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복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이 많은 날이었다. '목욕 및 이•미용 바우처'라는 목욕과 미용 목적으로만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 그 바우처의 사용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아직 바우처를 다 쓰지 않은 분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것이 나의 제대로 된 첫 업무였다.
이 일을 주신 정 주사님(가명)께서는 "전화해서 얼마 남았으니까 12월 10일까지 사용하셔야 한다~"라고 말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하시며 종이를 몇 장 건네주셨다. 내가 받은 종이에는 어르신의 성함/전화번호/남은 금액이 표 형식으로 쭉 나열되어 있었다. 한 페이지에 대략 50명이 조금 안 되어 보였는데, 그것이 양면으로 4장이라 대략 350명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긴장했다. 전화를 건다는 것은 나에게 늘 그런 일이었다. 난 중국집에 전화를 걸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인데, 심지어 지금은 내가 을(?)의 위치에서 전화를 걸어야 하다니. 머릿속으로 전화를 거는 상상을 했다. '첫마디는 뭐라고 해야 하지? 우 주사님께서는 "OO동 주민센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립니까?"라고 하셨던 것 같다. 나도 그대로 따라 하면 되나? 하지만 "~도와드립니까?"는 너무 특이한 어투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다른 주사님들이 놀리실 것 같은데... 그리고 지금 상황은 내가 받는 것이 아니고 거는 상황이니 "OO동 주민센터입니다" 까지만 말하는 것이 옳다......'
"전화 안 걸고 뭐해요?"
정 주사님의 말에 공상이 끊겼다. 나는 전화를 걸 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자 주사님은 그냥 전화 걸어서 바우처 사용 기한이 12월 10일까지인 것만 알려주면 되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더 시간을 끌 수도 없어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0-1-0-9-
뚜르르르르르르...
미친, 전화가 걸리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0109까지만 입력했는데 어디로 전화가 가는 거지?' '아니, 애초에 발신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전화가 가는데?' 그러고는 급하게 수화기를 내려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전화기를 살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 전화기는, 발신 버튼이 없다! 번호를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연결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번에는 조금 빠르게 번호를 눌렀다.
010-9xxx-xxxx
"OO동 주민센터입니다"
"어디라고요?"
"(더 크게) OO동 주민센터입니다!"
"잘 안 들립니다"
"OO동 주민센터입니다!!!"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아마도 귀가 어두우셔서 잘 안 들리시는 듯했다. 다행히 나는 목청에는 자신이 있었다. 동사무소가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어르신께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첫 어르신 이후에도 "내가 가는 미용실에는 안 되던데?" "병원에 입원해서 못 쓸 것 같습니다""난 그런 카드 받은 적 없는데?" 같은 수많은 상황들이 있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는 순간도 많았지만, 백 명쯤 전화를 걸고 나니 전화를 거는 일 자체는 점점 익숙해졌다.
그러다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종이에는 어르신의 성함과 함께 생년월일이 쓰여 있었는데, 30년대생 어르신들이 40년대생 어르신들보다 귀가 어두운 비율이 훨씬 높았다. 처음에는 그냥 '아 신기하다' 정도로 넘겼다. 그런데 몇 분 더 전화를 드리다 보니 다른 감정이 생겼다. 종이를 봤는데 어르신 생년월일이 30년대생이면, 전화를 아직 걸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 또 주민센터 떠나가라 소리 질러야겠네...'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더욱 지독한 것은, 30년대생 어르신이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내가 맡은 일이 정보를 전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에야 나는 내 감정의 흐름을 자각했고, 그제야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 한심한 놈이었나?’
집에 와서, 부모님과 저녁을 먹으며 그날 있었던 일과 내가 느낀 감정을 얘기했다. 아직 전화드릴 어르신이 많이 남았는데, 그런 마음으로는 일을 편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는 내 얘기를 들으시고는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에 휘둘리지 말고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이미 생겨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번 경우에는, 감정이 아예 생기지 않게 할 방법이 있다는 것을.
다음 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종이에서 생년월일이 적힌 부분을 책으로 덮어 가려버렸다. 마치 공정한 판단을 위해 눈을 감고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처럼. 마음속의 감정을 지울 수 없다면, 나는 그 원천을 차단해 버리기로 했다.
이번 일은 운이 좋았다. 눈을 가려서 보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안다. 눈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훨씬 많을 거라는 것을. 공자는 일흔이 되어 '종심소욕불유구(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나는 아직, 눈을 감아야만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눈을 뜨고도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