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새벽의 도로를 차로 달리는 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다른 누군가의 속도에 나를 맞출 필요도 없고, 뒷차에게 쫓겨서 내달릴 필요도 없다. 조수석 아내와 나누는 대화는 특별히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어도 좋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시답잖은 이야기였겠지만, 대화는 즐겁게 이어졌다. 일요일 새벽 5시, 동탄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당장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한 먹구름 뒤로 새벽 여명은 숨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주위의 어둠은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가는 길 중간중간 차창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했지만, 막상 호수공원에 도착했을 때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이번이 2번째 LSD 훈련이다. (*LSD 훈련 : long slow distance training, 평소보다 느린 페이스로 가능한 길게 달리는 지구력 향상 훈련) 일주일 전에도 이곳에서 LSD 훈련을 했다. 가을에 춘천에서 열리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를 목표로, 조금씩 최대로 뛸 수 있는 거리를 늘려가려 한다. 최종 목표는 풀코스 마라톤이지만, 당장의 목표는 21.0975km보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뛰는 것이다. 하지만 첫 훈련에서는 처참하게도 9km를 달린 후 무릎 통증 때문에 중간에 달리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다시 같은 장소에 같은 목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호수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막한 공기 사이로 호수의 옅은 물안개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새들 소리만 간혹 들릴 뿐이다. 5월이지만 비가 내린 후라서 그런지 맨살에 닿는 새벽 공기는 싸늘했다. 각오를 다지기 위해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내뱉었다. 주변이 고요해서인지 여느 때보다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번에는 아닐 거야!'
지난주 훈련의 실패는 하프마라톤 대회 이후 부족했던 회복시간 탓으로 치부했고, 이번 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며 훈련을 시작했다.
호수를 따라서 한 바퀴를 돌면 정확히 2km이다. 한 바퀴를 돌고 스마트워치를 확인하니 딱 14분이 걸렸다. 7km/분. 워밍업을 위해 일부러 천천히 뛴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몸은 충분히 데워졌다. 속도를 올려보자!
양볼을 스치는 바람에서 속도감이 느껴지고, 경쾌하게 데크를 두드리는 발소리를 따라 심장 박동도 빨라진다. 속도를 체크해보니 5분/km였다. 이건 오버페이스다. 아니나 다를까 두 바퀴를 돌았을 때, 호흡은 흐트러졌고 다리도 무거워졌다. 페이스를 6분/km로 낮췄다. 재미는 없지만 편안함이 느껴지는 속도이다. 더 이상 속도 욕심은 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달리는 동작에서 다시 안정감이 느껴졌고, 호흡도 점차 진정되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러닝은 내가 원하는 만큼 계속되지 못했다. 예고 없이 9.5km 지점에서 무릎 통증이 찾아왔다. 상쾌한 새벽 공기를 음미하며 기분 좋게 달리고 있던 나는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닐 거야. 조금 더 달리면 통증이 사라질지도 몰라.'
참고 조금 더 달려보려 했지만, 뼛속까지 전해지는 통증에 저절로 다리는 멈춰버렸다. 무릎은 무언가로 찌르는 것처럼 쑤시고 아팠다.
'왜 이런 거지? 아직도 대회 후유증이 남아있나?'
안타깝지만 첫 번째 훈련과 똑같이 달리기를 중간에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왜 아픈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왠지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충분한 휴식을 가진 후 다시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일주일을 기다려 동탄호수공원에 갔다.
달리기 전 날씨 어플을 확인하니 비 소식은 없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이상하리만치 상쾌했다. 기상청의 정보보다는 내 주관적 느낌을 믿기로 했다. 미세먼지 수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큰 숨으로 새벽 공기를 흡입하며 달려 나갔다. 사전 준비는 어느 때보다도 철저했다. 식사량도 훈련강도도 이 날을 위해 며칠 동안 조절했고, 근육이 긴장하지 않도록 자기 전에 스트레칭도 열심히 해줬다. 열심히 준비한 덕인지 컨디션은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데크를 밀어내는 다리 근육에서 넘치는 힘이 느껴졌다.
'오늘은 확실히 뭔가 다른데...'
이번에야말로 다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10km를 넘길 때까지도 몸에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진 건가? 오늘은 20km를 달려볼까?'
하지만 생각이 방정이었을까? 11km를 넘기자마자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다. 오른쪽 다리는 곧 돌덩이처럼 굳어버렸고, 무릎은 디딜 때마다 쑤시고 아팠다. 아주 잠시 반복되는 무릎 통증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했었지만, 이번에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대가 컸던 만큼 어느 때보다도 씁쓸한 마음이 컸다.
6월의 첫 번째 날, 하프코스 마라톤 대회 이후 4번째 LSD 훈련이다.
3주간 달리기는 전혀 하지 않고 헬스장에서 하체운동과 스트레칭만을 반복했다. 이런 노력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아니면 그냥 삽질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지만, 인내심있게 기다렸다. 한 번에 모든 통증이 사라지리라는 허황된 기대는 버렸다. 다만, 3주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상태가 되어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젠장! 10.5km가 내가 달릴 수 있는 전부였다.
3주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다만 1km라도 지난번보다 더 달리고 싶다는 생각에 통증이 시작되었을 때, 아픈 다리를 쥐어짜듯 눌러가며 뭉친 근육을 풀어보고 다시 달리려 했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통증이 몰려왔다. 이번에는 길 위에 주저앉아 일단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달렸다. 그러나 역시나 아프다. 어떻게 해도 아프다.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무릎만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걸을 때도 통증이 느껴졌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통증은 계속 이어졌다. 뭔가 심각한 상황이 되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