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요리의 세계화, 촙수이에서 판다 익스프레스까지(1)
아시아계를 제외하면 유대인이 미국에서 중국요리를 가장 사랑한다. 1800년대말 유럽을 떠단 동유럽인 90%는 미국 뉴욕에서 살았다. 이들은 뉴욕 총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했다. 뉴욕 차이나타운 중국요리점은 가까운 구획에서 자리잡은 유대인들 덕에 살아남을 수있었다.
유대인이 중국요리점을 편하게 느낀 데는 일요일이나 크르스마스에도 영업한다는 것 말고도 중국인들이 유대인이나 유대교에 선입견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작용을 했다. 1930년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중국요리점에서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뉴욕 유대인이 중국요리를 각별히 사랑했다는 사실은 상하이 유대인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한층 분명해진다.
1918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계 유대인이 중국으로 도피를 했고 많은 수가 상하이의 공동 조이에 자리잡았다. 이후 나치 통치하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 난민들이 또 상항이로 망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처럼 현지 사회에 동화되어야만 하는 압력이 존재하지 않아서 중국요리는 상하이의 망명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것이 되지 못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뒤로 많은 유대계 미국인이 진정한 중국요리를 찾아 중국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2008년을 기준으로 500곳 이상의 공장에서 공인 코셔 식품을 제조하고 있다.
출처 : 중국요리 세계사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미식유산 연구소 소장
이범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