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영원으로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것은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과 함께

by 생명의 언어

성(聖)과 속(俗)은 나뉘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나의 마음(heart)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마음이 어떤 상태에 머무르는가, 의 문제일 뿐이다. 쉬는 날, 오전 일찍 산책을 할 적에, 그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 젖어들었다면, 그곳은 성소(Sanctum)이다. 그 길에서 보았던 모든 생명들, 햇빛, 바람, 이슬, 꽃, 풀잎, 나뭇잎, 흙...... 그러한 모든 것들에게서 감동을 느끼고, 그들의 "실재(實在)"와 교감하고 연결되며 하나가 되었더라면, 그 순간은 곧 영원(永遠)이다. 영원은 선형적인 시간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무표정한 어두움에 젖어들어서는 허무함과 허망함 속을 기계처럼 지나다니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그들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고 기도하였더라면, 그 한 사람의 작은 빛으로 말미암아 그 공간 전체가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어두움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노라고, 그리도 아름답고 어여쁜 마음을 결코 그분께서 무심히 지나가실 리가 없을 것이라고, 나는 그리 믿는다. 그때, 그곳은 성전이 된다. 그때, 그 순간은 기도가 된다. 그때, 그의 마음은 묵상으로 가득찬다. 그때, 그의 존재는 곧 생명(LIFE)이 된다.


"현존"이라는 말 그 자체에 속지 말라.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 중의 하나에 불과한 현재에 시선을 꽂아두라는 소리가 아니다. 마음공부할 때, 항상 선명하게 깨어 있는 의식으로, 본질을, 진실을 꿰뚫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존하라"는 또 하나의 관념에 갇히고서는 자신이 갇힌 줄도 모르게 된다. 현존해야 하는 까닭은, 곧 생명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이며, 그 생명은 신으로부터 말미암고, 그 신을 만나는 성전(聖殿)의 <입구>가 바로 나의 내면이되, 그 내면이 열리고 드러날 때가 곧 "현존"에 몰입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어중간한 것들은 오히려 화려하고 근엄하고 권위적으로 치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귀중한 것들은 전부 감추어져 있으며, 정말로 신성하고 고귀한 것들은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에 거(居)한다. <나(ego)>라는 내면의 성(城)의 가장 은밀하고 깊은 곳, 거기에 그분께서 계시는 성전이 있으며, 그 성전의 입구를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분께서 태초부터 나와 함께하셨다"는 위대하고도 은밀한 진실(Truth)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든 영혼들은 종교와 교리와 전통을 막론하고 다 나의 형제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에게 묻겠다. 우리들의 열망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진실로 원하는가? 그리 나아가는 길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 자신의 짐조차도 버거운데도 불구하고 그 부질없지만 아름다운 짐을 내 어깨 위에 부러 얹고자 하는, 참으로 가엾고 어리석고도 의로운 마음, 그 뜨거운 마음(heart)이 있는가? 그 물음에 결국 "네(Yes)"라고 답한다면, 그리 나아가라. 그 길은 사람은 갈 수 없는 길이니, 곧 신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그 의로움 하나로, 사랑 하나로, 열망 하나로, 신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실 것이다. 세상 모든 귀한 것보다도 더, 그분께서 귀히 여기시는 것은 바로 그 마음 하나라는 것을, 내가 그분께로서 친히 들었기 때문이다. 들었으므로, 크게 기뻐하였으며, 태어나서 너무도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은 곧 전체가 수행이다.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을 증거하며, 의로움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비추어 밝히는, 공(公)적인 생이다. 그리고 그 수행의 터전은, 바로 나의 일상이다. 내 삶의 현장이다. 평범한 순간, 순간, 순간이다. 그분의 뜻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과 동떨어진 어디 특별한 무언가에 계실 것이라고 믿는가? 아니다, 달리 생각해보라, "평범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어두움에 지배당하고 갇혀서는 고통받고 있을진대, 오히려 그 평범한 일상이, 삶의 현장이, 터전이, "가장 낮고 가난한 곳"이, 도리어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진리"가 드러나고 비추일 가장 완벽한 무대가 아니겠는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내어라.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오직 내 자신의 내면에 깊이 거하시는 신성을, 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열망하고 기뻐하는 그 마음 하나로 인하여, 그 신성이 나를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하라. 가장 낮은 곳에서 선(善)을 증거하라. 가장 외로운 영혼에게 가장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라. 가장 허망한 영혼에게 가장 고귀한 진리를 증거하라. 어두움 안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을 위하여, 그들의 어두움을 다 내가 품어 안겠노라고, 그리할 터이니 그 대가로 저들을 축복해주시라고, 그리 가엾고도 어리석은, 그러면서도 신께서 능히 기뻐하실 만한 마음을 내어라. "머무르는 모든 곳마다 그대가 주인이 되게 하라." 그 공간을 그대 자신으로 말미암아 빛으로 환하게 물들이고 비추어라. 그리하여 마침내, 그리 걸어가는 고귀한 영혼이 머무르는 곳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되, 그 모든 곳들이 "성전"이 되게 하라. 그들 영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라. 영혼(soul)으로, 영(spirit)으로. 감히 말하노니, 그리 어여쁜 마음을 품은 영혼이 머무르는 곳에, 반드시 주(主)께서 함께하실 것이며, 그 순간, 이 세상의 그 어떤 성지보다도 그곳이 더 고귀하고 신성한 땅이 될 것이다.


이 가난한 영혼이 한 가지 진리를 증거하고 싶다.


"만약 오늘 하루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어떤 성지순례를 떠나더라도, 그 어떤 화려한 신비체험을 하더라도, 결단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권세와 영광을 거느리시고, 가장 낮고 외롭고 가난한 곳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진리를 매우 사랑한다. 내가 이 진리로 인하여 매우 크게 기뻐하고, 감동받는다. 그리하여, 못생기고 열등하게나마, 내 삶의 모든 순간마다 그분을 닮기를 바라는 소망을, 감히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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