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애착 관계를 순식간에 완결시킨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갑작스러운 단절에 능숙하지 않고,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애도라고 정의했다. 퀴블러 로스의 연구 과정에 따르면 애도는 부인, 분노, 타협, 우울, 긍정의 5단계로 나뉜다. 하지만 일부의 애도자는 진전하지 못하고 특정 단계에 멈춰 사회적 정상성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종성 복잡성 애도’라고 칭하는데,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같은 증상을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나는 <멜로가 체질>을 통해 애도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멜랑콜리를 탐구하고자 한다.
멜랑콜리의 어원은 그리스에서 발견된다. ‘검은색’을 뜻하는 그리스어 멜랑과 ‘담즙’을 의미하는 콜레의 합성어로 흑담즙이라는 뜻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체액을 4가지로 분류한 4체액설을 주장했는데 그중 하나인 흑담즙이 과도하게 나올 경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병이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흑담즙, 즉 멜랑콜리가 부정적 감정선을 표현하기 시작한 건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20세기에 이르러선 프로이트가 「애도와 멜랑콜리」를 출판하며 멜랑콜리를 다시 한번 병리적으로 논의했다. 히포크라테스와와 프로이트의 차이점은 멜랑콜리를 애도와 비견했다는 것이다. 단지 정의함에서 멈췄기에 한계가 있었던 히포크라테스와는 달리 프로이트는 멜랑콜리의 대상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는 애도와 멜랑콜리 모두 인간이 상실의 경험에 반응하는 방식이되 애도를 정상적 반응으로, 멜랑콜리를 병리적 반응으로 명확히 구분하였다.
상실이 일어났을 때, 애도자는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의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멜랑콜리는 '누구'를 상실했는지 알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상실했는지 모른다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이 지점에서 멜랑콜리는 무의식과 연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애도와 멜랑콜리는 모두 우울감을 연상시키는데 멜랑콜리의 차별점은 자기-존중의 장애이다. 앞서 언급한 퀴블러 로스의 5단계를 완주하지 못한 이는 두 개념 중 멜랑콜리에 더 가까운 것이다. 따라서 이번 분석에서는 멜랑콜리라는 개념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현대 심리학에선 앞서 말한 두 개념을 명확히 분리하지는 않는다. 다만 모든 애도가 그렇듯 분석 작품인 <멜로가 체질>에 등장하는 애도, 즉 ‘종성 복잡성 애도’는 매우 복잡하다. 프로이트의 논의가 작품 속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멜로가 체질> 속 애도자는 이은정이다. 그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친일파 후손의 행적을 쫓고 부의 답습을 고발하겠다며 ‘홍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친일파 후손이긴 하지만 학생일 때 자립한 후 대형 카페를 운영하는 남자다. 친일파 후손으로서는 듣기 불편할 질문을 하는 은정에게 자신은 사회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두고 살지는 못했지만, 은정 씨 같은 사람이 멋있다는 건 안다며 1억을 투자한다. 돈뿐만 아니라 인맥도 연결해 주며 인터뷰에 도움도 주었다. 결국 은정의 다큐멘터리는 300만 관객을 모으며 대성공하고, 두 사람의 관계 또한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때 홍대가 병을 진단받는다. 투병을 이어봤지만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고, 은정의 애도가 시작된다. 주변 인물들은 모두 은정이 괜찮은 줄만 알았다. 착각이라는 게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품의 1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은정의 동생이 자살 시도 후 쓰러진 은정을 목격한 것이다. 그 후 은정의 집엔 친구 두 명과 동생이 들어오게 된다. 그 후 은정이 자살 시도뿐만 아니라 다른 증상을 보이는 것을 알게 된다. 환시다.
은정은 수시로 환시와 대화한다. 2화부터 8화까지 그 장면은 연속적으로 노출된다. TV에 나오는 장소를 기억하냐는 일상적인 대화, 새로운 다큐멘터리 편집 중 나오는 직업적 고민, 사랑을 고백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홍대가 은정의 삶에 얼마나 스며들어있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프로이트는 애도자가 상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현실감 확립에 근거한 '리비도 회수'라는 경제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상실한 대상에 계속 붙어있고자 하는 리비도를 떼어내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리비도가 대상에 투자되는 동안의 기억과 기대의 회상을 통해서이다. 은정의 애도는 리비도가 집중과 이탈을 오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은정의 경우, 리비도 철회에 대한 반발이 매우 강해 환각적 소원 성취의 정신증을 매개로 대상에 대한 집착을 유지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리비도 철회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 애도에서 이탈하여 멜랑콜리의 방향으로 간다고 판단했다.
작품은 8화 말미에 다다라서야 은정에게 환시를 자각시킨다. 스스로를 찍은 영상에서 환시와 대화하는 자신을 목격한 것이다. 절망한 은정은 홍대와 함께했던 장소를 찾아가거나 예전 사진을 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오랫동안 기억을 어루만지던 은정은 네가 없다는 걸 안다고 속삭인다. 그리곤 곧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고백한 후, 너희한테 하는 말이라고 확정 짓는다. 자신을 병들게 한 멜랑콜리를 직면하고 도움을 내민 장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정이 금방 멜랑콜리를 털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11화에서 병원에 찾아갔음에도 12화에선 여전히 환시를 보고 있다. 환시는 점점 격렬해진다. 홍대는 자신과 함께 있기 위해 죽으라며 목을 조르기까지 이른다. 살아있을 적의 홍대는 은정에게 폭력적으로 군 적이 없는데 왜 환시에서는 은정을 겁박할까? 이는 역시 멜랑콜리 때문이다.
은정은 홍대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혼자 살아남았으면 잘 살기라도 해야지, 그렇지 않은 자신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이러한 무의식이 환시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복잡성 애도의 치료 방법은 다양한데 <멜로가 체질>의 은정은 상담 치료와 대인관계 치료를 받는다.
환자가 상실을 상쇄할 새로운 활동과 관계를 점차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은정은 광고 감독이라는 새로운 인물과 마주하면서 홍대의 죽음 이전 삶으로 서서히 돌아간다. 그제야 겨우 ‘애도’를 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카페에 간 은정은 홍대와 마주 앉는다. 그가 환시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로 작별 인사를 고한다. 환시이자 곧 은정의 무의식인 홍대 또한 웃으며 그녀를 보내준다. 은정의 무의식이 죄책감을 덜어냈기 때문에, 멜랑콜리가 아닌 애도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은 작별 그 자체이다. 생동감을 느낄 수 없는 단어이기 때문에 죽음과 작별이 멈춰있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작별은 움직이는 과정이다. 죽음은 작별을 시작시키는 신호탄인 셈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모든 길을 제대로 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애도는 특히나 미로를 닮은 작별이기에 헤매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상실자들이 길을 헤맨 것을 자책하지 않길 바란다. <멜로가 체질>의 은정을 통해 멜랑콜리를 다룬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상실자들의 멜랑콜리는 단지 과정 중 하나일 뿐이지, 분명 끝에는 출구가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참고문헌
- 박나나, 「'애도'에 대한 정신분석적 고찰: 회고록 '아이돌'의 쉐릴의 애도 과정을 중심으로」, 한신대학교, 심리학과, 2018,
- 지그문트 프로이트. 「애도와 멜랑콜리아」, 1917
- 맹정현, 「멜랑꼴리의 모호한 대상」, 라깡과 현대정신분석 제13권 제2호, 2011
- 안재민, "멜랑콜리 의미와 우울증… 히포크라테스의 상관관계는?", <글로벌이코노미> 2014.11.26, http://m.g-enews.com/article/General-News/2014/11/201411261455130125736_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