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하면 쇼팽이겠지만 나는 그의 음악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이 감미롭다고 하는 선율과 화음의 구성이 일깨우는 직접적인 감정들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 악구들은 까다롭고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절제미가 부족하다며 나 혼자 재단했다. 수많은 음악애호가와 전문가가 사랑하는 쇼팽을 나 혼자 몰래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를 배우다 보면 우연히 더 자주 만나는 곡들이 있다. 나에게 쇼팽 프렐류드가 그런 경우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7번은 피아노를 조금 배우면 곧 칠 수 있을 만큼 쉽다. 또 가장 유명하고 악보보기 난이도도 높지 않은 15번 ‘빗방울 전주곡’은 유행가처럼 가끔 악보를 꺼내 재미로 쳐봤다. 나중에 선생님들이 골라 준 곡들로 더 늘었다. 치다보니 격정적인 16번이 나의 성정과 많이 닮아 있었고, 시냇물이 흐르는 것 같은 G장조 3번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렇게 한 곡씩 배우다 보니 프렐류드 24개 중 반을 쳤다.
그러다 몇 년 전 피아노 선생님의 권유로 아예 24곡 전곡 치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새로운 곡을 배워 연습을 하는 것 보다 이미 쳤던 곡들을 연습해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시간도 절약하고 가성비도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듣고 쳐 본 쇼팽 곡들 중 가장 완성도와 깊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 곡의 탄생 배경을 알게 되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쇼팽(1810-1849)과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1804-1876)가 가까워진 직후(1838년12월-1839년 2월) 스페인 마요르카로 갔다. 당시 이혼녀였던 조루주 상드의 어린 아들 딸도 동행했다. 그 곳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며 조루주 상드는 마르요카의 관광계에 길이 남을 여행기를 썼고, 쇼팽은 불후의 명작 Opus 28번 24개의 전주곡을 남겼다. ‘전주곡’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프렐류드는 바흐의 평균율(Wohltemperiertes Klavier)에서 따온 것 같다. 쇼팽은 평생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암보하여 칠 만큼 바흐의 곡을 사랑했다고 한다. 바흐 평균율은 엄격한 대위법으로 작곡된 푸가와 푸가보다 쉽고 짧은 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C장조에서 시작해서 모든 조성을 다루는 24개의 곡은 각각 전주곡과 푸가로 되어 있다. 쇼팽은 곡 구성에서 푸가는 빼고 전주곡으로만 구성했다.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조와 단조 모든 조성에서 모든 감정의 결을 체험할 수 있다.
쇼팽과 상드가 지상 낙원일 줄 기대하고 갔을 마르요카 생활이 녹록했던 것 같진 않다. 정식 부부가 아니었던 이 두 사람을 반겨줄 숙소는 없었다. 결국 머물게 된 곳은 춥고 습한 수도원이었다. 상드는 병약한 쇼팽 때문에 침대 머리맡 간호로 바빴다고 한다. 상드는 자서전에서 쇼팽의 프렐류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어떤 곡들은 죽은 수도사들의 형상과 그들이 부르는 장송곡이 연상된다. 또 어떤 곡은 들으면 달콤한 우수의 감정을 일으킨다. 또 어떤 곡은 우리 귀를 매혹시키는 깊은 슬픔의 곡은 심장이 저미게 한다.”
아이들과 외출 나갔다가 폭우로 길이 막혀 구사일생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된 날, 쇼팽이 걱정 때문에 피아노 앞에서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사건은 15번 ‘빗방울 전주곡’의 유명한 일화다. 프렐류드 곡 하나하나 깊이 알게 되면서 쇼팽이라는 사람, 그와 함께 했던 조루주 상드를 상상한다. 29세에 사랑에 빠진 청년 쇼팽의 격정, 열정, 순수, 설렘의 순간을 조금씩 알아간다. 내가 쇼팽 피아노곡을 모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프렐류드 24곡 중에서도 호불호가 있긴 하지만, 보석같이 박제 되어 각 연주자의 소리로 다시 생명을 얻는, 그 감정의 순간들. 쇼팽의 기쁘고 슬펐던 상황과 나의 상황이 중첩되는 기묘한 감정을 바라본다. 옛 사람의 감성이 현재의 나에게 까지 전달될 수 있다니, 이래서 고전음악이라고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