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하체 운동은 괴로워!

by 제이식

#하체운동은 괴로워!


4번째 PT이다. 새로운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2주째, 이제 이곳에 들어설 때도 제법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먼저 수건 한 장을 챙겨서 목에 두르고 정수기 앞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천천히 비어있는 러닝머신이 있는지 확인한다. 아직 PT 시작까지는 10분 남은 상태, 남아있는 시간은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차가운 날씨 탓에 잔뜩 굳어버린 근육들을 풀어준다.


7시 정각, PT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다시 첫날 했던 하체운동으로 돌아왔다. 운동은 레그 익스텐션(leg extension)으로 시작한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운동은 준비운동이다. 메인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자극할 부위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것이라 했지만, 워밍업(warming-up)으로 하는 운동을 무려 5세트나 진행했다. 이미 내 허벅지는 가벼운 예열을 넘어서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예열(?)을 마친 후 지체 없이 메인 운동으로 들어간다. 메인 운동은 스쾃(squat)이다. 먼저 지난번에 배운 대로 동작을 해보지만, 자세가 영 나오지 않는다. 트레이너는 내가 짧은 종아리 근육을 가지고 있음을 눈치채고 발뒤꿈치를 높게 올릴 수 있도록 원판을 밑에 깔아주었다. 원판을 깔고 스쾃을 하니 훨씬 수월했다. 트레이너도 이제야 동작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는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음 단계는 빈 봉을 등에 짊어지고 하는 백 스쾃(back squat)이었다. 빈 봉이라고는 하지만 무게가 20kg이나 된다. 누군가에게는 깃털처럼 가벼운 무게일지 몰라도 처음으로 봉을 짊어지는 나에게는 만만치 않은 무게였다. 처음 앉았다가 일어나려 하는데 중심 잡기도 쉽지 않았다. 비틀비틀하면서 어찌어찌 10회를 채웠다. 하지만 슬슬 다리 근육의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흐읍~ 으짜짜짜~


전으로 한껏 기를 모으고 앉았다가 다시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오는걸 막을 수 없다. 민망한 소리를 내고 있지만 주위의 시선을 살필 겨를조차 없다. 한번 더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지만, "좋아요!"라고 뒤에서 외치는 트레이너의 눈빛을 보니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온몸에 기를 모아 다시 내려갔지만 일어설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무릎은 주춤거리기만 할 뿐 시원하게 펴지지 않았다. 그러자 트레이너가 뒤에서 정확히 부족한 만큼만 힘을 더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거친 숨을 정리하는 동안, 거울을 통해 등 뒤에 바싹 붙어 언제라도 나를 끌어올릴 준비를 하고 트레이너를 보았다. 이런 친절한 도움이 고맙기는 하지만, 사실 이런 도움보다는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인정사정없이 "한번 더!"를 외친다. '에라! 모르겠다!' 안될 것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내려간다. 역시나 다시 일어설 힘 따위는 없었다. 트레이너는 내가 이미 한계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자동으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1세트가 끝났다. 1세트만으로도 거의 탈진할 지경이었는데, 이 운동을 무려 3세트나 진행했다.


숨은 턱 밑까지 차오르고, 물을 마시려는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니 7시 30분이.

'세상에 아직도 20분이나 남았다고!'

이미 내 모든 걸 태운 듯했지만 아직도 PT가 끝나려면 멀었다. 몰래 긴 한숨을 쉬어보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트레이너는 다음 운동으로 이동하자고 한다.


다음 운동은 레그 프레스(leg press)였다. 먼저 트레이너가 중량을 세팅해준다.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20kg짜리 원판을 한쪽에 2개씩 총 4개를 꼽는다. 원판 무게만 80kg이다. 기구 무게까지 합하면 거의 100kg일 것이다. '이걸 밀어내야 한다고?' PT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두려움이란 걸 느꼈다.


"이거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보았다.


"네,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지금 너무 잘하고 계세요!"

트레이너는 나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려 했지만, 사실 나는 무게를 좀 빼주길 바라며 했던 말이다.


자세를 잡고 심호흡을 한다. 기를 모아 발판을 밀어내고 안전바를 내린다. 골반을 접어서 다리를 몸 쪽으로 당겼다가 다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며 발판을 밀어내야 한다. '저 육중한 원판들을 내가 밀어낼 수 있을까?' 잠시 의심했지만, 밀어냈다. "좋아요!" 트레이너의 환희에 찬 목소리를 듣고 다시 힘을 내서 발판을 밀어낸다. 방금 전까지 걷는 것조차 힘겨워했던 두 다리가 다시 한번 힘을 폭발시키며 육중한 원판들을 시원하게 밀어 올린다. 하지만 역시 10회가 넘어가자 다시 다리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정말 불난 다리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격이다. 허벅지는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달아올라 다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첫 세트를 마치고 1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근육통이 가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어떻게 다음 세트를 할지 막막한데, 트레이너가 대뜸 "좀 더 무게를 올려볼까요?" 하고 묻는다. 난 머리와 팔을 동시에 저으며 살라달라 애원했다. 다행히 무게는 올리지 않았지만, 다음 세트가 시작되었을 때는 반복 횟수 3회부터 엄청난 근육통이 밀려왔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대며, 빨리 이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오로지 다리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한 개 한 개 반복 횟수를 늘려갔다. 10회를 넘길 때는 의식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건 내 다리가 아닐 거야.'

