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도 괜찮다]
노력이니 뭐니, 무엇이 중요한가. 소위 깨우침을 얻은 사람은 말한다.
증명하려 애쓰지 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증명하려 하는가?
그렇다. 우린 증명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지만 결국 증명할 수 없다. 우리의 증명은 더 큰 증명 아래 가려지기 때문이다. 무한 굴레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 오해말길 바란다. 증명하며 사는 삶도, 흘러가듯 사는 삶도 똑같은 삶일 뿐이니 스스로 선택해서 살아가면 된다. 그저 자신을 가혹하게 내몰지 안하도 된다는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미 오늘을 살아내지 않았는가.
[찌질함]
22년의 나는 바보 같고, 찌질하고, 연약했다. 나를 위로해 줄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나만이 나를 위로할 수 있었다. 내가 제일 힘들고, 제일 슬픈데 왜 아무도 모르는 걸까. 그래서 화내고, 짜증 내고, 소리 질렀다. 자유, 내겐 자유가 필요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 했을 때 “그래!”라고 듣고 싶었는데, 누구보다 제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답은 달랐다(아마 그랬다면 퇴사도, 전국일주도 다시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땐 부모님이 미웠는데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방식으로 걱정하고 위로했다(한층 단단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언제 또 “세상은 나한테만 가혹해! 왜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거야”라며 땡깡 부릴지도 모르겠다).
[글쓰기]
글은 내게 자유를 선사했다. 생각의 자유를,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단어를 한데 모아 단단한 배를 만들었다. 그리곤 사람들에게 보냈다. 온전할 때도 있지만 때론 난파되어 불온전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말보다는 온전했다.
내 글은 어떤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상대방은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를 막 쏟아내는 일기장이었다. 혼자 진지한 생각에 빠져 ‘나 진지해요’라고 보여주고, 혼자 재밌다고 생각한 이야기를 ‘이거 진짜 재밌죠’라며 웃어달라 한다. 그래도 내 글이 좋다. 자기 할 말만 하고,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람냄새가 난달까. 완벽하지 않아서 좋다.
최근에
‘글이란 사람에게 읽혀야 생명을 가진다’
라는 말을 했는데 참 오만했다. 누가 보면 대단한 작가인 줄 알겠더라. 그렇지 않다. 누가 보건 보지 않건, 글은 쓰였을 때 생명을 가진다. 글이 생명을 다하는 건 오로지 지우개로 지워졌을 때, 커서 깜빡이가 뒤로 갔을 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