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 첫 복무일에 있었던 일
아무도 나에게 할 일을 주지 않았던 날이 있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한 첫날이었다. 원래 주민센터 사회복무요원은 일이 적은 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 일도 주지 않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공부할 책도, 읽을 글도 준비하지 못했다. 애꿎은 시계만 계속 쳐다봤다. 재밌게도, 시계를 열심히 쳐다볼수록 시간은 더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았다.
너무 졸려서, 잠을 쫓기 위해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주사님들이 민원인들과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그중 한 장면이 유독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혼자 사는 남자 어르신이 어떤 물품을 받으러 오신 상황이었다.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쌀이었는지, 반찬이었는지, 먹을 것이었던 것 같다. 그 물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어르신, 요즘 몸은 좀 어떠세요?” “밥은 어떻게 드세요? 잘 챙겨 드세요?” “집 상태는 좀 어떠세요?”
그리고 잠시 멈춘 뒤,
“청소나 빨래 같은 건 힘든 점은 없으세요?”
나는 그 질문 순서가 인상 깊었다. 처음부터 ‘청소는 잘하시나요?’라고 묻지 않았다. ‘집 상태는 어떠냐’고 먼저 묻고, 어르신이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자 그제야 조심스럽게 질문을 좁혀갔다. 나는 그 대화법이 상대가 혹여나 상처받지 않도록 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였다면 아마 더 직설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말의 내용보다도, 말을 꺼내는 순서와 속도가 사람을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어르신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불 빨래는 좀 힘들어.”
그 말을 듣자, 주사님은 바로 이렇게 말했다.
“적십자에서 이불 빨래를 도와주거든요. 내일 이불 들고 오시면 연결해 드릴게요.”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했다.
그 순간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도움을 드렸다’는 결과보다도, 그 도움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어르신은 이불 빨래가 필요하다고 말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해진 물품을 받으러 왔을 뿐이다. 만약 주사님이 그 질문들을 하지 않았다면, 주민센터에서 어르신이 이불 빨래를 해줬음 한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적극행정이라는 단어는 알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적극행정이 뭔데? 적극행정의 예시를 들어봐"라고 물었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는 첫 복무일에, 잠들지 않기 위해 듣고 있던 대화 속에서 불현듯 '적극행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적극행정이란, 상대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필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고 말을 건네는 것. 그 질문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부담을 감수하는 것.
우 주사님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우 주사’라는 호칭은 가명이다.) 이 에피소드는 내가 그분을 멋지다고 생각하게 된 첫 번째 계기다.
나는 의대를 다니다 휴학하고 복무를 시작했다. 아마 몇 년 뒤에는 의사가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혹은 도움이 필요한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군가의 필요를 찾아낼 기회는, '질문을 시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찾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질문을 통해 얻는 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때때로 과정을 미화시키고 그 반대의 일은 더욱 자주 일어나지만, 나 자신만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