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정말 순수함을 잃는 일일까

진정성을 지키며 비즈니스를 키운다는 것에 관하여

by Zack


쇼핑몰 한구석, 아이가 잠든 사이, <매거진 B> 인텔리젠시아 편을 펼쳤다. 지난 몇 주간 파트너사들과의 지난 1년을 복기하고 새해를 설계하느라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소란스러운 몰 안에서, 활자와 함께 잠시 멈춰 있는 그 시간은 그야말로 내겐 쉼이었다.


2020년, 강남에서의 프로덕션 생활을 마치고, 나는 브랜딩에이전시라는 업종으로 강남이나 홍대가 아닌, 용인시 처인구에 터를 잡았다. 이름은 '교외이상(Suburban Ideal)'.

학술적으로 'Suburban Ideal'은 도심의 혼란에서 벗어나 녹지와 가족, 공동체 중심의 삶을 추구하는, 다소 엘리트주의적 열망에서 시작되어 중산층의 꿈으로 확장된 개념을 뜻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 단어는 사회학적 정의를 넘어선 실존적 실험이었다.


광고 에이전시가 트렌드의 최전방에 서기 위해 반드시 삶과 가정을 담보로 잡혀야만 하는가? 교외에서도, 아이와 함께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지키면서도 날카로운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것이 목사라는 나의 본업(本業)과 위배되지 않는 길이라 믿었고, 지역을 기반으로 고군분투하는 브랜드들의 전략을 짤 때면 단순한 비즈니스를 넘어선 묵직한 사명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늘 주춤거렸다.

목회자로서, 그리고 로컬 지향적인 기획자로서 나에게 성장이란 어쩐지 순수함을 잃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몸집이 커지면 필연적으로 진정성은 희석되고, 유기적이었던 관계는 기계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그래서 나는 '대박'보다는 '지속 가능함'에 숨어 성장을 유보했는지도 모른다.


시카고의 동네 로스터리에서 시작해 블루보틀, 스텀프타운과 더불어 미국 3대 스페셜티 커피로, 그리고 작년 한국에까지 진출한 인텔리젠시아의 스토리는 그런 내게 남 다르게 다가왔다.


"얼마나 많이 성장하는가보다 어떻게 성장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들은 규모가 커졌음에도 바리스타가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포기하지 않았고, 각 지역의 색깔을 입히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성장은 본질의 타협이 아니라, '자신다움'을 더 넓은 세상에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지쳐있던 순간, 나는 다시 성장을 꿈꾸게 되었다. 지난 미팅들에서 마주한 파트너사들의 치열한 눈빛이 떠올랐다. 그들이 진정성 있는 일을 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돕기 위해서라도, 나 또한 나의 '교외이상'을 더 단단하게 키워내야 함을 깨닫는다.


내가 하는 일의 방식이 결국은 현실의 업의 본질과 돈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선언이니까.


광고가 삶을 갉아먹지 않고도 훌륭할 수 있듯, 진정성을 해치지 않고도 비즈니스의 성장이 가능함을 증명해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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