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걸음, 나의 긴 여정

05 끝나지 않는 여름방학

by 빛나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방학은 자유와 웃음의 계절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늦잠을 자며 여유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게 여름방학은 또 다른 이름의 지옥이었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 나는 더 자주 친구 집에 가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숙제하러 가.”
“같이 놀다 올게.”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발걸음 하나하나가 나에겐 끝없는 두려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대문도 없는 입구를 지나 마당에 들어설 때, 벌써 마음은 굳어졌습니다.
친구가 웃으며 게임을 켜거나 밖에 나가자고 할 때도, 내 속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가 울리고 있었습니다.
낯선 기운, 문이 닫히는 소리, 낮게 깔린 목소리…
그 모든 게 또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신호처럼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방학 동안에도, 그 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 나는 불려 들어갔습니다.
몸은 얼어붙었고,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싫다”라는 말은 목구멍에 맴돌았지만, 끝내 입술을 뚫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눈물은 안에서만 맺힌 채 흘러내리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늘 같은 방식으로 멈춰버렸고, 끝나고 나면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흘러갔습니다.

친구와 웃으며 숙제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순간조차 내겐 공포와 함께였습니다.
웃음 뒤에는 늘 그림자가 숨어 있었고, 그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마다 불안은 커져만 갔습니다.

병원에 가는 일도 계속되었습니다.
약봉지를 받아 들고 돌아오는 길, 뜨거운 여름 햇볕이 쏟아졌지만, 내 안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 숙제를 두고 투덜대며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그 속에서 나의 하루는 늘 같은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나는 버텨야 해. 내 안의 불꽃은 꺼뜨리지 않을 거야.”

여름은 그렇게 길고 무겁게 흘러갔습니다.
남들은 자유라고 부르는 그 시간에, 나는 또 다른 침묵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방학의 끝에서, 내 안에는 여전히 작지만 꺼지지 않는 불꽃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를 기다리는 건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또 다른 시험과 고독이었습니다.

친구들 속에 섞여 있어도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병원 냄새가 남아 있는 내 몸에서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아이들은 나를 멀리했고 괜히 조심스레 바라보는 시선은 내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몇몇 친구는 여전히 곁에 있어 주었지만, 그 따뜻함마저 오래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내 웃음은 종이처럼 얇아져 쉽게 찢어졌고, 사소한 말에도 금세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책장을 손끝으로 스치며 넘기거나,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불꽃을 붙잡았습니다.
그 불꽃은 흔들렸지만,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불꽃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증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