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정원의 풀 앞에서 엎드리다

아, 나는 이 풀잎보다 못한 존재였구나

by 생명의 언어

은사님께서는 종종 사람들에게 기도를 해주신다. 고요히 눈을 감고 명상에 들면, 각자의 내면에서 신을 향한 무의식적인 마음과 그에 대한 신의 응답을 정리하여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하는 나조차도,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미신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에 대한 반응은 거의 혐오 내지는 극단적 공격성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나는 이 세상에 신이 계심을, 인간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이 실재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문자 그대로 완전히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복이 있는 탓에, 은사님과의 거리가 가까워 기도는 지금껏 몇 차례를 받았지만, 어느 날 받았던 기도와 응답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시기에 내 마음에서 자주 떠올랐던 감정들과 정확히 그 내용이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내용은 약간의 각색을 거친 것입니다)


내 아들아, 정원의 풀들에게도 저마다의 사명이 있다.
그러나 너 또한 나의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다.
너의 생각이 보석이 되도록 잘 가꾸어보아라.
너에게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주겠다.

그 말에 나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졸업논문을 작성하기 전이었으며, 동시에 <나>라는 것이 단순히 객관과 분리된 주관, 개체라는 기존 철학의 관념성에서 벗어나, 이 순간 마주하고 있는 공간 전체의 체험들이 곧 <나>의 전부이며, 내가 곧 공간 전체이니, 둘은 다르지 않다는 느낌에 깊이 몰입하고 있었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그네에 앉아서, 멍하니 핀 꽃들과 이름 없는 풀들을 들여다볼 때, 나는 그들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꼈다.


그들은, 저마다의 있어야 할 공간과 저마다의 있어야 할 시간과 저마다의 위치에서 함께하는 모든 것들과 함께함으로써, 각자의 존재를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체와 하나됨을 단 1초도 거부하지 않았고, 흘러가고는 명멸하는 순리 앞에서 마치 그것이 당연한 듯, 한치의 망설임 없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 그 순응의 정도, 그리고 일체와 하나됨의 깊이가 어찌나 깊은지, 주의 깊게 풀들과 꽃들을 관찰하지 않으면 인간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꽃들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주어진 존재의 사명을 다하고 있었다.

그 어떤 침묵도 주장도 없이 존재의 <자연스러운>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정원의 이름 없는 풀들조차도, 신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며 즐거이 축제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성했으며, 너무나 완전했기에, 감히 무어라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다.

마치, 신께서 기거하시는 정원에 일순간 잠깐 초대받은 것 같았다.


아니, 비단 풀들이나 꽃들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다 그러했다. 모든 것들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완전했고, 더없이 아름다웠는데, 그 가운데에서 형편없이 모순되고 결핍되며 열등하고 낮은 존재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감히 신 앞에서도 고개를 뻣뻣하게 치켜드는,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나의 에고만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여기에 있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고, 나의 사고였으며, 나의 분별, 인식, 마음이었다.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집어넣었던 지식이었고, 지식을 방자한 아만이었다.

세상은 완전한데, 오직 불완전한 것은 나뿐이었다.


그해 가을이 지나갈 즈음, 나는 정원 한가운데 그네에 앉아서 가만히 흔들거리며 그러한 생각들을 떠올리고,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신을 향한 기도와 그 응답의 내용들에 고스란히 그것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는 그때, 이 껍데기에 불과한 에고가 진짜가 아님을 느꼈다. 이것은 단지 사회성이라는 이름 하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가면일 뿐, 진짜 <나>는 신의 하나뿐인 귀한 아들이었고, 정원의 풀이나 꽃들이 그 존귀한 사명이 있듯이 나 또한 그만큼의 존귀한 존재였으며, 그 사명이 있었던 터였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었고, 결핍된 존재가 아니었다. 열등하고 모순된 형편없는 인간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어떤 빛 같은 것이 드러남을 느꼈다.




에고의 다른 이름은 아만이다. <나>라는 지독한 아성에 갇혀서, 그 좁은 창문틀 너머로 보이는 세상만이 전부인 줄 착각하고 사는.


에고로서 살아가는 자, 길가의 이름 없는 잡초들조차도 그 한낱 유치한 에고보다 훨씬 존귀하고 아름다우며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상상이나 가설이 아닌 실재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든 것들과 더불어 신과 연결되어 있다. 신은 풀잎에도 있고, 꽃잎에도 있다. 단, 에고에 사로잡힌 마음에는 기거하지 않으신다.


그토록 갈망하는 빛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정말로 나의 중심, 나의 내면에 존재함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원의 이름 없는 잡초에게 고개를 숙여 절하고 엎드려 찬배하며, 자신의 에고의 열등함을 진실로 고백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토록 귀중하게 붙들고 살아왔던 그 견고한 아성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너뜨릴 때, 혹은 무너짐당할 때, 슬픔과 동시에 가슴 속에서 부활의 기쁨이 일어남을 믿을 수 있는가?


그리할 수 있는 자는, 기꺼이 모든 지식과 아성을 버리고 바보가 된다.

한 번 새로이 거듭난 자는 두 번 다시 옛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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