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이방인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제도권 밖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 곡선은 나이가 들면서 햐향곡선을 그리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 본 적은 없다.
제도권 밖을 벗어나 본 적 없다는 건 나는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음을 뜻하기도 하다.
고등학교까지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학하였고 그 후엔 내 역량에 따라 소속되는 조직이 결정되었다.
나는 늘 어딘가에 속해 있었으나, 단 한순간도 그곳에 섞이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사회성이 부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게임의 판을 읽듯, 그 안에서 어떻게 해야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명징한 이해가 나를 얼음으로 만들었다.
뻔히 보이는 위선의 문장들을 내 입으로 뱉어야 할 때, 나는 주문에 걸린 듯 마비되었다.
여성성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안주하기엔 내 사유가 너무나 건조했고, 남성들의 치열한 전장(戰場)에 뛰어들기엔 내 육신과 의지는 그토록 강인하지 않았다.
무표정이라는 가면으로 경직된 자아를 감추려 애썼으나, 그 서늘한 거리감은 결국 나를 무리 밖으로 밀어내는 축출의 명분이 되었다.
나에게 관계란 타인의 언어를 내 방식으로 해독해야 하는 고된 '번역'의 과정이었고, 그 끝에 남는 것은 본질에 닿지 못한 위선에 대한 피로뿐이었다.
본질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본질에 닿지 못한 모든 위선적 행위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내가 목격한 위선은 지위와 역량의 불일치, 그리고 정직한 노력이 배신당하는 모든 비논리적 풍경을 포함한다.
내 인생이 걸린 무대인데 정작 나는 객석에 앉아 타인들의 연극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 관조적 거리는 결국 나를 무대에서 완전히 밀어내고 말았다.
나는 어떤 본질에 닿고 싶었던 걸까. 그 질문은 내 욕망의 밑바닥을 응시하게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감당할 역량이 내게 있는가.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것도 결단하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이 순간 성실히 살아내는 이들을 비웃을 자격이 내게 있는가.
대기업 '과장/차장', 가정의 '아내/엄마'라는 사회가 무대 위에 올려놓은 역할 말고 그 모든 수식어를 떼어냈을 때 남는 '순수한 단독자'로서의 나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