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PT를 시작하다
퇴근할 때부터 잔뜩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지난 주말에 충동적으로 등록해버린 동네 헬스장에 처음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불편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 벌려놓은 일들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숙취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렸던 지난 토요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황금 같은 주말 중의 하루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허무하게 하루를 보낸 뒤 불현듯 위기감이 찾아왔다. 달리기를 멈추고 아파트 헬스장에 가는 횟수도 드물어졌다. 그 사이 아랫배는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평소에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비싼 PT비용, 사설 헬스장에 대한 낯섦 때문에 망설여왔던 PT를 받아보겠노라 결심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집 근처의 헬스장으로 달려가 3개월 헬스장 회원권과 20회 PT비용을 결제해 버렸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PT 수업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집에 오자마자 서둘러서 준비를 했다. 운동화와 샤워 도구를 챙겨서 집을 나선 후 10분 정도 걸어가면 헬스장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헬스장은 상가 건물 4층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낯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안쪽 벽에 붙어 있는 헬스장 광고 전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트레이너들의 프로필 사진과 함께 회원을 모집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트레이너들은 육체미를 뽐내며 시크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도 이런 몸을 가질 수 있어!' 이렇게 말하려는 것 같지만,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세상 속 사람들처럼 느껴져서 원래 의도와 달리 살짝 주눅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4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먼저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렸다. 내리면 바로 앞이 헬스장 입구이다. 주말에 와서 회원 등록할 때 와보긴 했지만 그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앞에서 주저주저하는 사이 뒤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헬스장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선다. 그 뒤를 이어서 쭈뼛쭈뼛 헬스장에 첫발을 들이밀었다. 침침한 조명 아래 시끄러운 음악소리. 마치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서는 사람들이 춤을 추는 대신 운동복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혹시 처음 오셨나요?"
카운터 근처에 있던 직원이 먼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 주었다.
"네. 오늘 처음 PT 수업받으러 왔는데요..."
"혹시 담당 트레이너님이 누구신지 아세요?"
"최....."
아차! 담당 트레이너 이름을 기억하고 왔어야 하는데 한번 들어본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 최 OO 트레이너님이요."
그제야 나도 손뼉을 마주치며 그분이 맞는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곧 담당 트레이너가 왔고, 먼저 헬스장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알려주었다. 락커는 어디에 있고, 탈의실은 어디인지, 옷장 문 비밀번호 어떻게 설정하는지 등등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헬스장 앞에 도착했을 때 트레이너는 먼저 inbody 검사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검사 결과는 바로 종이에 출력되어 나왔다. 출력된 결과를 보며 트레이너가 질문을 했다.
"혹시 전에 운동해 보신 적 있으세요?"
"PT는 처음인데요."
약간 동문서답이었지만, 트레이너는 찰떡 같이 알아듣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래도 운동을 조금 하셨나 봐요. 수치가 나쁘지 않은데요."
슬쩍 보니 키 176cm, 몸무게 76.6kg, 체지방률이 정확히 20%였다. 한참 달리기를 할 때 70kg에 체지방률 14.5%였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살짝 아쉬운 스탯이긴 했지만, 트레이너는 만족스럽다는 듯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본격적인 PT가 시작되었다. 트레이너는 나를 헬스장 안쪽으로 안내했다. 트레이너 뒤에 바짝 붙어서 어두침침한 헬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낯선 공간에 혼자 들어왔다면 한껏 위축되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겠지만, 트레이너와 함께 있으니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트레이너는 첫날이니 하체운동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하체 근육을 먼저 키워서 남성호르몬 분비를 늘려놔야 상체 근육도 더 빨리 키울 수 있고, 체지방 감량도 빨리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처음 보는 기구 앞에 서게 되었다. (이 운동기구 이름이 'hip adduction'이란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먼저 의자처럼 생긴 곳에 앉고 이어서 트레이너의 설명을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트레이너는 옆에 서서 반복 횟수를 세어주었다. 하나, 둘, 셋.... 여기까지는 수월했는데, 5개가 넘어가자 자세가 흐트러진다. 곧바로 트레이너가 무너진 자세를 지적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여섯, 일곱, 여덟.... 점점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엉덩이 근육이 강하게 당긴다. 낯선 기구에서 낯선 동작을 하려니 평소에 안 쓰던 근육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마지막 두 개만 더..."
트레이너의 독려에 힘을 짜내서 엉덩이 근육을 수축시킨다.
"마지막 하나..."
'흡!'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기를 모아 다시 한번 근육에서 힘을 짜낸다.
"수고하셨어요."
첫 세트가 끝났다. 운동 시작한 지 1분도 안되었는데 벌써 근육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나머지 시간을 버텨내야 하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걱정하는 사이 1분간의 휴식시간이 모두 지났다. 바로 이어서 다음 세트를 시작한다. 다시 트레이너는 숫자를 세고 나는 운동을 시작한다. 반복 횟수가 8회에 다다르자 또 근육들이 발작하기 시작한다. 점점 근력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트레이너의 음성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다. 하늘이 두쪽이 나도 15회를 채울 것이라는 단호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결국 이를 악물고 15회씩 3세트를 끝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엉덩이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렸다. 땀은 마스크를 모두 적신 후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수기 앞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그래도 트레이너가 알아서 척척 안내도 해주고 운동기구들도 세팅을 해주니 뭔가 대접받는 기분이다.
'역시 비싼 게 좋긴 하군.'
긴장된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대접받으며 운동하는 맛에 기분이 흐뭇해졌다.
이번에는 스쾃을 배울 차례이다. 발은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각도는 45도, 무게 중심은 발 가운데, 무릎을 살짝 구부린 상태에서 엉덩이가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올라오면 된다. 평소에 유튜브로 많이 보고 따라 하던 운동이라 자신 있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방금 전 엉덩이 근육을 활활 태우고 와서 그런가? 몇 번 동작을 반복하자 허벅지 근육은 요동을 치고, 무릎도 부르르 떨린다. 그래도 옆에서 트레이너는 잘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준다. 자본주의의 칭찬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듣기 나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씨익'하고 올라간다.
그렇게 스쾃과 런지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50분이 지났다. 트레이너가 오늘 수업이 끝났음을 알려준 순간, 이제 살았다 하는 생각과 함께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트레이너는 가기 전에 유산소 운동 20분을 더 하고 가라고 한다.
'아........!!'
조금 전보다 더 긴 탄성이 터져 나왔지만, 티 나지 않도록 속으로만 했다.
그래도 운동을 시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며 군말 없이 운동기구 위에 다시 올라섰다. 유산소 운동을 하며 이 헬스장 온 이후 처음으로 혼자 있게 되었다. 이제 혼자라도 불안하지 않았다. 어느새 이곳도 익숙해졌다. 심장을 때리던 음악소리도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고, 주변도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산소 운동을 마친 뒤 탈의실로 내려갈 때는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난간을 꼭 부여잡고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처음에는 잔뜩 긴장한 채 왔던 길을 이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바람도 시원하고 마음도 가볍고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미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