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움 한가운데에서

by 생명의 언어


어두움의 맞은편에는 반드시 빛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으로 인해서"만", 우리는 빛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본래 인간의 존재란 그렇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에고(ego)는 죄성에 갇혀 있는 반복된 프로그램, 설계, 구조인 탓에, 밝고 따뜻한 가운데에서는 어느새 주님을 잊어버리고는, "나"라는 그 사망의 중심이 다시 되살아나고 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괜찮다고 확신할지 모릅니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will)는 잠시 순수할지언정, 또 다시 육적인 허망한 것들에 유혹당하고, 흔들리고, 영향을 받고, 왜곡, 변질되고, 마침내는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나의 가장 뜨겁고도 순결했던 초심을 자신의 두 손으로 부정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그리되었습니다. 결국 그도 그분이 그리 떠나가시고, 다시 부활하신 이후에야 그분을 영접하였으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였으며,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라고 다를까요? 아니, "으뜸 가는 제자"가 그리하였더라면, 우리는 그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나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나(i am)는 특별히 잘난 존재도, 완벽한 존재도, 이상적인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그리는 그 이상 속의 나(I AM)는, 오직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 하나님뿐입니다. 나는 이것을 영적인 언어로, 오컬트적으로, 구조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상상하는 그 의미가 아니라고,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라고, 그렇게 그럴듯하게 변명할 재주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아무리 정교하게 설명해봤자, 마음속에 기쁨이, 열망이, 경외가 없는 자는, 결국에는 자기 삶의 실존하는 어두움 앞에서 도망치고, 외면하고, 변명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시련과 고난이 오는가?"를 묻습니다. 이것은 언뜻 정당한 질문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지독하게 교만에 젖은 질문임을 전제할 뿐입니다. 첫째, 나는 "원래" 시련과 고난 따위는 겪지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인식입니다. 둘째,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낮아지는 것을 죄악시하는 오만함, 그리고 그 기저에 숨어 있는 열등감, 죄의식입니다. 셋째,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며, 그리 내맘대로 했을 적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성공할 것이라는 욕망, 환상입니다. 믿음의 근거는 오직 아버지께 있어야 하는 것이지, 나에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나의 의지(will)보다 아버지의 의지(WILL)가 더 높은"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순간마다, 영원토록 이어지는 진리이며, 특히나 어두움의 한가운데에서 이를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위에서 보시기에 시련과 고난을 통하여 나를 제련하고, 단련하고, 정화하여야 할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일련의 일들이 내게 주어진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귀하시고 의로우신 의지(WILL)는 "나를 살리고자 하는 뜻"이 아니라, (잠시 내게 시련을 주심으로써)나를 "영원히 살게 하고자 하시는 뜻"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나의 죄성이 정화되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갈수록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유감스럽게도 시련과 고난이 필연적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때때로 우리 형제들의 삶은 구원받지 못한 세속의 인연들보다도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만, "시험"을 허락하시는 바, 자격이 없는 자는 시험장에 들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 시험을 엄격히 감독하시고, 평가하시는 바, 세속의 그 무엇도 그 고귀한 시험에 함부로 해가 되지 못하도록 지키고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그 아픔이 있었기에, 그 지난한 밤 동안 그토록 아프게 흘렸던 눈물들이 있기에, 어두움 가운데에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증거하는 나의 믿음이 진실한 것입니다. 그 아픔이 있었기에 내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눈물이 증거가 되어, 아버지께 "진실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독한 외로움이 있기에, 이 지구상의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 자식 형제조차도 내게 의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는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과 쓸쓸함이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아버지께만 의지하고, 그리스도께만 의지하며, 성령께만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 그분께서 먼저 가신 길을 뒤따르는 여정이 지독하게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치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기에, 반대로 내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며, 또한 그리 고통스럽게 비워진 그릇 안에, 아버지께서 "생명을 가득 채워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득 차 있거든, 어찌 그토록 귀한 생명이 채워질 수 있었겠습니까. 나의 어두움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그분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고귀한 무대가 되는 바, 마침내 그 어두움이 눈앞으로 찾아왔을 적에도, 에고가 더 이상 죄성에 속아 그 어두움을 원망하고 분노하고 외면하지 아니하며, 이것이 "나를 살게 하고자" 하신 그분의 선한 의지이심을, 나아가 "나의 영혼을 영원히 살게 하고자" 하시는 절대적으로 선한 의지이심을 믿고 따르는 바, 놀랍게도 그 어두움 한가운데에서도 내게 평화가 있고, 흔들리지 않는 평강이 있으며, 그 걸음의 순간마다 기쁨이 함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 어두움 속에서 피어오른 자그마한 불씨는, 비록 작더라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꽃이, 영(Spirit)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크리스천의 신앙은 남들을 제치고 밝음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길이 아니라, 반대로 다른 이들이 밝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스스로 어두움 가운데로 나아가 그 한가운데에서 홀로 외롭게 빛을 비추는 길임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그토록 어려운 시험을 주신 바, 그리 살아가는 여정의 순간 순간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함께하시고, 교감하시고, 임재하시고, 마침내 "역사"하실 것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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