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 없는 공포는 무력하다"

by Maximilien Robespier

by 조의 사유 공간



로베스피에르에게 공포는 혁명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도구'였으나, 그것은 결국 그의 목에 칼날을 드리웠다.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던 '공포(Terreur)'는 서늘한 긴장감과 숭고한 질서를 전제로 하였다.

그는 평생을 금욕주의자로 살았고 많은 이들을 처형했을지언정 그것이 공화주의에 대한 맹종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은 상대를 압도하였고 위압적이었다.

테미도르 반동으로 공포는 사라졌지만 공화주의의 열망 또한 사라졌다. 즉 공포와 가치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의 통치 방식에 동의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에게서 지독한 미학적 쾌감을 느낀다.

그의 공포는 덕성과 행위의 일체에서 기인한 압도적 권위였으나, 현대의 공포는 미약한 것들이 부리는 부당한 고집, 즉 짜증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협박에는 수호해야 할 숭고한 가치가 결여되어 있다. 남은 것은 오직 비루한 생존 본능뿐이다.

그 짜증이 사라진다고 하여 무슨 가치가 사라지겠는가?


이것은 미학적 불균형에서 오는 불쾌감이다.

자신이 가진 그릇(역량)과 내면의 밀도(덕성)는 텅 비어 있는데, 세상으로부터 얻어내고 싶은 보상(욕망)만 비대하게 부풀려진 상태.

그를 메꾸기 위해 선택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협박'과 '소음'뿐이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악함'이 아니라 '미학적 비대칭'이다.

자신의 덕성과 역량은 한 뼘도 되지 않으면서, 그보다 수만 배 비대한 욕망을 짊어진 자들의 기괴한 행태를 목격할 때 나는 지독한 짜증을 느낀다.


이 부조리함에 나는 또다시 방관적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아한 고립이 될 수도 있고 무질서한 세계에서 나만의 형벌이기도 하다.

그들은 살기 위해 짖어대지만, 나 또한 나를 지키기 위해 침묵한다.


그럼에도 현재에 느끼는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이 또한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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