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가을의 그림자
가을이 다가오자 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운동회 준비로 분주한 교실, 책상 위에 흩어진 색종이와 붓, 그리고 운동장을 메운 응원 구호 소리.
겉으로 보기엔 나도 그들 중 하나처럼 보였지만, 내 속은 늘 다른 시간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방학 동안 다녀온 여행 이야기를 쏟아내며 떠들썩했습니다.
바다에서 본 불꽃놀이,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 새로 배운 노래까지… 교실은 온통 웃음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내 자리 위에는 그 어떤 이야기의 흔적도 없었습니다.
책상 위에 공책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나는 그저 연필을 굴리며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내게 말을 걸어도, 웃음으로 대답하는 건 잠시뿐이었습니다.
친구들 속에 섞여 있어도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병원 냄새가 남아 있는 내 몸에서 풍기는 기운 때문인지,
아이들은 나를 멀리했고, 괜히 조심스레 바라보는 시선은 내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했습니다.
몇몇 친구는 여전히 곁에 있어 주었지만, 그 따뜻함마저 오래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내 웃음은 종이처럼 얇아져 쉽게 찢어졌고, 사소한 말에도 금세 무너졌습니다.
웃음 뒤로는 다시 무겁게 내려앉는 침묵이 따라왔습니다.
방학 동안 이어진 일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누군가 낮게 부르는 목소리에 온몸이 굳어졌습니다.
학교라는 울타리 속에서도 그 기억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저녁이 되면 더욱 고요했습니다.
창밖으로 어둠이 내려앉고, 마을 집집마다 불빛이 켜질 때면, 내 방 안에도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렸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씨를 붙잡으려 애썼습니다.
손끝에 느껴지는 연필의 감촉, 종이를 넘기는 소리, 교과서에 적힌 활자 하나…
아주 작은 것들이 내 불씨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하루 같았지만, 나의 하루는 늘 시험대 위에 서 있는 듯했습니다.
“오늘은 무사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매일의 시작과 끝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그 모든 두려움 속에서도 내 안에는 여전히 작은 불꽃이 남아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흔들렸지만,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불꽃은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마지막 증거 같았습니다.
나는 다짐했습니다.
말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알리지 못하더라도,
내 안의 불꽃만큼은 꺼뜨리지 않겠다고.
가을의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습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내 안에는 아직 불꽃이 있다.”
그리고 그 다짐은 곧 다가올 겨울을 버텨낼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