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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Apr 02. 2021

토요일, 마트 가기를 멈추다.


  언제부턴가 토요일만 되면 마트에 다. 시작은 선물 받은 상품권 때문이었다. 사용처를 보니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대형마. 바람도 쐴 겸 다녀온 그곳은 나만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넉넉한 주차공간과 쾌적한 공기는 기본이요, 집 근처 마트에서 볼 수 없던 물건을 보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점도 좋았다. 나는 장을 볼 수 있어 좋았는데 특히 계산대 옆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팝송과 커피에 마음을 빼앗겼다. 남편은 전자 제품 코너에 진열된 새 상품을 보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장난감 코너에서 신문물을 체험한 아이는 원하는 것을 단숨에 집었다. 그때부터 토요일에 마트 가는 일은 우리 가족의 일과가 되었다.


세 번. 그러니까 3주 연속으로 장을 보러 간 날이었다. 살 물건이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 카트는 비좁았다. 계산대에 찍힌 가격을 보니 예상보다 2배 넘는 지출이 발생했다. '많이 사지도 않았는데 십만 원이 훌쩍 넘었네'라는 남편 말에 그날은 조용히 카페를 지나쳤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처음에는 마트를 돌아보기만 해도 좋았는데 갈수록 피곤해졌다.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와 한숨 자면 기다리던 주말은 저만치 달아나 있었다.




  책이 필요했다. 그 날 저녁, 모두가 행복한 주말을 떠올려보았다. 일에 몰두하는 남편은 건강을 챙겨야 했고, 나는 토요일 오전만은 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두 돌이 지난 아이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부모와 있기를 원하지 않을까. 시간은 흘러 토요일이 되었고 남편제안으로 근처 체육공원에 갔다. 오랜만에 땀을 흘리며 코트를 누비는 남편과 농구공을 외치며 아빠를 는 아이에게 웃음이 가득했다.


다음 주 토요일. 이번에는 숲 체험이 가능한 공원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내려서인지 풀내음이 온몸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한 모습과 달리 휑했다. "여보, 여기 맞아? 확실해?" 몇 번을 묻는 남편에게 한 마디 하려던 참에 비에 젖은 나뭇잎을 흔드는 아이를 보니 잔소리가 달아났다. 연을 으며 걷는데 누군가 남겨놓은 글 자취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우린 암묵적 화해를 했다.



어느덧 셋째 주.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마트가 아른거렸지만, 함께 아침을 만들어 먹으며 집에 있기로 했다. 남편이 아이에게 삶은 달걀 까는 법을 알려주니 곧잘 따라 했다. 비닐팩에 삶은 달걀과 다진 채소, 마요네즈를 넣어 아이에게 주니 신나게 촉감 놀이를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의 손맛(?)으로 완성된 샐러드에 빵에 곁들여 먹으니 왠지 모를 행복이 곁드는 것 같았다.


마트 가기를 멈춘 넷째 주 토요일, 내공이 쌓인 우리는 차로 30분을 달려 호수에 도착했다. 예상 산책로와 반대로 가는 바람에 두 시간을 걷고, 칭얼대는 아이를 교대로 업다가 안으며 걸었다.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걷는데 남편이 불쑥 한 마디 던졌다. '그래도 마트에 있는 것보다는 덜 피곤하네.'




  돌아보면 마트에서 보낸 시간이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리스트에 적힌 물건을 샀는지 체크하기 바빴고, 카트를 밀며 따라오던 남편은 운동 기구와 전자 제품에서만 생기를 찾았다. 장난감을 볼 때만 환히 웃던 아이를 생각하니 마트가 주는 기쁨은 각자에게 찾아왔으며, 잠깐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한 시간은 달랐다. 함께하니 서로를 볼 수 있었다. 이전에도 다녀온 체육공원이지만 비로소 남편이 보였다. 좋아하던 농구를 할 시간도 없을 만큼 가장의 책임감을 떠안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새로운 곳을 좋아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내가 아이를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된 점도 좋았다. 남편은 땀을 흘리니 스트레스가 풀린 것을 깨닫고 헬스를 시작했다. 쉽게 지치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나는 홈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장은 평소에 보고 집안일은 금요일에 끝냈더니 토요일 오전 시간이 확보되었다. (늦잠 자던 남편이 일찍 일어난 것도 한몫했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남편이 쉬는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남편과 함께 가기 위해 미뤄둔 곳을 아이와 다녀왔다. 남편과 차 없이는 힘들다는 생각을 버리고 몇 번 가다 보니 용기가 생겼고, 아이와 둘만의 추억도 방울방울 생겨났다.

     

토요일, 마트 가기를 멈췄다. 함께 했지만 서로를 보지 못한 토요일을 멈췄다. 대신 오롯이 함께하는 토요일을 시작했더니 내가 보였다. 남편과 아이가 보였고 이내 가족이 보였다. 이젠 나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 아이에게 남편이 속삭인다. "내일 아빠랑 엄마랑 놀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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