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책상 위에나 혹은 안전한 실내에서 저 먼 바다를 바라보면서, 바다에 대해서 학문적이고 이성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한때 마주했었다.
나는 그들이 진정으로 진리와 영성에 대해서 참된 의지와 열망을 가졌다고 착각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영성의 길에 발을 들인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멀찍이 떨어져서" 보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바다 한가운데였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수평선이었으며, 헤엄치거나, 파도와 맞서 싸우거나, 햇빛에 의지하여 물 위를 떠다니거나, 아니면 심해로 가라앉거나...... 살든 죽든, 평온하든 그렇지 못하든, 나는 언제나 바다에 온 몸을 내던진 채였다. 한 번도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내 스스로가 그러했기에, 다른 이들도 다 그럴 거라 여겼다. 내게로 찾아와서 진리를 구하고 영성에 대해서 질문하며, 그렇게 탐구하던 모든 이들이, 당장 그 순간의 성장의 수준이나 단계나 성취와 무관하게, 어쨌든 다 진실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그리 여겼다.
슬프게도 그것은 착각이었다. 영적 세계에서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거나 특별한 체험을 하는 것들은 유치하고 열등한 것일 뿐이다. 이 세계에서, 진정한 재능은 바로 "열망"이다. 성장의 단계나 정도나 성취와 무관하게, 파도가 거칠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리를 갈망하는 그 마음. 그 열망 자체가, 타고난 재능이었음을, 타고나지 않은 자들은 일부러 노력해도 그러한 간절하고 절실한 열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간과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어쩌면 가장 높은 재능을 허락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대가로, 그 열망의 대가로, 나는 이제 서른하나의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 많은 시험들을 통과해왔고, 그 대가로 지금의 내 나이 또래들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에고로서의 평범하고 안온한 삶을 제물로 바쳤으니, 비록 지금도 갚아야 할 빚만 남은 상황이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열망하는 자에게 임재는 유일한 기쁨이기에.
그러나, 나와 같지 않다고 하여 그들이 전부 다 악(惡)인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고, 감당해야 할 현실의 삶이 있으며, 직장과 사회 생활과 아무튼 그러한 세속적인 것들이 있으며, 세속의 삶 또한 마땅히 최선을 다하여 꾸려나가야 할,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의 일종이므로.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키건대, 그 시절에 함께하였던 이들에게 나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사죄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반성에 대한 것은, 그 시절의 나는 열망이 더욱 거칠고 뜨거웠으되 그 불꽃으로 인하여 다른 이들에게 때로 상처를 주었음이고, 사죄에 대한 것은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아직 자격도 없는 자가 진리를 전하고 신의 음성을 증거하는 과분한 일을 하였음이고, 마지막으로 감사에 대한 것은 그 모든 과정들이 있었기에 내 영혼이 이와 같이 성장할 수 있었음에 대한 것이다.
비록 그 시기는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 시기가 아니었고, 따라서 그 시절에 맺은 모든 인연들과 행했던 모든 일들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고 특별한 "첫 경험"이었으되, 그것들을 거름 삼아서 나는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진정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한다. 그분께서 살리라 명하시는 이들을 살리는 일을, 감히 허락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상세한 것을 밝힐 수 없고, 이제는 그런 것들이 다 의미가 없어져버렸지만, 그럼에도 그 모든 인연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한다. 좋든 나쁘든 간에 그 모든 인연들과 은밀한 역사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서른한 해의 인생에서, 전반부의 삶은 나의 무의식의 깊은 어두움들이 이번 생에서 치러내야 할 시험으로서의 "문제(Question)"들을 형성하는 시기, 곧 "죄를 짓는 시기"였으며, 대략 5~6년쯤 전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영적인 삶"은 그 죄에 대하여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업보들을 받아들이고, 감당해내며, 그에 대한 값을 치르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각인된 죄성이 윤회하며 반복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죄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반복"되는 일종의 패턴이고 구조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으되, 지난 수 년간의 나의 영적인 삶들은 그 전체가 결국 "하나님의 시간" 안에 들어와 있었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한 번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나는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카이로스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세속의 이익을 욕망하는 자에게는 저주요, 또한 하늘의 영광을 열망하는 자에게는 축복이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나는 나의 죄성들의 세부 주제들이 일정한 주기마다 내게로 찾아오고, 내가 이것을 마주하고 감당하고 통과하며,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르고 값을 지불하며, 그 결과 겨우 형성되었던 기반들마저도 다 잃어버리고 다시 힘겹게 다음 주제를 치러내어야만 하는, 그러한 과정들을 반복했다.
