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0km 전국일주 여행기
아침부터 덜렁댔다. 장갑을 놓고 와서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덜렁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하섬으로 가는 길, 서해랑길은 눈으로 뒤덮여 미끄러웠다. '미끄러운데..' 하는 순간 풀썩 주저앉아 미끄러졌다. 그것도 두 번. 이후로는 필사적으로 힘을 팍 주고 다녔다. 넘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긴장을 푸는 순간 문제는 발생한다. 익숙하더라도 약간의 긴장이 필요하다.
철책을 따라 걷다 보니 멀리서 하섬이 보였다. 철책을 보니 익숙한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GP병으로 근무를 섰던 군 시절이었다. 이 철책을 지긋지긋하게 걸었다. 그땐 그렇게 싫었는데, 이렇게 추억으로 남으니 웃긴 일이었다. 하섬은 바닷길이 열려야 갈 수 있다. 음력 1일, 15일 전후로 열린다고 한다.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멀어졌다. 작았던 몸집이 커지고, 옹알이를 하며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입은 멈춰버렸다. 큼지막한 손을 잡고 의지하던 작은 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바다처럼 넓게 느껴졌던 품의 온기도 사라졌다. 어색한 신체부위로 남아 잡고 싶어도, 안고 싶어도 이젠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우린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을까요. 어째서 멀어졌을까요. 나도 더 이상 애가 아니라며 투정 부리던 사춘기 때문일까요? 부모님처럼 돈을 버는 어른이 되어서일까요? 아니면 무뚝뚝한 내 성격이 문제일까요. 어릴 적 다정하게 엄마, 아빠라고 부르던 시절처럼 가까이 있고 싶은데 다가가기 힘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요.
하섬도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런 곳은 때맞춰 온다. 바닷길을 보기 위해 말이다. 함께 사는 지금도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하는데 독립하면 오죽할까. 부모님을 '하섬'으로 만들지는 말아야지. 바빠도 마음껏 찾아갈 수 있는 '해수욕장'이 되도록 해야지.
드넓은 모래사장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었다. 하섬도 보였다. 바닷길이 열리면 고사포 해수욕장에서도 갈 수 있다고 한다. 바다 뒤로는 울창한 숲이 있고, 이곳은 캠핑장이었다. 이곳에서 캠핑을 하면 어떤 분위기가 느껴질지 매우 궁금해졌다. 날이 따뜻해지면 꼭 와야겠다. 부모님 생각이 잔뜩 났던 장소를 지나니 변산반도를 빠져나왔다.
부안읍으로 향하는 길, 드넓은 황야로 착각할 만큼 무수히 많은 갈대밭을 지났다. 그 사이를 깡충깡충 뛰는 고라니를 보았다. 작은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도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부안읍에 도착했다.