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얼어붙은 하루와 작은 울타리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또 다른 세상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교문은 커 보였고 아이들은 더 많았으며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습니다.
모두가 새 교복을 입고 설레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지만
내 마음속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척했습니다.
웃으며 자기소개도 했고
새 교과서를 받아 들고 책장에 이름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소리에도 몸이 움찔했고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면 숨이 막히듯 긴장했습니다.
“나는 달라야 해. 나는 평범해야 해.”
그 생각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시골에는 중학교가 하나뿐이라
초등학교에서 함께 올라온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새로 사귄 친구들이 있었지만
금세 “쟤 왕따였잖아”라는 말이 퍼졌고
가까워지던 아이들마저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 여자아이 셋 중 두 명은 떠났고
내 곁에 남은 건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금세 새로운 무리와 어울리며 웃고 떠들었지만 나는 그 속에 쉽게 섞이지 못했습니다.
가끔 다가오는 아이가 있으면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속 깊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자꾸 고개를 들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언젠가 또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교복을 벗자마자 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 안도감이 내 하루의 전부였습니다.
병원에도 여전히 다녀야 했습니다.
약을 타는 건 내 일상의 일부였고
약봉지는 가방 안에서 교과서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동안
나는 앉아서 구경하거나 몸이 아프면 보건실에서
약을 삼키며 창밖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순간마다 나는 내가 어른들이 말하는
‘평범한 14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학교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점심시간에 일부러 내 옆자리를 비워두는 아이들도 있었고
체육 시간에는 짝이 되길 피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매일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또 다른 공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아이의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습관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은 나에게 늘 무거운 두려움의 공간이었습니다.
안 가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또 숙제를 같이 해야 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습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침묵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때 뜻밖의 울타리가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 고등학교 선배들이었습니다.
사촌오빠는 일찍 학교에 들어가 또래보다
한 살 많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오빠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누구와도 잘 지냈고
그래서 늘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인연들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습니다.
오빠가 중학교 때 부천으로 이사 가긴 했지만
남아 있던 친구들은 그대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등굣길과 하굣길에는
자주 고등학교 선배들을 마주쳤습니다.
선배들은 나를 보며 “너 ○○ 오빠 동생이지?”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었고
오빠 안부도 묻고, 번호를 부탁하며 나를 챙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오빠의 ‘친여동생’으로
알고 다정하게 대해주었지만
나중에 실제로는 사촌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여전히 친구의 여동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진짜 동생처럼 잘 대해주었습니다.
한 번은 중학교 선배가 고등학교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쟤랑 무슨 사이예요?”
그러자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친구 여동생이야.”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선배들이나 같은 반 아이들이 나를 놀려도
고등학교 선배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쟤 뒤에는 선배들이 있구나.”
그 인식 하나가 내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 주었습니다.
외롭고 무섭던 14살의 나는 여전히 불안 속에 살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울타리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방패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내 안의 불꽃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불꽃 덕분에 14살의 나는 조금씩 세상과
다시 눈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