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하심

참된 형제들의 기초 중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

by 생명의 언어


내가 참으로 안타까워하는 부분이 있다. 가타부타 서론을 길게 늘어뜨려서 자기방어를 하려고 하지 않겠다. 날이 갈수록, 소위 "요즘 사람들"은 가장 기초적이고 정석적인 토대는 정작 부실하기 그지없는 상태에서, 갈수록 기교와 기술과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만 비대해져가는 듯하다. 이는 나의 형제들, 신앙의 형제들에게서도 유감스럽게도 또한 찾아볼 수 있는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참으로 안타까워한다. 이는 내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 잘못된 길을 옳은 길처럼 믿고 나아간 끝에, 그가 결국 어떤 고통과 괴로움을 마주할지를 미리 다 겪어서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낮아짐 가운데에서도 결국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의로운 길을 따라 "믿음"으로 걸었을 적에, 어떤 은혜가 주어지는지를, 참으로 감사하게도 또한 먼저 겪어서 알기 때문이다. 이 가난한 영혼의 눈으로 보기에, 오늘날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인다. 기도에 익숙하고, 예배에 능숙하며, 찬양을 능숙하게 해낸다. 일사불란하게 모여서 정해진 절차와 형식대로 의례를 진행하고, 함께 노래하고 찬송하며, 공동체적 의식을 강화한다. 마치 질서정연한 군대, 혹은 조직이라도 된 것처럼.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서는, "영(Spirit)이 그분을 진실로 영접했을 때의 빛", 그러니까 쉽게 말해 "믿음"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히 말하건대, 공허하다. 앞서 기초와 정석의 토대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된 크리스천, 곧 주님의 길을 따르는 형제들의 기초란 무엇이겠는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아주 심플한 문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너무 단순한 말인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크리스천이 어디에 있냐고? 나는 사람의 관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영혼이, 영이,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이다. 영이 진실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면, 그는 그 첫째 가는 증거로써, "자신의 삶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에게만 몰입하며,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의 말씀과 이끄심과 인도하심에만 전적으로 순종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누가 그리하라 훈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의 영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정작 겉으로는 익숙하고 능숙한 자의 특징은, 자신의 실존하는 시련과 고난 앞에서 무너진다. 일요일 하루, 평온한 날에, 적당히 편안하고 익숙하고 그럭저럭 숨쉬고 살만한 그 순간에야,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할 자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그건 누워서 떡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다. 밝은 순간에는 누구라도 다 그리한다. 중점은, 자신의 삶의 어두운 순간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가? 그 순간에도 그분에 대한 나의 경외가, 경이로움이, 열망이 강처럼 넘쳐흐르고 있는가? 그 어두움 한가운데에서도 내가 기어코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서만" 기뻐하는가? 이것이 문제다. 나는 이것이 참된 크리스천의 기초 중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실재하시는 분이다. 이것은 기초이다. 기초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고, 모든 것보다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실재하심." 이 하나가 모든 것에 앞선다. 이 하나를 이룬 자는 다 이룬 것이되, 다 이루어놓고서도 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단 1%의 흠집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의 완전이란, 완벽이란 무엇인가? 완전, 완벽, 이런 것은 인간이 만든 언어다. 하나님 안에서 완전함이란 곧 "기쁨"이며, 완벽함이란 곧 "평강"이다. 보라, 이토록 천상의 언어와 지상의 언어가 차이가 난다. 영으로 하나님을 영접한 자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것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 육적인 것, 욕구, 욕망, 쾌락, 인간관계, 세상적인 것들, 사회적인 것들, 그밖에 내가 모든 순간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는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 그러한 것들에 사람은 너무도 쉽게 현혹당한다. 왜 그런가?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논외이며, 보이는 물질은 당장 손에 잡히므로 중요한 것이다. 오늘 먹을 것이 내일의 은혜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이 사람의 죄성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우선한다. 이것이 하늘의 진리이며, 기초 중의 기초이다. 이 믿음이 형성되지 않고서는, 이 믿음을 주춧돌 삼지 않고서는, 아무리 신앙을 이야기해봤자 다 결국엔 공허할 뿐이다.


나는 이 하나를, "실재하심" 이 하나를, 나의 모든 영을 걸고서, 나의 모든 존재와 삶을 걸고서, 간절히 증거하고 싶다. 부디 귀를 열고 한 번이라도 들어주시기를 간청한다. 아버지는 실재하시는 분이다. 그분의 음성을 우리 형제들이 분명히 들을 수 있고, 분명히 그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으며, 그분께서 때때로 임재하심을, 내 삶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나의 내면의 평강과 기쁨을 통하여 뜻을 전하심을, 나의 기도를 들으심을, 나의 진실함과 순수함과 뜨거움으로 인하여 때때로 나를 사랑하시고 나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신다는 뜻을, 천사들을 통하여 대신 전하시기도 하는, 그러한 실재 되시는 분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실재하신다. 나는 그분께서 때때로 "낮은 자들"의 눈동자를 통하여 나를 들여다보시는 것을 명확히 보았으며, 그분의 음성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나로 인하여 기뻐하신다"는 것을 명확히 느꼈다. 주님은 나와 실제로 함께하시는 분이며, 나는 그분의 눈빛을, 목소리를, 그 말씀하시는 톤을, 어감을, 그리고 그분의 "성향"까지도...... 나의 영이 그분의 신성과 교감하는 모든 순간들을 다 알고 있다. 외적인 수단이나 매개를 통하여 배우고 학습한 주님과, 실제로 나의 영이 그분의 신성과 교감함으로써 겪는 그분의 "진정한 모습"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매우 크다. 이것을 직접 한 번 느껴보라. 마지막으로, 성령께서도 분명히 실재하신다. 나는 성령의 은총을,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선명히 느낄 수 있으며, 때때로 중요한 여정의 순간마다 함께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은밀하고도 위대한 역사를 다 목격하며 지나왔다. 물론, 나는 이른바 세상이 말하는 "정통 크리스천"은 아니다. 나는 교회에 속하지 않으므로 교회에서 말하는 정석적이고 교과서적인 신앙은 아닐 것이다. 나는 들판에서 홀로 피어난 못생긴 잡초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내가 더욱이 증거할 수 있는 것은, 내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선명하게 살아 숨쉬는 실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유일한 하나뿐인 토대가 되어야만 한다. 이 토대가 있어야만, "신앙의 꽃"이 피어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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