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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in island Feb 09. 2023

맛집 골목을 찾아서_닭집골목편

  저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제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것도, 지천명 즈음에 한식을 만나게 된 것도 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한국 사람인데 한식을 만났다는 것이 어폐가 있지요? 실제로 과거의 저는 엄마가 한식 밥상을 차리시니 먹고, 직장동료들이 점심에 한식당에 가니 따라가서 먹는 것 외에 저 스스로 한식  맛집을 찾아가거나 특정 한식 메뉴가 먹고 싶었던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항상 저는 이국적인 식문화와 메뉴에 눈길이 갔고,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형제들과 살 때에도 미국식 조식을 따로 차려먹을 정도였죠. 

   하늘의 뜻을 깨우친다는 나이가 되어서야 하늘의 뜻보다 제 자신에 대해 좀더 알게 되었고 세상의 트렌드보다 저만의 취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것, 지금의 제 모습에 내•외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들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내가 태어나 살고 있는 이 땅과 문화가 새롭게 보이고, 또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알토란에 출연하게 되면서 한식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어요. 공부를 해나가면서 한식에 대한 그간의 제 경험과 식견이 많이 일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전부가 아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저는 그 해결책으로 시간 날 때마다 국내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제 글에 가끔씩 등장하는 올해 만 열 살이 된 제 딸과 함께 말이죠.
아이가 커갈수록 한국의 많은 곳들을 보여주고
한국 고유의 문화를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고 이를 근간으로
그녀가 세계를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때로는 남도여행과 같이 특정 지역이, 때로는 채상과 같은 공예품이, 또 어떤 때는 향토음식이 여행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여행 중에 제가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은 여행길에서 만난 장인들과 그들의 다양한 작품들이었어요. 그 중에서 제 마음이 가는 장인들은 특정 계층에서만 향유되거나, 특별한 때에만 사용되는 소수의 귀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아닌 일상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만나게 되는 평범한 것들을 특별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분들이었어요. 

바로 여행지에서 방문한 맛집들을 만든 분들입니다.
저는 이들이야말로 진정 장인으로 불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소수가 아닌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면서 한 그릇의 음식으로
그것을 누리는 모든 이들에게 최상의 행복감을 선사하는,
가장 가성비가 높은 작품이 맛집 말고 무엇이 더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제가 여행 중에 만난 맛집들 중에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배려하면서 오랜 세월 인류에게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주었던 닭요리 맛집들에 대해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닭요리 맛집을 찾아가보면 거의 대부분의 맛집들이 골목길에 위치하고, 그 골목길에는 모두 동일한 업종의 가게들이 즐비했어요. 바로 맛 골목이죠. 

  전국에 닭요리 맛집 골목이 꽤 여러 곳 있습니다. 
우선 저는 고향이 서울이니 서울에서부터 시작해볼까요? 
서울에서는 동대문의 닭 한 마리 골목이 있고, 서울 인근에는 수원의 통닭거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닭요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춘천 닭갈비 골목, 
강원도의 또 하나의 유명 닭요리인 속초 닭 강정 골목이 있고요. 
밀레니엄과 함께 떠오르는 안동찜닭, 그 발원지인 안동 구시장의 찜닭골목, 
대구 평화시장 안에 닭똥집 골목 그리고 제주 교래리의 토종닭 거리가 있어요. 
말씀드린 대로 꽤 많죠? 


  한정된 지면 때문에 그것들을 다 소개드릴 수 없어 이 쟁쟁한 메뉴들 중에 Top 3을 골라야 했는데 그 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순위가 아닌 시기적으로 최근에 알려진 순서대로 안동찜닭, 닭 한 마리, 그리고 닭갈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동찜닭 골목이 있는 안동 구시장 골목은 본래는 통닭골목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이곳에 ‘마늘통닭’이 등장을 했어요.
안동이 마늘이 유명한 의성이랑 고추가 유명한 영양이랑 가까워서
통닭에 이런 갖은 양념을 더해 만든 신제품이었죠.
그러다가 마늘통닭에 있던 마늘과 고추 같은 기본양념을 그대로 차용하고
여기에 당면이랑 채소를 더 넣어서 찌개 비슷하게 만들었던 것이
다양한 형태를 거쳐서 80년대 후반에 지금의 찜닭이 되었다고 해요. 



안동찜닭

  그런데 이 찜닭이 처음부터 안동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2000년에 안동출신의 한 젊은이가 찜닭의 상품성을 보고 서울에서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초대박이 났고, 이에 자극을 받은 안동 지역의 통닭골목에서는 찜닭의 발명지가 안동이라고 홍보하기 시작했어요. 안동찜닭의 고유한 조리법과 맛을 강조하고, 안동음식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지리적 표시제를 도입하는 노력을 기울였죠. 2004년경부터 안동찜닭 발원지인 ‘통닭골목’은 ‘찜닭골목’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5년도에는 재래시장 현대화사업을 통하여 종래보다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비를 하였고 지금의 찜닭골목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안동찜닭은 기본적으로 안동 지역에 있던 몇 가지의 음식 또는 식품이 혼합되어 1980년대에 시장 상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방에 위치한 중소도시 안동을 떠나 수도권 소비자라는 검증 체계를 거친 이후 전국으로 확산된 음식입니다. 