극한의 근육통 앞에서 내 다리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고통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자 신기하게도 다리는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육중한 원판 더미를 끝까지 밀어낸 후 안전바를 다시 잡아당겼다. 사력을 다해 모든 세트를 끝낸 후 다시 시계를 보았다.


'이럴 수가! 아직도 10분이 남았다!'


마지막은 헬스장 복도를 걸어가는 워킹 런지(walking lunge)이다. 이미 나의 정신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다리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아갈 때마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짜 복도를 3번 왕복하고 드디어 PT가 끝이 났다.

트레이너는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으로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지옥과도 같은 하체운동이 끝났음을 알아차렸을 때, 안도감과 함께 엄청난 희열이 폭발했고, 나도 모르게 트레이너의 손을 향해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그리고 트레이너의 마지막 한마디,

"이제 유산소 운동 30분만 더 하고 가시면 될 거 같아요."


이런 아직 유산소가 남아있었다!



#헬(Hell) 스장


살아생전의 업보로 인해 영원히 고통받는 곳, 지옥(Hell).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보면 '지옥'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 원반과 덤벨이 바닥을 내리 찧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때리는 와중에 사방에서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난무하고 고통에 신음하다 참지 못하고 외마디 탄성을 질러댄다. 사람들의 표정은 고통에 짓눌린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거나 힘에 겨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무심한 표정들 뿐이다.


하지만 이곳을 탈출할 때 느끼는 희열의 크기는 언제나 이 공간 안에서 느낀 고통의 크기와 비례한다. 정말 아이러니하지만, 고통과 희열은 서로 등을 마주대고 있는 얇은 종이의 양면과도 같다.




#실패지점


웨이트 트레이닝(weight training)을 할 때 '실패지점'이란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자신의 한계에 다다라서 더 이상 운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말한다. 보통의 경우 '실패'라는 것은 피하거나 극복하고 싶은 대상이겠지만, 나에게 운동할 때만큼은 '실패지점'은 두렵거나 피하고 싶은 대상이 아니다.


반복 횟수가 더해질 때마다 근육의 고통은 점점 더 커지고, 타는 듯한 고통을 이겨내고 바벨과 덤벨을 들어 올리고 나면 그다음 아무리 용을 써도 바벨과 덤벨이 움직이지 않는 실패 지점이 찾아온다. 이때가 되면 근육들은 하얀 잿가루가 된 상태이다. 제대로 걷는 것조차 어렵고, 물을 마시려 들어 올린 팔은 부들부들 떨린다. 하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했음을 증명했기에 마음만은 뿌듯하다.


이렇게 '실패'를 반길 수 있다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웨이트 트레이닝의 묘미 중의 하나이다.




#춤추는 고래


나이가 쌓일수록 경력이 오래될수록 칭찬받는 일은 드물어졌다. 내가 하는 일들은 그 '나이' 혹은 그 '짬밥'이면 당연히 해내야 하는 것들, 해내지 못한다면 질책받아야 하는 것들로만 채워져 갔다.


그런데 요즘 헬스장을 다니면서 그토록 인색했던 '칭찬'이란 것을 받는 일이 많아졌다. 칭찬을 받기 위해 남들보다 잘할 필요도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밀고 당기기만 하면 트레이너가 아낌없이 칭찬을 해준다. 어제보다 5kg이라도 더 무거운 바벨을 들 수 있다면, 행여 못했더라도 애써서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칭찬은 어릴 적 나도, 지금의 나도, 그리고 고래도 춤추게 해 준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성장


언제부턴가 '성장'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왠지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았다. 어느덧 나이는 40대가 되었고,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도 16년이 지났다. 더 이상 새로운 것도 나아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문제, 언제나 비슷한 해법과 루틴.


망망대해에 갈 곳 없이 두둥실 떠가는 돛단배 같다고나 할까? 그저 흐르는 조류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가는 듯한 느낌. 하지만 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겨났다. 망망대해에서 보물섬을 발견한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나아가야 할 곳이 생긴 것이다. 더 이상 표류하지 않는다. 몸이 부서지더라도 도달하고 싶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리 뛰고, 조금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고, 한 개라도 더 반복 횟수를 늘려가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그리고 동시에 내일의 나에 대한 희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바벨에 한가득 원판을 끼워 넣고 마초처럼 운동하는 날이 오겠지? 권상우와 같은 가슴 근육과 비와 같은 등근육을 가질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겠지?

어쩌면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가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그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작지만 조금이라도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는 것, 나이가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이 내가 살아있음을, 뜨거운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고, 무한한 희열을,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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