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Op 16 의 추억

by 유유


5년 전 어떤 피아니스트 최애곡 소개 영상을 봤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에 수록된 곡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였다. 가끔 무심코 들었는데 변화가 많고 복잡해서 듣기 거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유명 피아니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니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비하인드스토리에 문학이 있었다. 슈만(1810-1856)이 ETA 호프만(1776-1822)의 소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을 읽고 나흘 만에 완성한 곡이라고 한다. 게다가 클라라와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 그녀에게 바치려고 쓴 곡이다. 그의 사랑과 열정이 담긴 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특기할 점은 서로의 음악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던 동갑내기 슈만과 쇼팽이 사랑에 빠졌던 28세에 그들의 걸작이 나왔다는 점이다. 슈만은 <크라이슬레리아나> 악보 앞에 쇼팽에게 헌정한다고 덧붙였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너무 궁금해졌다. 배워보기로 했다. 곡 이해를 위해 ETA 호프만의 소설<수고양이와 무르의 인생관>도 읽었다. 여러 분야 공부를 입체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헌데 곡이 너무 어려워서 내 수준으로 치기 힘들었다, 마침 피아노 선생님이 귀국하는 바람에 새 선생님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새 선생님은 더 젊고 패기에 넘치는 사람이었다. 문제점 많던 내 결점을 인내심을 갖고 교정해 주셨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새로운 테크닉과 표현법, 꼼꼼하게 연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2년 뒤 30분짜리 프로그램인 전곡을 암보하고 무대에 올랐다. 물론 내 기대와 달리 실수 연발이어서 아쉬웠다.


ETA 호프만 (1776-1822)

호프만은 환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이상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딱 맞았다. 낭만주의 시절 독일 소설가지만 직업은 판사였다. 판사라서 이런저런 재판을 하면 기이한 사건을 많이 접해서 이야기 소재도 많았을 것 같다. 그는 소설을 쓰는 법관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소질도 있었는지 작곡도 남겼다고 한다. 크라이슬러는 아마 호프만이 꿈꿨던 예술적 자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슈만도 크라이슬러에서 예술가 자아로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크라이슬레리아나 (Kreisleriana)>

<크라이슬레리아나>에 붙는 ‘iana‘는 라틴어 어미로 ’대하여‘라는 뜻이다. 즉 ’크라이슬러‘에 대하여’ 라는 뜻이다. <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에 나오는 주인공은 음악가 크라이슬러다. 슈만은 이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한 것 같다. 크라이슬러는 30대 초반쯤 되는 궁중음악단장인데 괴짜 천재 예술가다. 물론 또 다른 주인공은 제목처럼 수고양이 무르(Murr)다. 그는 다른 독일 동화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의 손자라고 설정해 놓았다. 그래서 인간을 따라하며 말도 하고 글도 쓴다. 이 고양이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설정부터 웃음을 유발한다. 출판사에 원고 두 가지가 섞이는 바람에 잘못 출판되는 사단이 났다. 인간 세상을 고양이 시점으로 바라보는 해학적 이야기와 음악가 크라이슬러가 궁중에서 공주와 공주 친구 율리아와 만나며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나온다. 물론 고양이 무르 주인은 좀 나이든 음악가인데 또 다른 주인공 크라이슬러가 이 집을 드나들며 고양이 주인과 교류하고 있다. 음악도 소설의 구성을 본 땄다, 8개 소품들은 빠른 템포의 격정적이거나 변덕스러운 곡 다음 서정적이고 약간 느린 템포의 곡을 번갈아 편집해 놓았다.

한편 슈만은 음악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오이제비우스와 플로리스탄이라는 두 필명을 번갈아 썼다. <크라이슬레리아나>도 이 서로 다른 성격의 곡들이 차례로 나온다. 오이제비우스는 명상적이고 내성적이고, 플로레스탄은 격정적인 성격이다. 결국 정신분열로 삶을 마감했던 슈만의 내면을 음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다층적 상상의 기쁨

이 곡을 연습하는 과정은 고통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 속 그때 그 사람들의 감정과 소설 속 이야기와 함께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고양이가 깡충깡충 뛰는 것처럼 표현된 5번은 연주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가 호프만의 삶, 고양이의 삶, 인간이라는 존재, 슈만과 클라라가 살던 시대를 모두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특히 고양이 나오는 부분은 글쓰기를 갈망하는 작가를 풍자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인간이 글쓰는 고양이를 보며 웃긴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신이 글쓰기를 갈망하는 인간을 보며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것을 상상한 건 아닐까. 산으로 가는 엉뚱한 내용도 있지만 그 시대에 나온 소설치고 매우 모던하다. 구성도 그렇고 주인공 캐릭터도 그렇다. 크라이슬러가 사랑하는 율리아가 노래할 때, 음악이 어떻게 그 순간에 청중과 연주자 모두를 하나로 묶는지를 표현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예술가라는 존재, 특히 낭만주의 예술가 에고는 연구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주제다.


이곡을 공부하며 나에게 남은 가장 큰 수확은? 처음에 별로였던 이곡이 결국 나에게도 좋아하는 곡 리스트에 올랐다. 어떤 곡은 쳐봐야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나 보다.


끝: 2513자 (공백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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