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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믿음

부부의 19번째 밸런타인데이

by 송지


“아빠는 머리가 나빠서 한 번에 한 사람만 사랑해.”


며칠 전 남편이 저녁 식탁에서 한 말이에요.

정말 용감하지요?^^


서운하지 않냐고요?

글쎄요… 막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의 말이 농담이었냐고요?

아니요. 순도 100% 진심이었을 거예요.

딸아이를 바라보는 눈빛, 예전엔 다른 누군가를

향해 있던, 제가 잘 아는 그것이거든요.


그를 만난 후 19번째 밸런타인데이입니다.

그간 그의 눈빛과 말, 그 뒤에 숨겨진 의미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이 영원하다고요?

그런가요? 드비어스의 바람 아니었을까요?

그 증표로 다이아몬드를 사주길 바라는^^


제 경험으로 사랑은 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나쁜가요?^^

열렬한 연인이 가고 그 자리에 사이좋은 부부가

남았고, 타오르던 열정의 불꽃이 사라진 자리에

뜨듯한 결속의 온기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휘발될 것은 휘발되고

남을 것은 모습을 바꿔 더 깊이 남아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변화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적용되는

진화와 생존의 법칙이겠지요.


부부를 둘러싼 수많은 감정의 레이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문득 낯선 남녀로 만나 부부로, 가족으로 변해온

우리 관계가 버터와 밀가루 반죽이 층을 이루며

겹겹이 쌓인 크루아상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달콤하고 특별한 케이크와 담백하고 일상적인

빵 사이 어느 지점에 크루아상이 존재하듯

지금의 우리도 그럴 것이다.”


(토란국 대신 만둣국, 이범준 중에서)

오늘 아침 식탁에서도 밸런타인 저녁메뉴를

단숨에 딸의 한마디로 결정하는 걸 보며

사람은 참 안 변하는구나 했습니다. ^^


저는 덧없는 불변에 대한 강요보다는

물 흐르듯 순리대로 자연스러운 변화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


모두들 해피 밸런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