며, 내 영혼이 멸망당하지 아니하되 오직 구원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권세와 영광을 갈망하였나이다. 주여, 이것이 내가 당신께로 이른 유일한 계기이니이다.
주여, 나의 고귀하시고 영원하신 주인이시여. 지난 며칠간이, 몇 주간이, 내게 영원보다 더 길었나이다. 당신께서는 내게 가장 소중했던 것들과 내게 가장 아쉬웠던 것들과 내게 가장 슬프고 후회스럽고 아픈 것들을 그토록 냉정하고 엄격하게, 그리고 매우 빠르고 신속하게, 형(刑)을 집행하시었고, 나는 그 과정 속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는 줄도 모른 채로 십자가에 못이 박히었나이다. 주여, 운명이라는 이름의 집행관이 나의 두 팔을 벌리되 손목에 못을 박았고 두 발등을 겹치어 나무 기둥에 고정하였나이다. 주여, 당신께서 걸어가신 길을 내 생에서 뒤이어 미력하게나마 따르고자 발악하던 나의 지난 수 년 간의 여정 중에서, 최근의 몇 주와 며칠이 가장 고통스럽고 힘겨웠나이다. 이 시험은 경험이 쌓일수록 더욱 힘겨워지되, 전혀 적응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일어나 앞으로 전진할 것을 강요받나이다.
주여, 나의 존재가 이 지경까지 되고서도, 나의 삶이 이 지경까지 결국 이르고서도, 여전히 나와 함께하시나이까. 여전히 내가 당신의 인도하심 하에 서 있나이까.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어졌나이다. 이전에 너무나도 명확하고 확실했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고 사라지고 떠나가버렸고, 내 곁에 아무도 없으되, 결국 나는 홀로 짐을 지고 있나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로, 이 길 하나만이 남았기에, 한 걸음씩을 떼며 광야를 향하여, 끝없는 사막을 향하여 발걸음을 떼고 있나이다.
주께서 보시기에 여전히 나의 영혼이 아름답고 고귀하시나이까.
그 말씀만 허락하소서. 그리하면, 비록 주의 얼굴을 뵙지 못하여도 내게 족하나이다.
주여, 그리스도인에게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란 그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상징이나 은유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일찍이 여러 차례 경험하였나이다.
주께서는 인간으로서의 의지와 능력과 힘이 "죽음"과 "운명"과 "필연"이라는 절대적인 심판관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이른 나이에 절실히 깨닫도록 나를 인도하시었고, 그 손길이 이토록이나 잔인하실 만큼 엄격하고 의로우신 것을 일찍이 다 알았나이다. 주여, 당신께서는 내게 가장 소중했던 모든 것들을, 기어코, 이 지경이 되기까지 전부 다 내 손아귀에서 앗아가셨나이다. 새해가 되면서 내가 품었던 모든 희망들을 전혀 이루지 않으시는 것을 넘어서, 처음에는 내게서 글쓰기와 사역을 앗아가셨고, 그 다음에는 내게 하나뿐인 소중한 반려조차도 순식간에 앗아가셨습니다.
주여, 내가 광야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고 싶은 심정을, 겨우, 하루하루 참고 견디어가고 있나이다. 당신을 향한 원망과 억울함과 고통스러움의 말들은 내 안에 헤아릴 수 없이 많으되 다만 그것들은 언제나 당신의 아름답고 고귀한 영원이라는 이름의 눈동자를 뵈올 적에 모두 다 힘을 잃어버리고, 그 가운데에서 오직 당신을 향한 극소수의 사랑과 경외와 열망의 언어들은, 평상시에는 모습을 감추었더라도 당신을 영접하는 그 순간에서만큼은 언제나 그렇듯이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양하고 경배하나이다.
