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도 압류할 수 있을까?

숨겨진 주식을 찾아 3억을 회수하기까지

작년 9월, 한 통의 배당표가 도착했다.

가압류 신청부터 3년, 첫 대여 시점부터 따지면 20여 년 만에 마침내 돈이 돌아온 것이다.



이 사건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이가 지긋한 모자(母子)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2007년 1월에 알고 지내던 남매에게 두 차례에 걸쳐 각 1억 5천만 원씩 총 3억 원을 빌려줬다고 했다. 첫 번째 1억 5천만 원은 모자가 함께 빌려준 것이었고, 두 번째 1억 5천만 원은 어머니가 단독으로 빌려준 것이었다.


차용증을 쓰고 연 15% 안팎의 이자를 약정했었고, 처음 몇 년간은 약속대로 매월 이자가 들어왔다. 그러다 2013년 여름을 마지막으로 이자도, 원금도 끊겼다.


이자가 끊긴 뒤 의뢰인은 이미 여러 차례 소송을 거친 상태였다. 채무자 어머니 소유의 부동산에 근저당을 설정해 두었기에, 이를 실행해서 경매로 약 일부 금액을 회수하기도 했다. 그런데 변제충당이라는 법리에 따라, 회수한 돈은 이자부터 충당된다. 6년 넘게 쌓인 이자를 갚고 나니 원금은 한 푼도 줄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의뢰인이 우리를 찾아오기 전의 상황이었다. 긴 세월 간 대여금을 회수하지 못한 채, 경매 배당금마저 이자에 흡수된 상태. 채무자에게는 부동산도, 예금도 사실상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재산이 없는 것과 집행할 재산을 찾지 못한 것은 다르다.





숨겨진 재산을 찾다


소송을 아무리 잘해도 집행할 재산이 없으면 승소판결은 종잇장에 불과하다. 의뢰를 받자마자 나는 소송보다 채무자의 재산 확보를 먼저 서둘렀다.


재산 조회를 해보니, 하나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증권사 계좌에 주식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는 거래정지된 종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한국거래소가 개선 기간을 부여한 상태라 거래가 재개될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 묶어두지 않으면 거래가 재개되는 순간 처분될 수 있었다.


우리는 즉시 채무자의 증권계좌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인용했다. 1억 8천만 원 규모의 전자등록주식 가압류 결정. 이 가압류가 이후 3년에 걸친 채권 회수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다 갚았다는 주장


소송이 시작되자 채무자 측에서 답변서가 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피고들은 원고들에게 이미 그 원리금이 넘는 금액을 변제하였습니다."


채무자 측의 논리는 이러했다. 이전 재판들에서도 돈을 지급한 사실 자체는 인정됐으나, 수표나 현금으로 주고받다 보니 어느 채무에 대한 변제인지 입증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같은 다툼을 반복하기보다는 조정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참고서면을 제출했다. 채무자들이 이전 재판에서 "변제 완료"라고 주장한 별도의 1억 원 대여금조차, 실은 소송을 거쳐 1심 판결을 받고, 항소심에서 9천만 원을 분할상환하는 것으로 겨우 합의하여 회수한 것이었다. 자발적으로 변제한 것처럼 서술한 것은 사실과 달랐다.


채무자 측은 또 하나의 카드를 꺼냈다. 의뢰인이 고리대금업자라는 프레임이었다. 연 15%의 이자 약정을 두고 "고율의 이자를 수령하며 이미 원금 상당을 회수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 15%는 당시나 지금이나 이자제한법의 상한을 넘지 않는다. 돈을 빌려갈 때 충분한 이자를 주겠다고 한 것은 채무자 본인이었다. 원금도 갚지 않으면서 이자율을 탓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가압류가 만들어낸 협상력


양측의 주장이 오간 끝에, 재판부는 조정을 권유했다. 채무자 측으로서는 증권계좌가 묶여 있는 상황에서 끝까지 다투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소송 전에 선제적으로 재산을 확보해 둔 것이 협상력으로 작용한 셈이다.


조정이 성립되어 첫 번째 대여금에 대해, 피고들이 연대하여 원고 모자에게 약 1억 9,600만 원을 지급하되, 1억 4천만 원은 일주일 내에, 나머지 약 5,600만 원은 2024년 3월 말까지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두 번째 대여금에 대해서는, 피고들이 연대하여 원고 어머니에게 약 1억 9,400만 원을 같은 해 3월 말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1회라도 연체하면 기한의 이익을 상실하고, 미지급 잔액에 연 12%의 지연손해금을 가산하는 조건이었다.


대여금.png





첫 번째 대여금은 돌아왔다


조정이 성립된 뒤, 첫 번째 대여금 약 1억 9,600만 원은 정해진 기한 내에 이행되었다. 채무자는 남매였고 연대채무였기 때문에, 둘 중 한쪽이라도 자금을 마련하면 지급이 가능했다. 증권계좌가 묶인 상태에서 조정까지 성립된 이상, 어떻게든 돈을 만들어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5년 넘게 1원도 돌려받지 못했던 돈이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대여금이었다. 약 1억 9,400만 원 중 5천만 원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지급기한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가압류해 둔 주식이 있으니 강제집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밀고 나가다


나는 앞서 걸어둔 가압류를 본압류로 전환하는 신청을 했다. 동시에 채무자가 다른 증권사에 보유한 주식까지 추가로 압류했다.


하지만 주식을 압류한다고 해서 바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금이라면 추심명령만으로 은행에서 바로 돈을 받아올 수 있지만, 주식은 다르다. 주가는 매일 변동하고, 거래정지된 종목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주식을 현금으로 바꾸려면 법원에 별도로 특별현금화명령을 신청해야 하고, 그 결정을 받아 집행관이 증권사에 매각을 위탁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가압류, 본압류, 특별현금화명령, 매각, 배당...

단계가 많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실무에서는 이 과정을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2024년 6월 특별현금화명령을 신청했고,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반년 넘게 기다린 끝에 법원은 2025년 1월 매각을 결정했다.


이후 매각이 이루어지고, 2025년 9월 최종 배당표가 작성되어 약 9,480만 원이 의뢰인에게 배당되었다.


특별현금화명령.png





돌아오는 것, 그리고 돌아오지 못하는 것


배당 소식을 전달한 날, 고령의 의뢰인은 전화기 너머로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여태껏 기다린 긴 시간이 그 짧은 문장 안에 들어 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날부터, 소송을 하고, 경매를 넣고, 다시 변호사를 찾아가고, 또다시 기다리고. 그 모든 날들이.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돈을 빌려준 사람과 빌려간 사람 사이에는 단순한 채권채무 관계 이상의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거기에는 신뢰가 있었고, 그 신뢰가 무너진 자리에는 분노보다 깊은 허탈함이 남는다.


사람을 믿었던 자신에 대한 회의.


돈을 돌려받을 수는 있어도, 한번 무너진 신뢰는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과 법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이야기를 씁니다.

법무법인(유한) 이현, 대표변호사 이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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