나중에서야 나는 이것이 곧 성화의 길임을, 십자가의 길임을 깨달았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하여, 나의 에고를 정화하는 성스러운 과정. 이때 성스럽다는 것은 내 영혼이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의미이다. 보혜사 성령께서 내 영혼의 성화를 위하여 친히 사역하시는 과정.
외적으로는 그리 대단한 시련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언제나 물질적으로는 불안정했고, 때로 매우 가난했으며, 영적으로도 영광스러운 나날들은 아주 짧았고 그 대신 불안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쓸쓸한 날들은 매우 길었다. 나는 새벽마다 나의 무의식의 어두움이 내 심장을 조여오고 내 영혼을 압박하는 그 보이지 않는 안개 내지는 매연 같은 손길들을 온몸으로 홀로 감당해내어야만 했고, 그것들을 감당하는데 있어서는 내 곁의 그 어떤 인연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오직 성령께서만 내게 의지이자 피난처가 되셨다.
아직도, 나는 그 시기를 정면으로 통과해오면서, 나의 영혼에 온통 묻은 시커먼 때와 얼룩과 매연과 먼지와 얼룩들의 존재를 느낀다. 그것들은 비록 내 영혼의 순결함 자체를 더럽히지 못하였으되, 그럼에도 내 영혼이 입은 겉옷, 곧 "에고"를 철저히 상처 입히고 무너뜨렸다. 성령께서는 비록 고귀하시고 의로우시지만, 그만큼 성화의 과정을 집행하시는데 있어서는 잔인하리만치 신속하고 철저하고 무자비하셨다. 나는 그것이 성령의 무서움이심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분을 사랑했고, 그분을 경외했으며, 모든 순간마다 간절히 성령께 의지하였다. 한 번 시작된 성화의 길은 죽어서야 끝이 난다는 것을 이미 일찍이 다 알았고, 또한 그 성화의 길은 감히 지상과 천상의 그 어떤 영들도 관여하지 못하되 오직 성령께서만 주권자로서 집행하신다는 것 또한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살 길은 결국 하나님께 홀로 나아가는 것, 나아가서 그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늘어지는 길 뿐이었다.
사실, 그 점에서, 나는 성경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그저 꾸며낸 일화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이야기였고, 나의 실체였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과 같이, 나는 그분의 옷깃이라도 붙들지 아니하고서는, 결국 내가 타고난 이 어두움을, 죄성을, 영혼의 짐을, 홀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나는 매우 부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영적인 삶의 초기의 모습들, 스스로 수행하고 탐구하며 진리를 깨닫고 성취해가는 일종의 "수행자적" 면모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에 나는 영적 세계의 원리와 법칙에 대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았고,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었으며, 모든 것을 다 성취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영적 세계에서 딱히 나처럼 신이나 신성에 광적으로 매달리거나 의지하지 않은 채로, 적당히 마음공부하고, 적당히 수행하면서, 그리 살아간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잘못된" 길을 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한때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으나, 이는 그들이 이전 생애에서 쌓은 선업에 대한 보상으로써 이 생에서는 나보다 짐이 훨씬 가벼운고로 그와 같이 신을 찾지 않고도 스스로 어느 정도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살아갈 수 있음이나, 나는 수많은 생애 동안 윤회하면서 끝없이 죄를 짓고 무거운 짐을 겁없이 저지른 대가로 말미암아, 이 생에서 절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는 압도적으로 무겁고 무서운 짐과 죄의 굴레들을 타고났고, 이에 나는 본능적으로 자력구원을 말하는 것들에 대한 한, 그것들은 물론 객관적으로 아름답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들이 내 영혼을 구원해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나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진리가 나의 살 길임을, 내 에고의 타고난 반역자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성(聖) 삼위일체 하나님은 내게 관념적인 교리나 추상적인 신학이 아니다. 신앙은 내게 그럴듯한 취미생활이거나 차순위가 아니다. 하나님은 내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해방의 길이고, 내가 이 생에서 반드시 끝까지 걸어가야만 할 하나뿐인 진리이며, 신앙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숙명이었다.