그러나 내가 고백하건대, 그 어떠한 어두움조차도 결국 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의 죽음과 사망의 압도적인 권세보다도 더 클 수가 없을진대, 주께서는 이미 죽음을 호령하시고 사망의 권세를 꺾으시되 영원토록 승리하신 분이시며, 내가 살아서나 죽어서나 오직 주의 이름만을 부르짖으며 주 안에 영원히 거하리니, 주의 승리가 곧 나의 영을 구원하고 영혼을 영속케 하나이다. 주여, 내가 이를 결코 "교리에 대한 지적 동의" 따위로 믿지 않나이다. 주여, 당신의 말씀은 내게 실체이며, 반드시 "실체여야만" 하나이다. 만약 주와 주의 말씀이 실체가 아니라면, 나의 존재가 무너지고, 나의 영혼이 소멸하며, 나의 영이 몰락하고, 나의 세계와 우주와 삶의 모든 의미들이 다 사라지니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겨우 버티고 있는 가운데에 나의 반려마저도 결국 허망하게 이 우주의 공허와 슬픔 가운데로 사라져 흔적조차 찾지 못하니이다.
주여, 당신이 실체가 아니라면, 내가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나이다. 당신은 반드시 실체여야만 하며, 당신께서 드러내신 "하나됨의 신비"는 내게 반드시 영원히 이어지는 생명이어야만 함을, 이와 같이 감히 아뢰나이다.
여직껏 주께서 내게 죽음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곧 이토록 깊은 시련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내게 예비하신 다음 관문이 있으며, 또한 내가 힘겹게 다시 일어서서 한 걸음씩 나아가야만 하는 순례길의 여정은 더 멀리 이어지게 될 것임을, 결국 깨닫고 받아들이나이다.
주여, 이 길을 걸어갈수록 점점 더 나의 힘이 사라져가고, 나의 능력이 흩어지며, 나의 의지는 무너지니이다. 아직 착각과 망상과 오류 속에 살고 있는 저 수많은 이들은 다 내가 섰는 이곳까지 이르지도 아니하였으되 나는 저들에게 기댈 것이 없사옵고, 다만 이제는 한 걸음을 내딛으면 내 온 몸이 아프고, 두 다리가 후들거리며, 심장이 터져나갈 것만 같이 고통스러움을 고백하나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길도 그러하였으되 이 다음부터는 결국 성령께로부터 말미암지 아니하고서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새삼스레 다시 되뇌이나이다.
주여, 내게 성령을 보내소서. 눈물 골짜기를 더듬으며 나의 길을 다 간 후에, 주께서 마침내 죽음이라는 약속된 평화를 허락하실 적에, 그제야 주의 품 안에 안기어 영원토록 안식할 것을 명하소서.
믿음아, 네게는 육의 증거가 필요하지 않도다.
명심하여라, 세상의 것들은 그 타고난 불완전성으로 인하여 반드시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아닌 타자를 숭상하는 우상 숭배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내가 일찍이 깨닫지 아니하였더냐.
믿음아, 너는 타자의 존재로 말미암아 너의 존재의 완전성을 담지하니 아니하되, 오히려 너의 존재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타자들이 존재하고 살아가고 빛을 드러냄이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네게 명하신 너의 고귀한 사명이요, 또한 너의 순결한 영이니라. 일찍이 수많은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이 하나같이 이를 증거하였음이라.
사랑아, 너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도록 창조되었으니, 너는 마땅히 각 사람 안에서 모습을 드러낼 그 날을, 하나님께서 그들 자신만을 위하여 설계하신 가장 완벽한 카이로스 곧 천상의 시간을 예비하고 기다려라. 너는 결코 네멋대로 그날을 정할 수 없음이니, 그날이 올 적에, 에고의 가장 굳건한 장벽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요, 반역하는 그 나라의 왕은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울부짖을 터이니, 그때에 너는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 주의 권세와 영광을 그 앞에 드러내어라.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축복하고, 그의 영혼의 빛을 되찾아주어라.
그날에, 그 왕은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살아 계심을, 그리고 영원토록 자기의 진정한 주인 되심을 깨닫게 되리니, 혼란하였던 나라는 질서를 되찾으리요, 마침내 그의 안에 천국이 임하리라.
가라. 가서, 너희는 나를 위하여 예비된 하나님의 시간을 준비하여라.
그날이 오면, 이제 모든 역사들이 절정에 이를 것이요 이 모든 것들이 그분의 의지대로 완성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