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피아노를 친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조금씩 연습한다. 내가 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파동 치는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 아홉 살 동네 피아노학원에서 시작했다. 소질이 있다고 전공을 하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개인레슨을 받았지만 중 3 때 결국 그만 두었다. 그 후 혼자 이곡 저곡 전전하며 놀이삼아 쳤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 20년 넘게 피아노를 배우고 연습하며 몇 가지 삶의 지혜 얻게 되었다. 그것은 피아노 연습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첫째, 적절하게 힘 빼기. 잘하려고 애쓰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다. 어려운 악절을 연습할 때 처음엔 힘이 많이 들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빼려면 결국 제대로 된 방법으로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 여기서 ‘제대로 된 방법’이 중요하다. 컴퓨터처럼 제대로 된 값을 입력해야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잘못된 방법으로 연습해서 몸에 익숙해지면 반복된 실수로 이어지고, 그것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고쳐나가는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든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이 여기에 가차 없이 적용된다.
20여 년 전 베를린에 이사 와서 다니게 된 교회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부럽고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그 친구 최고연주자 교육 과정 연주회를 따라 다녔다. 친구는 그 과정을 졸업하고 피아노교수법을 더 공부했다. 그때 가르칠 학생이 필요했던 친구는 나에게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워보겠냐고 물었다. 물론 좋은 기회였고, 그때부터 나의 본격적 취미활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환상의 나’와 ‘현실의 나’가 다른 인지 부조화를 견뎌야 했다.
나는 웬만한 곡은 악보를 보고 칠 수 있는 수준이었고, 어느 정도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그건 내 상상에 불과했다는 현실에 마주해야했다. 그때부터 거의 초보수준으로 돌아가 운지법부터 바꿔나가야 했는데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잘못된 습관을 버리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너무 많았다. 집에 있는 디지털 피아노를 갖고 연습했었는데 디지털 피아노는 연습을 해도 효과가 없는 물건이었다. 무언가 제대로 배우려면 나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편치 않은 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나와 현실 속의 나란 존재가 일치하지 않아 힘든 과정을 겪어야 내 것이 아닌 실력을 겨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둘째, 피아노를 치면서 내가 내는 소리, 내가 움직이는 동작을 제 3자의 모드로 듣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내가 의도하는 행동과 실제 나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매번 실감한다. 일상의 나도 그렇다. 내가 의도한 것과 결과 값이 항상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게 연습이고 수행이다. 피아노를 통해 알아차린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급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 내가 피아노를 박자에 맞춰 못 치는 만큼, 쉼표를 못 지키는 만큼, 급한 마음을 갖고 서두르며 살고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셋째 천천히 차근차근 하기. 이것도 내 급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진정시키는 좋은 수행이다. 피아노 연습은 나를 알아차리고 닦아가는 과정이다. 과도한 힘을 빼고 리듬을 박자에 맞추고 적절한 힘으로 강약을 조절하고 작곡가의 감정을 느끼며 나의 감정을 담는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자기 변화를 위한 피아노 연습>에서 이렇게 말한다. ‘생산적인 연습은 자기 통합을 촉진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