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서울 사람들을 보고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파리도 비슷해 보였다.
단편(斷片)으로 전체를 예단할 순 없지만, 차가움은 대도시 사람들의 피할 수 없는 성향인가 보다.
퐁네프 다리에서 나와 딸아이가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를 든 남편은 더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한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입 꼬리가 내려간 완고한 표정의 한 노인이 뒷걸음치는 남편을 손으로 밀고 지나갔다.
남편은 등에 닿은 그 손의 감촉이 “기분 나빴다”라고 했다. 남편은 “미안하다”라고 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적개심이 생겼다”라고 했다.
뒷걸음치는 사람의 머리 뒤에 눈이 달린 게 아니라면 앞으로 걸어가는 이가 살짝 피해 가는 게 평범한 상식이 아닐까.
자신의 개인 영역이 중요하면 다른 사람의 공간도 인정해줘야 한다. 노인은 옆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이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붐비는 마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조금 살이 오른 중년 여성이 자신이 지나가기 위해 물건을 고르기 위해 서 있던 나를 손으로 밀고 지나갔다. 조금 기다려주는 배려가 없어 아쉬웠는데,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주의자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만큼 서늘했다.
반면 따뜻한 파리도 경험했다. 도시의 야경을 보기 위해 몽마르트르 언덕을 올랐는데, 정상에 있는 사크레 쾨르 성당에서 주일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 가족은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아 차분한 분위기를 느꼈다.
그리고 성당 내에 기념품점이 있어 들어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저것 살펴보던 딸아이가 마음에 드는 엽서가 있다고 해서, 주머니에 있던 10유로를 주었다.
그런데 엽서 가격은 50센트. 점원은 잔돈이 없어 10유로짜리 지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시무룩해진 딸아이가 돌아서자, 옆에 서 있던 젊은 여성이 점원을 향해 “내가 돈을 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갑에서 동전을 꺼냈다. 이마와 눈매가 동글동글했고 턱 선이 날렵한 흑인 여성이었다.
원하던 엽서를 우연히 선물로 받게 된 딸아이는 서울에서부터 챙겨 온 소중한(!) 초코 브라우니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 여성은 “괜찮다”라고 잠시 마다하다가, 아이의 마음을 읽었는지 곧 받아 들며 “고맙다”라고 활짝 웃었다. 점원도 나도, 그리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나만의 느낌이었는지 몰라도 기념품점의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고
-프리드리히 니체
그녀가 파리 사람이 아니라 관광객일지 모르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파리의 인상이 좋아졌다. 앞으로 그런 사람을 또 만나게 되면 사진을 찍고 싶다. 그 따뜻한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파리를 떠나 노르망디 지역의 몽생미셸에서는 벤치에 휴대폰을 두고 떠나자, 한쪽 다리가 불편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수 백 미터나 좇아와 돌려주었다. 지갑형 휴대폰 케이스에는 각종 카드와 현금이 들어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걸 몰랐는데, 만약 잃어버렸다면 가슴이 철렁할 일이었다. 생 말로에서는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유쾌한 목소리 톤의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 가족의 전체 사진을 찍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남편은 한국에서 외국 관광객이 여행책자를 펼치고 고민에 빠져 있으면 다가가 도와줄 게 없는지 물어보곤 했는데, 자신이 20대 초반에 배낭여행을 하며 받은 도움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