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별 May 26. 2023

2. 내가 덕질한 건 나 자신이었다.



 

 

 완덕, 요즘은 그런 말이 있다더라. 후회없이 사랑해서 미련없이 마음을 접을 수 있는 감정이란다. '덕' 이라는글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용어다. 이 말을 처음 알게 됐을 때만 해도 딴세상 일이라고 생각했다.

 

 A라는 아이돌 그룹의 열정적인 팬이었다. (앞으로는 A라고 간략히 칭하겠다.)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건 사춘기였다. 대부분의 사춘기가 그렇듯, 나의 사춘기도 불안정했다. 여러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몰랐으니 불안정함은 극에 달해갔다. 그때 본 것이다. 휴대폰 화면 속에서 빛나는 A를.


 그때의 A는 누구나 사랑할만한 모습이었다. 멋지고 예뻤다. 그리고 나를 슬프게 만들지 않았다. 그 사실은 꽤 오랫동안 나를 잠식해갔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슬프고 화나게 만들 때, 오로지 A만이 웃게 해줬었다. A만이 나를 웃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고, 슬픈 일들이 가득하지만 나는 웃을 수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의미 없는 물음이지만… 나는 가끔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앞선 문장으로 알 수 있듯이 그때의 나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들없이는 웃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덕질'과 '현생'은 하나가 되어갔다.


 그들이 더이상 큰 상을 타지 못할 때, 사생활 이슈가 터져 팬들이 빠져나갈 때, 나 또한 실망했다. 왜 실망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답하자면, 그 당시 나에게 한해선, 그들은 아티스트가 아닌 삶에 더 가까웠다. 이미 A의 커리어적 성공이 내 개인적 실패를 메꿔주는 것 같다 느꼈다. 그들의 성장은 나의 성장과 동일하다고 믿어왔으니 말이다. A를 서포팅하는 생활에서 벗어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거야. 건강하지 않은 덕질이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나서야 A를 사랑하느라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A를 응원할 때만 또래답다고 느꼈지만 그들을 응원하지 않아도 나는 똑같이 10대였으며, 또래에 속했다. A의 논란이 잦아지며 새로운 환경에 놓였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쌓게 됐고, 주변을 둘러보는 방법을 배워갔다. 1편에서 다뤘듯,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A의 공연에 다녀왔다. 멤버들이 오랜만에 모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반짝거렸다. 누구나 사랑에 빠뜨릴만큼 멋지고 예뻤고, 웃고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으니 말이다. 나같은 마음을 느낀 이가 한둘이 아니었던 걸까. 멤버 중 한 명이 그만 울으라고 말할만큼 눈물을 보인 팬이 많았다. 공연은 향수를 불러일으켰으며 마지막엔 개운함까지 느꼈다. 이게 완덕이구나. 공연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나는 후회없이 사랑했고 미련없이 떠나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알 수 있다. 내가 사랑한 건 비단 A 그룹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10대의 치기 어린 내 모습을 좋아했다는 것을 말이다. 슬픔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사랑을 놓지 않으려 했던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젠 떠나보내려고 한다. 사랑할 것이 너무 많다. 과거의 사랑은 놓아주어도 된다. 나의 세상은 더 이상 A로 가득하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