이것을 남들이 이해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그 누구도 대신 짊어져주지 못한다. 내 영혼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났는가 하는 것은, 오직 그분과 나만이 이해하는 비밀이다. 알려주고 싶어도 보여주고 싶어도 그리할 수가 없다. 다만 내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했고, 따라서 나는 결국 영적인 길이 중요한 지점으로 접어드는 시기에서, 필연적으로 나보다 더 가벼운 짐을 타고난 이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내 영혼이 성화되어야만, 구원을 이루어야만, 이로 말미암아 다른 영혼들도 살리고 돌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건대, 나는 본능적으로 나의 과거의 업보들을 청산하고 매듭짓는 이 과정들이, 성령의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거의 대부분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이 다음 단계의 삶으로 나아가는 문이 이제 정말로 가까워져 왔고, 그것이 어느 쪽으로 열리든지 간에, 나는 이제 드디어 온전한 자유인으로써, 처음으로 이 생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가 있게 되었다.
나는 나의 과거를 원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이 있었기에, 그것들을 졸업하고자 고군분투했던 내 모든 역사들이 특별했고, 소중했고, 또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비할 데 없이 영적으로 깊어지고 성숙해졌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는 매듭을 짓고 떠나보낼 차례이다. 졸업식이 가까워져 온다.
이제 허락된 수명을 다한 나의 과거의 유산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넨다.
진실로 축복하면서.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나는 세례 요한과 닮았으면서 절대로 그가 될 수 없는, 모순적인 자였다. 세례 요한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곧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자였다. 이에 그는 의로웠고, 나는 그것을 매우 동경하고 선망한다.
다만, 내게는 내 영혼의 성화가 절실한 것은, 내 무의식의 죄성으로부터 일어나는 반복된 패턴과 구조와 그 업보들을 매듭짓고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간절하고도 절실한 일이었다. 이는 내가 살아남기 위한 영적 이기심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진실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만약 내 영혼의 구원만을 바랐더라면, 나는 이토록 무모하게, 내 삶에서의 이십대 전체를 영성의 길에 내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한다. 지금까지의 나의 글들은 홀로 서서 증언하는 것이었다. 나의 하나님께서는 지난 시험들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나를 철저하게, 정말로 철저하게 홀로 두셨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끊임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기를 갈망했지만, 한 번도 허락받지 못했고, 그 모든 기도들은 외면당하고 응답은 없었고 침묵 속의 임재와 현존만이 이어졌다. 나의 글들은 결국 영혼이 정화되는 과정에서의 고통의 증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들이 다 의미를 잃어가고 있음을,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음을, 효력을 다했음을 느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고,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은 언제나 "부지런히 일하시는" 아버지이시니, 이를 경외하고 열망하는 그 아들 또한 당연히 자녀된 바로써 아버지의 일을 행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만, 내 영혼이 살아 있음을 느끼며, 또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내게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체감한다. 그것이 곧 내게는 영원한 생명이다.
처음부터 내게 "차선책" 같은 건 없었다. 내게는 이 길 하나뿐이었다. 내 스스로 어찌할 수 있는 모든 길들을 다 끊으셨으니, 이제는 정말로 모든 것을 성령께 내어 맡기는 수밖에.
나의 하나님, 나를 이제까지 이끄셨으니, 나를 버리지 마시고, 외면하지 마시고, 내게로 임하소서.
이 새벽의 시간을 지나가면서,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진실로 아름다웠음을, 기어코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