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의 숨겨진 이야기
"이번 여름에는 민어를 못먹고 지나갔네!"
거실에 앉아 양말을 벗으며 남편이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제주에 살면서 오히려 나도 민어를 잊은 지 몇해가 되었다. 복날이면 서울서 먹던 민어탕이나 민어전이 갑자기 소환되었다. 여름이면 논현동 노들강에서 민어를 먹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제철 생선’이라 할 때 제철은 산란기를 기준으로 따진다. 산란을 위해 생선들이 스스로 몸을 보양할 테니,
산란기 직전이 풍미도 좋을 수밖에 없다. 민어의 경우, 늦여름에 산란한다. 그러니 6~7월이 제철이다.
그래서 ‘여름 민어’ 얘기가 나온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민어의 생김새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다.
“몸은 약간 둥글며 빛깔은 황백색이고 등은 청흑색이다.
비늘이 크고 입이 크다. 맛은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젓갈이나 어포가 모두 맛이 있다.”
민어는 탕으로 끓여 먹기만 한 것이 아니다. 회로도 먹고. 알은 말려서 어란을 만들어 먹었다. 맛이 있다는 민어포는 소금에 절여 포로 만든 것이다. 암컷을 말린 것은 암치, 수컷을 말린 것은 수치라고 부른다.
부레로 만들었다는 아교주는 보약의 재료다. 아교는 민어의 부레를 잘게 썰어 볶으면 구슬같이 된다는 뜻이다. 그 밖에도 부레에 소를 넣고 쪄서 만든 '어교순대', 민어 살로 만든 만두인 '어만두'라는 요리가 있다. 민어의 껍질은 전을 부치거나 데쳐서 먹었고 지느러미뼈와 가장자리 살로는 뼈다짐을 만들어 먹는다. 비늘과 쓸개를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는 물고기가 민어다.
민어는 민의 숫자만큼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도 가장 흔한 물고기 중 하나로 민어를 꼽고 있다. 그렇다면 "양반은 민어 먹고, 상놈은 보신탕 먹는다" 라거나, "복달임에 민어탕이 으뜸이요. 도미탕은 이품이고, 보신탕은 삼품이다" 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흔한 물고기가 양반이 먹는 고급 음식일리 없다.
민어는 크기가 1미터가 넘는 큰 생선이다. 바닷가에서 민어는 백성들이 흔히 먹는 물고기였을지 몰라도 교통이 불편하고 냉장시설이 없던 때에 도성에서 민어는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또 민어는 클수록 맛이 있기 때문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도성에서 민어는 희소성이 있는 물고기였던 만큼
양반들은 백성들이 먹지 못하는 민어를 먹으면서 존재감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민어는 양반들의 복달임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출처: 한국 역사 속의 음식
이범준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외식경영학과 교수
미식유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