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오래 경사스럽기를

by 재홍

대학로가 궁세권인 이유, 창경궁입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는 걸어서 15분 남짓, 버스를 타면 정류장 바로 앞에 내릴 수 있는데요. 저는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는 창경궁의 존재를 거의 몰랐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같은 대표 궁궐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근처에 살면서 계절을 바꿔 여러 번 드나들다 보니 대표 궁궐의 '웅장함' 과는 다른 매력이 느껴졌습니다.


창경궁(昌慶宮)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성대한 경사'를 뜻한다고 합니다. 원래 세종대왕이 상왕 태종을 기리며 지었던 수강궁 터였는데,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이 자리를 크게 넓히면서 1483년에 궁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꿨습니다. 시작부터 나라의 상징을 새로 세우는 이야기라기보다, 왕실 어른을 모시는 집을 손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름에 들어가는 '경사 경' 한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입니다.


창경궁의 대문은 '홍화문'인데,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입니다. 영조 때는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에 백성을 만나는 곳이기도 했고, 정조는 대문 앞에서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쌀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옥천교(왼쪽), 명정전(오른쪽)


창경궁에는 사도 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가 있던 ‘문정전’을 비롯하여 많은 장소가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춘당지와 대온실입니다. 춘당지(春塘池)는 현재 두 개의 연못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본래의 춘당지 앞쪽 큰 연못은 원래 왕이 몸소 농사짓는 의식을 행했던 내농포가 있었던 곳입니다. 왕이 직접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논을 가는 시범을 보임으로써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할 때 이 자리에 연못을 파서 유원지로 만들었습니다. 동물원과 놀이기구를 짓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꿔 버리죠. 이때 대온실도 같이 지어집니다. 울적한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목 상의 이유였습니다. 이후 일반 서민에게도 출입이 가능해지며 폭발적인 관심을 얻게 됩니다.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으며 암표상이 들어서기도 했다네요.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큰 춘당지, 작은 춘당지, 밤의 대온실
과거 창경원 입구의 모습

독립 이후 1983년 12월 일반인의 출입 및 관람을 중단하고 일제가 뿌려놓은 잔재들과 일본식 건물 및 정원 등을 철거합니다. 사료에 따라 당시 남아 있던 전각과 편전들을 복원한 끝에 1986년 다시 일반 서민에게 개방됩니다. 지금도 복원 작업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창경궁은 굴곡진 시간을 겪었습니다. 왕실의 효심으로 지어져 백성의 배고픔을 달래던 곳이, 한때는 유원지로 격하되었다가 이제는 도심 속에 휴식을 주는 공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성대한 경사'라는 이름은 어쩌면 화려한 잔치가 아니라, 모진 풍파를 견디고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다양한 계절의 빛깔을 나누어 주는 지금의 평온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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