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토끼인가 봐. 추운데 어떡하지?” 남편과 강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 하얀 토끼가 화단모서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우리가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때는 3월 중순. 꽃샘추위라 차가운 날씨인데 애완용 토끼 한 마리가 우울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냥 뒀다간 얼어 죽겠다. 집에 데려갔다가 동물 보호소로 보내자.” 처음엔 거실에 종이박스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고, 무슨 먹이를 줘야 할지 몰라 당근을 줬다. 그때 처음 알았다. 당근이 토끼한테 좋은 음식이 아니라는 걸. 토끼는 동글동글하고 딱딱한 똥 대신 묽은 똥을 쌌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토끼에겐 건초를 줘야 건강하게 오래 산단다.
다음날 당장 동물사료마트로 달려갔다. 거기엔 토끼가 좋아한다는 간식들도 있었다. 토끼 건강에는 안 좋지만 토끼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군것질거리였다. 토끼는 그중 말린 바나나를 가장 좋아했다. 첫 두 주일은 토끼의 무척 수줍어하며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웅크린 채로만 있었다. 토끼를 키우고 싶진 않았다. 빨리 동물보호소에 데려다 주고 싶었는데, 때마침 거의 3주 넘게 전철과 지하철 파업을 하고 있었다. 차가 없는 우리의 교통수단은 대중교통인데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정이 들어버렸다.
독일인 남편은 이름으로 토끼가 좋다면서 그냥 ‘토끼’라고 부르자고 했다. 남편이 어디선가 토끼장을 구해왔다. 토끼는 꽤 넓은 자기 집이 생기니 무척 좋아했다. 토끼가 기뻐서 재주넘는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기쁨의 뜀박질을 하는데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후 우리는 2주마다 한 번씩 환상적인 뜀박질 묘기를 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토끼장을 청소해 줄 때였다. 토끼는 깨끗하고 정갈한 환경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앞발에 침을 묻혀 얼굴부터 자기 몸을 구석구석 닦고, 앞발로 큰 귀를 잡고 닦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동물사료가게 쇼우 윈도우에 있는 토끼들을 보아도 하는 기본적인 몸짓은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알레르기 때문에 쉬지 않고 백번씩 재채기를 하거나 내가 남편과 큰소리로 싸우면 토끼는 뒷발을 쿵 구르며 신경질을 부렸다. 우리는 싸우다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겸연쩍게 웃으며 다툼은 싱겁게 끝났다.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인터넷 카페 ‘얼토당토’에 가입해서 토끼에 대해 공부하고 토끼와 함께 지내는 동안 얘가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토끼는 편안하고 기분이 좋으면 몸을 길게 펴고 쉰다. 토끼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리고 가만히 앉아 있다.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에너지 충전하는 시간이 꽤 길다. 우리는 2년 정도 토끼와 같이 살며 많은 것을 주고받으며 살았다.
결국 우리 토끼는 우리가 한국 방문을 하는 동안 토끼를 맡긴 집에서 죽었다. 토끼를 맡아준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고, 토끼에게도 미안했다. 거의 3개월은 저녁마다 밥 먹다 생각나서 “토끼야”하고 조금 울다가 밥을 계속 먹곤 했다. 토끼가 죽은 다음 청소를 하다 토끼 똥을 발견하고 통곡했다. 그리고 그 똥은 상자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
토끼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 꽤 된다. 쇼우 윈도우 토끼들과 우리 토끼를 비교하면서 우리 토끼가 하는 행동 패턴을 다른 토끼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의 패턴도 내 잘못이 아니라 내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더 이상 나를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더도 덜도 아닌 그냥 인간일 뿐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고기를 함부로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고기를 점점 덜 먹게 되었다. 다른 동물들도 우리 토끼와 같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느끼는(!) 존재라는 걸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이번 주제가 ‘가족’이라는데 나는 우리 토끼에 대해 한번 써보고 싶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토끼가 우리 가족이었던 것 같아?” “그럼, 가족이지. 우리가 먹을 것도 구해주고, 청소해 주고 돌봐줬잖아. 우리 집에 사는 거미하곤 다르지.”라고 말하는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토끼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거의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토끼의 추억을 나눈다. 토끼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내가 너무 의인화해서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토끼는 그냥 토끼일 뿐이었겠지만 가족이란 게 별건가. 그냥 같이 있어주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면 된다. 그게 토끼든지 사람이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