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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니까요

by 재홍

방콕 여행 출국 전 마지막 코스는 '아유타야 선셋 투어'였습니다. 투어 버스 안에는 저와 같은 한국인 여행객들로 가득했습니다. 초콜릿색으로 멋지게 탄 피부를 가진 가이드 선생님은 자신을 '초코우유'라며 재치 있게 소개하셔서 유쾌한 출발이 되었죠. 태국의 풍경 속에서 한국어가 끊임없이 들려오자 편안했습니다. 다만 마음속 귀퉁이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하게 되는 미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방문지였던 왓 야이차이몽콜은 웅장한 크기의 사리탑과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와불상이 인상적인 곳이었습니다.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저마다 경건한 표정으로 가이드님의 제안에 따라 '기도하는 포즈'를 취하며 불상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치 단체 불교 캠프에 온 듯한 풍경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머리를 박박 깎고 성지를 순례하는 수도승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손바닥을 서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왓 마하탓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저를 맞았습니다. 이곳은 머리 없는 불상들로 가득했는데, 미얀마의 침략 당시 도굴꾼들이 불상 속 보물을 찾기 위해 목을 잘라 버렸던 흔적이라고 가르쳐주셨죠. 불상들은 나라가 망하자 스스로 목을 맨 충신들의 모습 같기도 했습니다. 풍경은 망해버린 나라의 조용한 정적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위로는 유난히 화창하고 푸르른 태국의 하늘이 대조적으로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야시장에 들러 요기를 했습니다. 태국어로 수박주스인 '땡모반'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코스죠. 시원하고 달콤한 수박 주스를 한 모금 마시자 절로 "태국 과일은 달라!" 소리가 나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하도 태국의 과일에 대해 칭송하여 한국의 과일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라고 했거든요.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해 땡모반 외에 다른 음식들을 맛볼 여유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여섯 시쯤 되자 보트를 타고 강으로 나가 일몰을 감상할 예정이었습니다. 출렁이는 파도 위 보트에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하늘은 무심한 얼굴로 구름 가득한 표정을 내비치더라고요. 일몰은 아쉽게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둡고 탁한 하늘빛이 마치 제 마음 같았어요. 그래도 해가 잘 보이지 않아 덜 덥구나, 하며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강 위에서 윤슬이 반짝이는 화려한 일몰 대신 구름 아래 본연의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일몰을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마무리된 아유타야 투어는 어쩌면 '실수하는 여행'의 완벽한 결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여행에서만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 속에서도 수많은 계획들이 틀어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부딪히곤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막힌 곳을 둘러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기대하지 않았던 음식점에서 먹은 의외로 맛있는 음식을 통해 마음이 환기되는 것처럼, 삶과 여행은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풍부한 의미를 찾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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