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아닌 숲을 봐라.
유명한 격언이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보았다 착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다른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 문장을 자주 되새겼다. 오만한 탓에 누군가의 단점을 보고 전체를 가늠했다가 그 사람에게 도움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편향된 뉴스 기사를 보고 A 사건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한 적도 있다. 이러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잘 고치지 못한 버릇이었다. 그런 나를 단번에 고쳐준 공간이 있다.
빛의 건축가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의 뮤지엄 산 이다.
처음 방문했던 날이 떠오른다. 건축물에 충격받은 유일무이한 날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있구나, 고층빌딩만이 건축의 전부가 아니구나. 깨닫게 해준 곳이다. 심지어 안도 타다오의 특징 중 하나는 노출 콘크리트인데도 (충분히 거친 느낌의 건축재 아닌가!) 불구하고, 뮤지엄 산은 따뜻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부지를 방문했던 타다오가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 라는 인상을 느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본래 지형에 순응하며 건축했다는 이야기…. 뮤지엄 산의 매력은 여기서 출발한 셈이었다. 무작정 산을 깎고, 강을 메운 곳이라면.. 아무리 멋지게 꾸며봤자 인조적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뮤지엄 산의 철학이 마음에 든다.
뮤지엄 산은 아주 넓다. 2만 2천 평이니 꽤 걸어야 하는 곳이다. 미아가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 나 자신이다. 생경한 감정이었다. 오히려 더 떠돌고 싶다고 생각했다.
신호등이 깜빡거릴 땐 헐레벌떡 건너고, 틈만 나면 시간을 확인하던 나에겐 낯선 순간이었다.
길을 잃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자, 숲이,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이 보였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인위적이지 않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는데도 부드러워 보이니 참 신기한 일이다.
그 비법에 빛이 있다고 생각했다. 타다오의 별칭이 빛의 건축가라는 걸 모를 때 한 생각이다. 그만큼 그의 건축에선 빛이 중요한 요소라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뮤지엄 산엔 다양한 모양의 창이 있다. 그를 통해 햇빛이 흘러들어올 때도 있고, 물이 보일 때도 있다.
관람객은 전시관을 찾아 걷지 않는다. 타다오의 건축 속에서 산책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뮤지엄 산을 경험한다.
2019년, 내가 처음 방문했던 해엔 <낯선 시간의 산책자> 기획전이 진행됐다.
그때 본 문장이 있다. 공(空) 은 비었다는 뜻이지만, 무(無) 와는 다르다고. 안도 타다오의 철학을 관통하는 말이 아닐까?
올해 7월 30일까지 뮤지엄 산에선 타다오의 개인전 <청춘> 이 진행된다. 5월, 이 전시를 위해 다시 뮤지엄 산으로 향했다. 세 번째 방문이었다. 아름다운 미로 속에서 생각을 골라냈다.
'자연과 문화의 어울림 속에서 문명의 번잡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휴식과 자유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계기를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말이다. 뮤지엄 산은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숲을 보여준다. 타다오가 보여준 숲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