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뛰지 못해도 뜁니다

보스턴에서 경안천까지, 달리기가 내 삶에 남긴 것들

by Zack
무려 10년전 7월, 보스톤 외곽 알링턴


10년 전 보스턴 외곽지역에 잠시 머물 때 이른 아침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거리를 뛰었다. 젊은 사람들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도 하나 같이 나와서 뛰었다. 휴일이면 쉬고 싶었을 텐데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뛰고 그랬다. 다운타운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찰스 강변엔 언제나 뛰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애슬레져 룩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알고 보니 보스턴 마라톤은 2025년에 새로이 합류한 시드니 마라톤을 포함하여 세계 7대 마라톤으로 분류되었고 보스턴은 러닝화로 유명한 뉴발란스의 고향이었다. 달리기에 진심인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호랑이 담배 필 시절 얘기지만 전국 단위도 아니고 서울에만 러닝크루가 몇 개 안 될 때가 있었다. 그때가 그러니까 연트럴 파크가 막 개장할 무렵이었다. PRRC, 88SEOUL, WAUSAN30 등 러닝크루들은 마치 개척자처럼 서울과 한국의 러닝 문화를 제시했고 BTG(Bridge the Gap) 같은 이벤트나 나이키 같은 메이저 스포츠 브랜드와의 협업도 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뛰는 걸 잘 못한다. 학창 시절 단거리는 항상 6명 중 4-5등이었고, 오래 달리기는 더욱 쥐약이라서 뜀박질을 해야 할 자리는 일부러 피하곤 했다. 웨이트를 시작하고 나니 달리기는 더욱 멀어져서 심박수를 높여주는 달리기는 피하고 몸을 울퉁불퉁하게 하는 근력에만 집중했다. 어좁이에서 프레임이 넓어지고, 말랐던 상체와 팔이 두꺼워지는 데에서 느끼는 성취감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뛰는 건 성취감보다 힘듦이 더 컸었다.



청라에 살 때 호수 공원 바로 앞에 살았다. 그 집에 들어갈 땐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거기 사는 동안 완공되었고, 호수공원이 생기자마자 세가 훅 올라서 빠져나왔다. 덕분에 완공된 호수공원을 한 동안은 품고 살 수 있었다. 뛰는 걸 안 좋아했지만, 왠지 그 호수 앞에서는 뛰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몇 번 뛰어봤다. 그러다 보니 뜀박질이 조금 늘었다. 그래서 호수공원에서 커낼웨이를 따라 생긴 길을 을 땀 흘리며 뛰었던 기억이 아주 좋았다.


내가 사는 처인구에는 경안천이라고 불리는 꽤 아름다운 하천이 흐른다. 바로 우리 집 옆으로. 하천 옆으로 제법 달리기 코스와 자전거 코스가 잘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로 이곳을 뛰는 사람들은 적다. 경안천에 비해 그 차이가 보여주는 어떠한 지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안천러닝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이자면 천변을 뛰다 보면 간혹 진짜 잘 뛰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SUB3는 거뜬히 달성할 것 같은. 그들에게 경안천은 마치 어떤 마라톤 대회를 향해 가는 데 있어 지나갈 훈련코스처럼 보였다. 사실 난 그리 사회관계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아이러니컬하게 경안천을 뛰며 내가 점점 더 많이 가지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코스를 즐겨 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을까이다. 이곳에도 러닝클럽들이 생겨 한껏 즐겁게 경안천을 뛰고, 그 아름다운 경치를 누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조금은 먼 상상을 하며 경안천을 뛴다.



지금도 여전히 뜀박질은 어렵다. 발엔 커다란 티눈이 달릴 때마다 아우성이고, 한동안 몸이 최고 몸무게를 찍었어서 조금만 뛰어도 헐떡댔다. 심각하게. 테니스를 시작하고, 아내와 함께 식단을 조절하며 감량이 조금 되고 나니 그제야 다시 뛸 수 있게 됨을 실감하고 감사해하고 있다.



내가 뛰기 시작하니 우리 공동체에도 함께 뛰자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과 건강을 유지하는 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고, 그렇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배도 나오고 인품 좋아 보이는, 안 선생 같은 이미지의 목사님도 좋지만, 아직 나의 청년 시절은 건강을 유지하며 함께 뛰고, 함께 몸을 움직이고, 땀 흘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인 것이 좀 더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바버샵 애프터선데이클럽에서 내 예약을 기다리며 읽었던 무라카미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던 것도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어쩜 나도 생각했던 그 찰나의 경험들을 이렇게 담담하고도 수려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다가 달리기가 그의 삶에 준 변화를 경이롭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동경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위해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것은 나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것은 grand-gesture라고 표현했다. 마치 날것의 기안 84의 달리기처럼 아무 옷이나 신발을 휘뚜루마뚜루 걸치고 뛰어본 경험자로서, 그렇게 신발을 해 먹고, 땀에 젖어서 우스꽝스럽게 시스루 티셔츠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해 봤던 경험자로 할 수 있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한 구절을 소개하며,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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