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따뜻함과 그림자 사이
고등학교 선배들의 존재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나의 두려움을
조용히 가려주는 그림자 같은 울타리였습니다.
완벽한 안전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나를 향해 툭 던져지는 말들과 시선들 속에서
적어도 나를 지켜보는 어른의 그림자 같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14살의 나에게 큰 숨구멍이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방패는 없었지만,
적어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내 안의 불꽃을 지켜주었습니다.
그 불꽃 덕분에 14살의 나는
조금씩 세상과 다시 눈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내 곁에는 단 한 명의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입학식 날부터 함께했던 셋 중,
끝까지 내 옆에 남아준 그 아이.
다른 친구들이 멀어질 때도
그녀는 조용히 내 옆자리를 지켜 주었습니다.
옆반이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서로 웃으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하교할 때는 각자 다른 길로 갔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우리는 늘 약속하지 않아도 식당 근처에서 마주쳤습니다.
트레이를 들고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서로의 하루를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점심시간에 나란히 앉아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어릴 때 어디 유치원 다녔어?”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유치원. 우리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그 조그만 데.”
그 아이는 놀란 얼굴로 나를 봤습니다.
“진짜? 나도 거기 다녔어!”
순간, 둘 다 멈춰 섰습니다.
시골이라 유치원은 반도 하나뿐이었고,
선생님 한 분이 우리 모두를 돌보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혹시 우리, 그때 같이 놀았을 수도 있겠다.”
“그럴지도 몰라.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그 말을 하며 둘 다 웃었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어.
학교가 끝난 뒤 우리는 각자 어릴 적 사진을 찾아봤습니다.
다음 날, 오래된 앨범을 넘기다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모래놀이를 하며 웃고 있는 작은 아이,
바로 내 옆에서 앉아 있던 그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그 사진을 보여주자
그녀는 입을 가리며 웃었습니다.
“진짜네! 우리, 그때부터 친구였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복도 끝에서 마주치면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했습니다.
그 아이의 웃음은
내 하루 속 작은 햇살이 되어주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우연이 아닐 거야.’
그 아이와의 우연 같은 재회 덕분에
내 학교생활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습니다.
선배들이 뒤에서 조용히 지켜주고,
그 아이는 내 마음 가까운 곳을 따뜻하게 채워주었습니다.
나는 마침내 오래된 얼음에서
천천히 벗어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습니다.
그 평온함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리고 곧 다가오는 여름방학이
내 삶에 또 다른 큰 그림자를 남길 거라는 것도.
겨울이 완전히 녹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분명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작고 따뜻한 봄 —
그건 바로, 다시 만난 그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봄이 오래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따뜻하게 녹아가던 마음속 얼음은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함께
조용히 다시 굳어가기 시작했습니다.
14살의 여름방학,
나는 또다시 피하고 싶었던 문 앞에 서게 되었고,
오래전부터 두려워하던 그림자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