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혈압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신체에 돌고 있는 혈액량이 모자라서 일수도 있고, 염증 반응으로 인한 전신 혈관의 확장 때문일 수도 있다. 승압제를 혈관에 투여한다. 혈압이 오르지 않아 승압제 용량을 올린다. 고용량의 승압제는 말초 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손과 발이 푸르죽죽해진다. 날마다 파란 부분이 커지지 않는지 확인하며 손과 발에 네임펜칠을 한다.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긴다.
산소포화도도 떨어진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산혈증이 생긴다. 숨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한다. 코로 산소를 공급하다... 기관 내 삽관까지 하게 된다. 인공호흡기를 적용한다. 호흡이 인공호흡기와 다툰다. 진정제를 사용한다. 가래를 스스로 뱉을 수 없어 주기적으로 흡인한다.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신장의 기능이 떨어져서다. 손과 발이 퉁퉁 붓기 시작한다. 24시간 투석 기계를 돌려 노폐물을 거른다. 필터를 갈고, 환자의 검사 수치에 따라 필요한 전해질을 투석백에 섞는다.
모든 노력에도 좋아지지 않는 환자가 있다. 이윽고 모니터에 빨간색 알람이 울린다. 정상치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나는 그 신호가 울리지 않도록 알람을 조정한다. 이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정상인보다 훨씬 낮거나 높은 수치다. 수축기 혈압이 70mmhg이거나, 심박동 수가 분당 150회씩 뛰는 사람이 정상은 아니다.
보호자에게 연락하여 임종기 면회를 한다. 의사와 면담을 한다.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한다. 나는 환자 앞으로 되어 있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오라고 보호자에게 말한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동의를 구할 수 없어서다.
마지막의 마지막. 심박동 수가 느려진다. 모니터 상에서 보이는 심전도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50회에서, 30회로, 10회로 떨어진다. 혈압은 이제 40mmhg 정도다. 몸은 전체적으로 푸르게 변한다. 내일 약은 필요 없어진 것 같아 반납한다. 약 반납 종이에 望 도장을 찍는다. 심전도가 평평해진다. 의사에게 연락한다. 보호자가 들어오고, 의사는 사망 선언을 한다. 사실 죽은 시간은 조금 더 전이다. 보호자에게 장례식장은 어디가 좋겠냐고 물어본다. 보험 회사에 연락하여 진단서가 몇 부 필요한 지 알아보라고도 덧붙인다. 환자의 모든 관을 제거한다. 제거한 관에서는 피와 고름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나온다. 그곳에 드레싱을 한다. 천으로 몸과 얼굴을 감싼다. 시체는 장례식장으로 간다.
...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의 보호자로 병원에 갔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각종 관을 넣는 것에 동의하냐고 의사가 물어봤을 때. 부작용이 있으며,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술을 진행하겠냐는 말을 들었을 때. 알겠다고 할 때. 처음 면회를 갔을 때. 간신히 눈만 뜨고 있는 환자를 볼 때. 대답하지 못하는 입과, 가까스로 손을 움직이는 모습, 총기 없는 눈을 볼 때. 꽂혀 있는 튜브의 개수를 세고 있을 때. 아무것도 모른 채 괜찮을 거라고, 파이팅이라고 웃어 보일 때. 곧 있으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애써 안심시켜 주고 있을 때.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출근길 들어가는 병원을 볼 때. 갑자기 저녁이나 밤에 병원에서 전화가 올 때. 가슴을 쓸어내릴 때. 주치의와 면담할 때. 예후가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족관계증명서를 병원 근처 PC방에서 출력할 때.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엇에 대한 마음의 준비인 지 따로 캐묻지 않았지만 어떤 준비인지 알고 있을 때. 거기다 대고 제발 살려 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지 못했을 때. 그게 어떻게 준비가 되겠느냐고, 준비하면 뭘 하겠냐고 소리치지 못했을 때.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체액과, 이불의 핏자국과, 시트에 덩그러니 있는 실린지, 말라버린 알코올솜, 부종이 잔뜩 생긴 몸과,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는 얼굴을 마주할 때. 그제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병원 로비의 의자가 몇 시간 동안 앉아있기에는 불편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화기의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을 때. 결국 그 순간이 왔을 때. 멍해질 때. 정신을 차리고 가족들에게 전화할 때. 덩그러니 놓여있는, 반응 없는 그를 봤을 때. 장례식장을 결정할 때. 그제야 나는 알아차린다.
장례식장의 자리는 비용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할 때 죄책감이 든다.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무엇을 세고 있을 때, 나에게 진절머리가 난다. 평생 울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의 눈물을 본다. 마음의 준비는 하면 할수록 모자라며, 빈자리는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부글대는 마음을 달래기도, 다른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터져 나오는 기침을 하듯이 운다.
나는 한동안 좋은 간호사라 믿어왔는데, 그냥 잘하는 척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순간들은 내가 아는 죽음의 과정이 아니었다. 나는 알량한 지식과 익숙해진 행동으로 나는 아는 척하고 있었다. 손과 발을 휘적거리면서 일을 했다. 회의적이고 사무적인 태도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덧붙인다.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보고 듣고 겪어도 아직도 나는죽음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