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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in island Sep 05. 2024

18세기, 요리의 시대

빛의 시대인 18세기, 계몽철학과 등장한 부르주아 요리


18세기는 '빛의 세기'였고, 계몽주의 시대의 요리는 지성인들의 토론 주제이자
집필 대상이 되었다. 음식은 ‘예술'로 여겨졌고, 조화와 화학작용 그리고 정신의 용어로 토론되었다. 

철학자들이야말로 최초의 음식 전문가였다. 철학자들은 우주의 본질, 진리, 좋은 삶을 사는 방법과 같은 주제만큼이나 삶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심오한 문제인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을 해왔다. 

플라톤은 신선한 과일과 견과를 기본으로 하는 식단을 추천했다. 모든 사람들이 끼니마다 고기를 먹으려 한다면 세상에 음식이 남아돌지 않을 것이고 자원을 얻기 위한 경쟁이 벌어져 결국 자연이 파괴되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몽주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설파했고, 당시 지나치게 ’서민적‘이라고 기피했던 채소를 찬미했다. 음식의 원래 맛을 살려서 ‘간단하게, 그리고 가볍게‘ 먹자는 것이 시대적인 구호였다. 원래 루소는 음식과 식이요법에 관심이 컸으며 그의 주옥같은 저작들 역시 ’건전한 음식이 건전한 인격을 리드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대중에게 계도하고 있다. 루소는 좋은 미각이 음식과 행동의 순수함과 단순성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선구적인 채식주의자였다. 루소는 자신의 논문에서 ”서로 다른 사회조직은 모두 인간의 생계 수단인 과연 무엇을 먹느냐 하는 먹거리 문제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라고 기술했다.

17세기 말부터 프랑스 요리는 접점 접근성이 수월해졌다. 19세기에는 프랑스의 미식문화를 선도하게 될 부르주아 계급의 요리가 등장했다. 그 주요 배경이 된 개념이 바로 “경멸의 폭포"이다. 마치 계단식 인공폭포가 위에서 아래로 층층이 흐르듯이, 각 계급이 자기보다 한 수 아래의 하층계급을 경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각 계층은 신분 상승을 위해 상류층을 열심히 모방했다. 

사회학자 미셸 코난의 설명에 따르면 18세기의 키워드인 우아한 '세련미'와 '미미'의 개념이 이처럼 사회적 모방과 '의태주의'를 통해서 상류층에서 하류층으로 전도 내지는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라는 신흥 계층은 든든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들의 계급을 상징하는 신생 요리를 탄생시켰다. 부르주아 요리란 버터와 소스, 고기가 많이 들어가 있으며, 오랜 시간 부글부글 끓인 것으로, 당시 궁정에서 제공하던 귀족 요리를 모방하고 각색한 요리였다. 

코코뱅, 비프 부르기뇽, 부야베스, 그라탱 도피누아 같은 지역요리들과
베샤멜 소스, 루(roux)에서 나온 마더소스인 네덜란드 소스, 스페인 소스 등이
부르주아 요리들의 기본 바탕이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요리는 중세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요리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18세기는 빛과 계몽철학의 시대임과 동시에 '요리의 시대'였다.

계몽주의 시대의 또 다른 식생활의 변화는 식탁 예절이 더욱 개인주의화되고 우아하며 세련되어졌다는 것이다. 개인용 접시의 사용은 루이 14세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에는 빵을 자르기 위해 나이프를 사용했지만 이 시기에는 손으로 조금씩 떼어먹었다. 샐러드를 먹을 때도 나이프 대신에 포크와 빵 조각을 이용했다. 17세기 말부터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포크와 나이프를 챙기기 시작했다.

18세기부터 일반 가정에 식당이라는 별도의 식사를 위한 공간이 정작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식사 시간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점점 뒤로 물러나는 경향이 있는데, 점심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데쥬네는 원래 ’아침 식사‘를 의미하다가 나중에 ’점심 식사‘로 정착되었다. 오늘날 ’아침 식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프티 데쥬네‘는 18세기 프랑스인들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출처 : 미식인문학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이범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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