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을 덜어내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by 페로로

"OO 씨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탁구 레슨 선생님이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공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오면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다는 것이다.


쓴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스스로도 그러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하루는 동사무소에서 김치를 나눠주었다. 주사님께서는 김치 받을 분들 명단을 주시며, 이름 옆 서명칸에 서명을 받으라고 하셨다.


김치는 3시 반쯤 들어왔는데, 여유 있게 받는 분들에게는 5시쯤 오시라고 전화를 돌렸다. 6시에는 주민센터가 문을 닫으니, 5시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김치 박스 근처에 마땅한 테이블도 없어서 김치 한 박스 드리고, 남은 박스 더미 위에 종이를 올려서 서명받는 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오신 분 중 한 분은 오른팔이 없었다. 패딩을 입고 계셔서, 내가 그걸 눈치채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순간 멈칫했다. '사인을 하실 수 있을까?' 내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그분은 내 오른손에 허술하게 걸쳐 있던 펜을 들고 가시고는, 왼손으로 삐뚤 하지만 충분히 알아보실 수 있게 이름을 적으셨다. 박스를 드릴 때도 카트 같은 곳에 실어드려야 하나 망설였는데, 오른 어깨와 왼손으로 7kg짜리 박스를 드시고는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며 가셨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잘못 응대한 부분이 있었나?'

'아니다, 오른손이 없는 분이 서명을 하실 수 있는지, 박스를 드실 수 있는지 망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팔이 없으신 분을 보고 당황한 것이 나의 가장 큰 잘못이다. 상대의 콤플렉스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황한 티를 내면 괜한 위화감만 조성된다. 그렇다면 나는 왜 당황했는가. 팔이 없는 분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서다. 그럼 왜 생각을 못했는가. 그러한 경험이 없어서다. 이제 경험했으니 다음부터는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일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그다음 분도 사인하기를 망설인다.


"제가 시각장애인이라서 그런데 대신 사인 좀 해 주실 수 있나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주사님이 대신 사인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떡하지?' 굳어버린 머리처럼 시간도 멈추면 좋을 텐데, 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멍청이라도 이 상황은 너무 쉽다. 내가 대신 서명을 하고, 상자를 드렸다. 내 걱정이 무색하게 그분은 상자를 들고 잘 걸어가셨다.


그날 집에 와서 있었던 일들을 복기했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당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직후에 또 당황하다니. 김치 나눠줄 때 받는 서명은 법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확인용일 뿐인데, 그냥 시각장애인이라고 하시면 쓸데없이 고민하지 말고 내가 서명하면 되는데.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는 일도 너무 많다. 이 망상병을 좀 없애면 좋을 텐데.


그런데 생각을 덜어내는 것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더 열심히 생각해'라고 하면 막 용을 써볼 텐데.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생각을 덜어내기는커녕 더 추가된다. 여러분은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 쓰는 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에게도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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