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평일 오후, 진하게 우려낸 커피 한잔으로 식곤증과 싸우는 중이었다. '드르륵~' 책상 위 핸드폰의 격한 진동은 무료한 오후 일과에 작은 'crack'을 만들어냈다. 무심히 핸드폰을 확인하니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했을 때,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두 눈은 번뜩 뜨였다. 하프마라톤 대회 골인지점 동영상이 업로드되었다는 소식이다.
'아~! 결승선에 CCTV 같은 게 있었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바로 문자에 있는 링크를 따라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며칠 전 아직 생생한 그 감동의 순간을 찍은 영상이라니! 한껏 부푼 기대로 동영상을 재생하고, 내가 들어왔던 2시간 지점으로 스크롤을 맞추었다. 조금 지나자 멀리서 달려오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근데 왜 뛰는 게 저 모양이지?'
기억 속 감격과 환희의 순간이 저런 모습이었다고? 팔은 앞뒤로 허우적대고, 다리는 경보 선수처럼 걷는 것인지 달리는 것인지 분간이 잘 안 되고, 또 왜 고개는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는 거야? 볼썽사나운 모습을 누군가에 들킬까 얼른 동영상을 꺼버린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조심스럽게 동영상을 재생했다. 다시 봐도 저 민망한 자세로 결승선을 뛰어들어오는 건 분명히 내가 맞다.
지칠 대로 지쳐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못났잖아!'
충격적이었다. '폼 하나에 죽고 살았던' 20대 시절은 지났지만, 저렇게 민망한 자세로 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날은 집에 오자마자 달리는 방법부터 검색을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영상과 마라톤 관련 자료들을 보다가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
'미드 풋 러닝(mid-foot running)'
발 뒤꿈치가 먼저 지면에 닿는 '힐 스트라이크(heel strike)' 주법과 달리 발바닥 전체를 사용해서 착지를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이 방식이 '힐 스트라이크' 보다 상대적으로 무릎에 부담을 덜 주어서 부상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지난번 하프코스 대회 내내 불편했던 무릎을 떠올리며 바로 달리는 폼을 수정해야겠다 결심했다.
며칠 후, '미드 풋 러닝'을 연습하기 위해 아파트 헬스장을 찾았다. 동영상을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은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실제로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쉽게 자세가 잡히지 않았다. 어딘가 동작은 어색했고, 팔과 다리는 계속 엇박자가 났다.
일단 신경을 발바닥에 집중하고 착지할 때 전해지는 압력을 느낀 후, 조금씩 그 압력이 발 앞쪽에 오도록 동작을 수정해나갔다. 무릎은 높게 들지 않아야 한다. 무릎은 약간 구부린 채 착지해야 한다. 착지를 한 뒤에는 힘차게 발을 뒤로 차올려야 한다. 벽에 있는 거울을 힐끗힐끗 보며 잘 안 되는 동작들을 고쳐나갔다. 달리면 달릴수록 동작은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달리는 템포를 올리자 어긋나기만 하던 박자들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동작이 매끄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착지할 때 느껴지는 무게중심의 위치, 그 순간의 적절한 무릎의 각도, 바닥을 밀어낼 때 느껴지는 탄력, 앞뒤로 흔드는 팔의 리듬감과 달리는 템포. 그 모든 느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렸다. 머리가 아니라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그 느낌을 기억할 수 있도록.
첫 연습은 7km 정도를 달릴 때까지 이어졌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새로운 방식에 익숙해졌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완전히 내 것이 될 것 같았고, 나에게 새로운 무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풀코스 마라톤 정복도 시간문제인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