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서 헤엄치는 하루

지원금 신청이 끝난 날

by 페로로

2025년 11월 1일에 주민센터에 불만 있는 민원인이 많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분들은 주민센터에 오기까지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주민센터에 와서 첫 질문을 던지는 순간 급작스럽게 불만이 생기실 예정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2차 민생지원금 '신청' 기한이 10월 31일까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용 기한은 11월 30일까지여서 그쪽만 기억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은 모바일로 민생지원금 신청을 했을 테니 잘 모를 수 있는데,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으신 어르신들은 주민센터에서 카드 형태로 지원금을 받아갈 수 있다. 아니, 있었지. 어제까지는. 나는 그날 들은 대화 중 두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날의 모든 대화는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민생지원금 신청하러 왔는데요."

"어제 신청 기한이 끝났어요! 이제 신청이 안 되세요(주사님들이 가장 자주 하시는 맞춤법 실수이다. 그러나 어쩌면 '의도된 틀림'일 수도 있다는 점이 재밌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아니 11월 말까지 아니에요?"

"사용 기한은 11월 30일까지인데 신청 기한은 10월 31일까지였어요. 지금은 신청이 안 되세요"

"신청 기한이 따로 있어요? 나는 사용 기한만 들어봤지 신청 기한은 못 들어봤네... 그래서 이제 돈 받을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여기서부터 주사님들의 대응이 갈린다. 먼저 우 주사님의 경우를 한 번 보자.


"네 이제 신청이 안 돼요!"

"아직 쓸 수는 있는데 신청이 안 된다고?"

"나라에서 정한 거라 어쩔 수가 없어요. 안 돼요!"

와... 너무 단호하셔서 순간 단호박인 줄 알았네.

듣고 있으면 조금 매정해 보일 정도다.


두 번째 대화의 주인공은 임 주사님이라는 분인데, 이번에는 임 주사님의 경우를 살펴보자.


"네 나라에서 정한 기간이 끝나서, 이제 신청이 안 되세요. 저희가 신청해 드리고 싶어도, 신청하는 전산 창이 다 닫혔어요."


"그러면 전산을 다시 열면 되잖아!"


올라가는 입꼬리 사이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이 꽉 깨물고 겨우 참았다. 난 처음엔 '이건 뭐지? 민원인 분의 고도의 화내기 기술인가? 웃기게 해서 당황시키기?'같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정말로 그렇게 이해했을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엔 임 주사님의 말의 의도는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신청을 해 드리고 싶어도 신청 기간이 끝나서 신청 버튼이 안 눌린다!' = '안 된다!'

결국 임 주사님의 말은 우 주사님과 똑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상냥하게 들렸다. 뭐라도 상대에게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어르신은 그 말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셨을 수 있다. 다음은 내가 멋대로 만들어 본 어르신의 사고 흐름이다.


신청 못하는 이유가 뭔데?->#~#(전산)이 닫혀서 안 돼요->#~#이 뭐지? 아무튼 이게 닫혀서 안 된다니까 마치 문이 닫혀서 안 되는 상황 같은 건가? 근데 네가 공무원인데 네가 문 열면 되는 것 아니야?->"그럼 #~#를 열면 되잖아!"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수 있다. 특히 '전산'이 무엇인지 모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나도 전산이 뭔지 잘 모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전산이 뭔지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다. 그리고 (임 주사님은 문과기 때문에) 임 주사님도 전산이 뭔지 설명하라고 하면 못할 거라는 데에 만 원 정도는 걸 수 있다.


여기서 나는 깨달았다. 우 주사님이 단호박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어차피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설명을 하려고 하면, 불필요한 실랑이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민원인은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지.




그러면 어떤 응답이 더 나았을까.


임 주사님의 대응은 상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에게 "가능성 있는 문제"처럼 들렸고, 불필요한 대화를 늘렸다.

우 주사님은 언뜻 매정해 보였지만, 그로 인해 민원인의 대기 시간을 줄였고 본인의 전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복무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인데, 세상일에는 정답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훨씬 많은 것 같다. 학교 다닐 때처럼 정답이 있는 문제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들 속에 던져져, 어떻게든 나만의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막 헤엄친다. 그러다 보면 가끔 코로 물이 들어와 숨이 막힐 때가 있다.'애초에 헤엄치지 않았다면 코로 물이 들어올 일도 없었을 텐데...'하고 후회할 때도 있다.


그런데 다음 날이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엄친다. 난 현실에서는 수영을 전혀 못하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헤엄친다. 현실 수영은 물을 코로 먹을까 봐 무섭지만, 머릿속 수영은 숨이 막혀도 죽을 일은 없으니 안전하다. 그런 정도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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