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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an 14. 2023

배우 이주화 가족의 '유럽자동차여행'(7)

멀어져야 알 수 있다

좋은 건 가까이에 있다.

10년 전, 신혼여행지는 미국 하와이였다. 일주일 동안 여러 곳을 구경 다녔는데, 정작 호텔 앞에 있는 호놀룰루 비치를 거닐지 못했다.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느라 우리가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보지 못했다.


필리핀 세부에 가족 여행을 갔을 때도 리조트 앞의 바닷가는 가장 마지막 날에 구경했다.

많은 것을 봐야 좋은 여행은 아니다. 그리고 정작 좋은 건, 가장 가까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눈앞에 놓인 곳을 먼저 두 발로 확인하기로 했다.

노트에 손글씨로 메모하고 그림을 그려가며, 천천히 풍경을 담았다. 자유롭게 시간을 음미해야 여행은 오롯이 시작된다

마음이 가는 방식대로

프랑스 파리의 첫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서 숙소 앞 세느 강변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나브로 어둠이 내려앉은 강물은 뭔가 할 말이 많은 것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내 마음이 그랬던 걸까. 강물은 낮에 차 창문으로 본 것과는 다르게 마치 자신의 사연을 말하는 것처럼 슬픈 눈으로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이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따라 걸어가니 성탄트리처럼 빛나는 에펠탑이 보인다. 태양 아래 과묵하게 서 있던 모습과 어둠 속에서 광채를 드러낸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인다. 저녁에는 금빛 휘장을 두른 채, 반짝반짝 인사하며 손님을 반겼다.

우리는 에펠탑이 한눈에 들어오는 벤치에 앉았다. 딸아이는 가지고 온 점토로 에펠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행의 눈높이

여행 둘째 날. 우리는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첫째 날에 이어 걸어갈 수 있는 곳을 우선 다니기로 했다.


파리의 날씨는 회색 빛. 화창했던 어제와 또 다른 파리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어쩌면 맑게 개인 날씨보다 스산한 파리가 더 분위기 있게 다가온다.


뒷골목을 느끼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딸아이는 “엄마, 파리는 개똥과 새똥이 너무 많고 매연이랑 담배냄새가 심한 것 같다”며 표정을 찡그렸다. 내게 다가오는 파리와 딸아이가 느끼는 파리가 다르구나.


딸아이의 말을 들으며 이번 여행의 눈높이를 아이의 시선으로 맞춰보자는 생각을 해본다.

에펠탑의 일반적 정의.

30분 정도 걸어 거대한 철탑 앞에 도착했다. 에펠탑은 파리 남서부 7구에 위치한 유럽 최고의 랜드마크로 설계자 귀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땄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인 1899년에 파리만국박람회 기념으로 세워졌다. 무선 송신탑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최초로 라디오 전파 발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초창기에는 파리와 어울리지 않아 ‘괴물’로 불렸고, 작가 모파상은 에펠탑 내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2억 명 이상이 찾은 최고의 명소가 됐다.

멀어질수록 알 수 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피사체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다. 그런데 대상을 객관화해서 보려면 반대로 한 발 물러나야 한다.


에펠탑은 높이 300m, 무게 7300톤의 육중한 몸체를 자랑한다. 가까이에서는 그 형태를 알기 힘들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 바라볼수록 알 수 있다.

이에나 다리를 건너 트로가데로 정원을 지나 사요 궁으로 올랐다. 에펠탑의 눈높이와 마주하자 비로소 파리 시내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서 있는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아~ 이 모습이 진짜 에펠탑이구나’

걷다 보면 나타난다.

누군가 그랬다. 파리에서는 걷다 보면 에펠탑이 나오고 또 걷다 보면 개선문이 나온다고. 사요 궁에서 에펠탑과 한참을 바라보고 길을 따라 걸어가니 저만치에서 개선문이 보였다.

그곳에서 잠시 쉬어갈 겸 점심을 먹었다. 휴대폰으로 개선문 맛집이라고 검색해 블로그 내용 중에 가장 위에 소개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휴대폰 검색창에 떠있는 그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와 햄버거 사진을 보여주고 그대로 주문했다. 누군가의 경험은 다른 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

식사를 하며 와인을 한 잔 마시니 파리가 조금씩 몸속으로 스며든다.


파리에서의 첫 외식을 마치고, 개선문에서 연결되는 샹젤리제 거리로 향했다. 기대하던 ‘오 샹젤리제(Les Champs Elysees)’ 노랫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흥겨운 분위기는 거리에 넘친다. 전 세계 인종의 용광로였다.

인생이 작은 퍼즐의 모음이라면, 그동안 그렇게 많이 보고 들었던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소중한 조각 하나가 맞춰지는 듯했다.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그리고 콩코드 광장까지 걸어간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파리시내는 지하철이 밀집해 있어 이용하기가 편리하다.

그런데 무탈해 보인 우리 가족의 파리 여행은 3일째, 첫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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