 ‘닭 한 마리’ 라는 메뉴명은 1978년 무렵 동대문의 한 식당에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의도해서 만들어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동대문 JW 메리어트 호텔이 위치한 부지에
70년대에는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어요.
차 시간을 맞춰야 하는 손님들이 식당을 들어오면서 급한 마음에
“닭 한 마리 주세요” 라고 외쳤던 것이 메뉴명이 된 것이라고 해요. 



닭한마리

  

원래 이 메뉴는 닭 칼국수에서 시작된 것인데 지금은 닭고기를 먹고 나서 그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끓이는 형태로 변화했죠. 닭 한 마리는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지만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할 정도로 매력이 철철 넘치는 메뉴에요. 대개 9호 닭을 사용하는데 야들야들한 육질의 닭고기와 콩가루를 넣은 밀떡을 매콤새콤한 특제 고추양념장에 찍어 먹다가 육수를 추가해 칼국수를 끓여 이 집 김치와 먹는 맛은 요즘 같은 추운 겨울에 딱 생각나는 맛입니다. 현재 동대문 닭 한 마리 골목에는 이 메뉴의 원조격인 할머님의 식당과 후발주자이지만 육수로 특허까지 낸 식당 외에도 다수의 식당들이 성업 중이에요.

  춘천 닭갈비는 제게는 풋풋했던 대학시절의 낭만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닭갈비는 이미 대학생과 군인들의 인기메뉴였다고 해요. 닭갈비집이 가격도 싸고 푸짐하니까 대학의 개강파티나 종강파티, 그리고 휴가 나온 군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던 거죠.

 1950년대 말 춘천은 양계산업으로 유명했던 지역이었어요.
대형 도계장이랑 양계장들이 많았죠.
그때 춘천 중앙로에 있는 돼지갈비를 술안주로 파는 선술집이 있었는데
돼지파동이 나서 돼지를 구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로 포를 떠서 돼지갈비 양념에 재워서
숯불에 구워 판매를 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맛.잘.알 택시기사 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게 되죠. 그때의 메뉴명은 ‘닭 불고기’ 이었다고 해요.
이후에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이 집이 춘천의 명동으로 이전을 하게 되고
인근에 있던 식당들도 이 메뉴를 팔기 시작을 하면서
춘천 닭갈비 골목이 형성되었습니다.


춘천 닭갈비

  

  1980년대에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면서 춘천 닭갈비가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닭갈비 골목에서 운영된 식당만도 30여 곳에 달했어요. 이즈음 마이카 시대를 겨냥해서 춘천 닭갈비 골목을 벗어나 경치 좋은 후평동 인공폭포, 온의동, 소양강댐 아래에 대형닭갈비 식당들이 오픈을 했고 이곳들이 지금까지 춘천 닭갈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짧으나마 지면을 통해 저와 다녀온 닭집 맛골목 여행이 어떠셨나요? 이번 주말 가까운 닭집 맛골목 투어를 직접 다녀오시길 추천드립니다. 겨울 끝자락의 정취와 함께 단백질 충전을 통해 건강도 챙기시면서 말이에요.


【알쓸신잡 닭골목 맛집 이야기】


 1. 안동 꼬끼요찜닭

    안동찜닭 골목 후발주자로 오픈해 절치부심으로 양념장 연구에 전념해 맛집의 반열에 

    오른 곳. 감초를 사용한 자연적인 단맛으로 달콤짭짤하면서도 매콤한 양념에 튼실한 닭

    고기, 혹자는 닭보다 맛있다고 하는 쫄깃한 찰당면이 일품인 찜닭집. 요즘은 타지역 분

    들을 위해 택배 서비스도 제공. 


2. 동대문 진원조닭한마리

    5가지 한약재와 닭발을 넣어 끓인 비법 육수로 그 어렵다는 식품특허를 받아낸 곳. 작

    은 가게로 시작해 지금의 3층 건물을 올리기까지 한결같은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승부

    를 본 곳. 특히 일반 김치와 물김치 사이 어느 지점에 위치한 이 집 김치는 별미 중에 

    별미. 웨이팅이 싫으신 분들은 포장판매 서비스도 제공하니 이용해보시길.


3. 춘천 통나무집

    평범한 닭갈비집은 잊어라! 맛 뿐 만 아니라 자연경관도 명불허전. 향긋한 카레향이 감

    도는 전혀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의 닭갈비가 묘한 중독성으로 단골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고 

    빙어튀김이나 감자전 같은 사이드 메뉴가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오감만족 맛집.

    숯불 혹은 철판이든 조리방식을 지점마다 선택할 수 있는 점도 훌륭. 


<본문의 내용은 23년 2월 5일 MBN 알토란 방송에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이범준

알토란 전문가 패널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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