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시 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조금 무리해서 걷기라도 하면 허리디스크로 인해서 다리가 저려왔다. 마치 챗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항상 같은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직 노력한 시간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하나 생각해낸 수가 과목을 신경외과로 바꿔서 다시 한번 진료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새로운 해결책이 나올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사항이 있었던 것이다.
신경외과에서는 CT촬영을 했다. 그런데 CT 사진을 본 의사의 반응이 의외였다. 한마디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매일 아파서 걷지도 못하는 환자들만 보다가 멀쩡히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달리면 아픈데 어떡하나요?'라고 묻는 내가 어쩌면 복에 겨운 줄도 모르는 '나이롱' 환자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의사의 소견을 요약하면 '문제 될 것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병원에 오면 꼭 하려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럼 달리기를 해도 될까요?"
"네, 살살하시면 될 것 같네요."
의사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대답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해주었다.
'다시 달리기를 해도 된다고? 그런데 또 아프면 어떡하지?'
'만약에 아프면 신경외과 의사 핑계를 되면 되겠지. 그럼 적어도 스스로 몸을 망쳐버렸다는 자책감은 피할 수 있을테니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거의 1년 만이다.
달리기 전부터 '딱 20분만 달리자!' 생각하고 시작했고, 딱 20분만 천천히 달렸다. 러닝머신이 멈췄을 때 거리를 확인해보니 대략 2.5km 정도를 뛰었다. 내려오자마자 오른쪽 허벅지부터 확인했다. 아니길 바랬지만 허벅지는 평소보다 단단하게 뭉쳐있었고, 피부감각도 둔해져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젠 이 상태가 크게 놀랍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계획도 변경하지 않았다. 하루 쉬고 다음 날 다시 달렸다. 계획대로 운동 강도도 높여갔다. 매번 10분씩 달리는 시간을 늘려갔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달렸을 때는 40분 동안 6km를 뛰었다.
다리와 허리 상태는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심각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다. 약간씩 근육들이 뭉치기는 했지만 집에 와서 뜨거운 욕조 속에 몸을 담그면 곧 풀어지곤 했다. 세차게 여름 소나기가 내리던 일요일에는 45분 동안 7km가 넘는 거리를 뛰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50분간 8km, 그리고 다시 며칠 뒤 55분간 9km를 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10km를 뛸 차례가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평소와 다른 감회에 휩싸였다. 10km는 지난 1년간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거리이기 때문이다. 항상 이 거리를 넘기는데 실패했다. 이 벽만 뛰어넘으면 내가 꿈꾸던 것들을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외 없이 이 벽 앞에 가로막혔었다. 그리고 다시 그 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은 천천히 시작했다. 7km/h. 그다음은 9km/h. 그리고 심장이 예열을 마쳤다고 느껴졌을 때, 속도를 10.5km/h까지 올렸다. 심장이 느끼는 부하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그친 상태였지만, 아직 하늘은 잔뜩 흐린 상태였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무료하게 느껴졌다. 쓸데없는 상상으로 무료함을 달랬다. 42.195km를 운동장에서 뛰면 몇 바퀴를 뛰어야 하는 거지? 내가 정말 풀코스 마라톤을 할 수 있을까? 내년 정도면 코로나 상황도 끝나고 다시 마라톤 대회가 열릴 수 있을까? 그러는 사이 7km를 지났다.
그때였다. 다시 증상이 시작되었다. 무릎이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마 곧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매번 그랬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계속 달린다는 것이 별 의미 없는 일이란 것도 말이다. 고집을 부려봐야 상태만 악화될 뿐이다. 하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또 항상 그랬던 것처럼 씁쓸한 패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허벅지 근육이 당기고 무릎은 인대와 뼈가 부딪히며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그냥 무시했다.
‘버틸 수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10km를 채우고 싶었다. 미련한 행동이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10km의 벽을 넘어서고 싶었다.
다행히 통증은 견딜 수 있는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통증을 억지로 참으며 결국 10km를 채웠다. 달리기가 끝나고 다리는 최근 몇 개월간 느낀 것 중에 가장 안 좋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아마 다음 날이면 허리도 아플 것이다.
'좀 아프다 말겠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희망적인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다음 날 아침 침대에서 내려온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전기가 흘렀다. 움찔하며 허리를 숙이는 순간 이번에는 허리에 시큰한 느낌이 든다.
'완전히 맛이 갔군.'
며칠 동안 운동은 쉬어야 할 판이고, 달리기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오래 쉬어야 할 것이다. 그 뒤에도 뛰고, 아프고, 쉬면서 한의원 가고, 또 살만해지면 다시 뛰쳐나가는 미련한 사이클은 계속 반복되었다. 물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다. 달릴 때 상체 자세도 바꿔보고, 착지할 때 발의 위치, 중심이동을 하는 방법 등등 하지만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10km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좌절했다. 결국 조금씩 달리는 거리를 늘려가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